"Our Unwritten Seoul" Drama Transcript: Episode 11 (Full)

 

한원서까지 힘드시면 그냥 홈에다가 서명만 해주셔도 아뇨, 절대 강요는 아니고요.

네, 죄송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아, 또 거절. 어떻게 가면 갈수록 성공률이 떨어져.

사회생활 안 해 본 티가 이런 데서도 나나.

전화로 설득 하나를 못 해 가지고. 또 너가 설득을 왜 못 해.

그 엄하던 선생님도 설득했으면서. 원인이 지나간 거고 이젠 못 하게 됐나 보지.

미지야,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야. 너가 한 일들 너 안에 다 남아 있어.

지금은 그냥 거절당한 거야. 너를 의심하지 마.

예 스님, 메일 왔다.

혹시 이번 일 끝나면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응 갑자기?

우리 생일도 제대로 못 챙겼잖아.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아니면 뭐 갖고 싶은 거라던지.

굳이 쥐어짜내면 어딘가 허전한 거 같기도 하고 앞머리가 허전한가?

됐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

그 오늘들이 내일을 약속하게 만든다.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도.

그 커플링 좀 사려는데요. 손가락 손해지고 꼭 함께하자고.

여보세요? 내일을 약속한다는 건. 여보세요?

얼마나 오만한 짓인가. 당장 오늘의 나도 알 수 없으면서.

여보세요? 이거를 네가 손으로 그린다는 거였어?

아니요, 간판집 넘기기 전에 느낌만 좀 미리 보시라고요.

뭐가 제일 마음에 드세요? 고민해볼게.

네. 근데 호수는 어디 가고 혼자 다녀?

아 왜 저번에 아는 분 돌아가셨잖아요. 장례 끝나고 내일 온대요.

그때 내려간 애가 내일 온다고? 많이 가까운 사람이야?

저도 자세히 못 물어봤어요. 전화할 정신도 없는 거 같아서.

게장이나 좀 주랬더니. 게장이요? 제거는요?

니 거는 어제 줬잖아. 거의 다 먹었는데.

아 나는 간판도 그려왔는데 호수 줘도 어차피 둘이 먹을 거 같아서 넉넉히 했어.

아 예스. 이거 무거운데 호수 오면 줄까?

아 주세요. 가는 길에 걔네 집 들러서 두고 오죠 뭐.

냉장고 넣어 놔. 혼자 다 먹지 말고. 네.

어 왜 이렇게 전화도 안 받아. 어? 어? 어? 응?

이호수. 어 뭐야 언제 서울 왔어? 내일 온다더니.

예전보다 좀 일찍 끝나서. 야 그럼 그렇다고 연락을 해야지.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너 근데 비번 바꿨어?

왜? 옷 안에 누구 있어?

그건 아닌데 오늘은 그냥 너 어디 또 아프지?

아니야. 그런 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에 쓰여있구만.

아 누가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무리를 했어. 너 약은 먹었어?

어디 봐. 여린놈. 내가 좀 피곤해서 내일 보자 우리.

어 그래 그럼. 아 근데 이거 어 뭐야 지금 내가 다 먹으니까.

나 잠깐 통화 좀. 아 기사님 한국대병원으로 가주세요.

인천 가는 택시에요. 기사님 한국대병원이요.

아 이거 인천 들어가는 택시라니까요.

마음 사람 바다. 이호수님 이호수님 안 계세요? 혹시 이호수님 계실까요?

네, 돌발성 난청이네요. 일단 며칠은 고막 내에 스테레오도 주입해보고.

차도 생기면 그때 다시 상태 보시죠. 이 돌발성 난청의 예후는 크게 세수로 나뉘어요.

청력회복, 현상유지, 청력소실. 근데 보시면은 이게 상태가 썩 좋지가 않아요.

주사가 고용량이라 100%는 아니어도 80% 정도는 회복할 줄 알았는데.

그럼 저는 그 셋 중에 이 현상유지일지 청력소실일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뭐 기적적으로 좋아질 수도 있지만 전 주파수 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 완전 회복은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그럼 이제 전 뭘 해야 돼요? 뭐 어쨌든 조금이나마 청력이 돌아오긴 했으니까.

일단은 당분간 통화하면서 지켜보시죠. 원인도 모르고 더 좋아질지 나빠질지도 모르는데.

그냥 손 놓고 있으라고요? 그러다 이쪽도 아예 안 들리면요?

뭐 보청기나 인공 와우 같은 방법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그건 상태가 훨씬 더 나빠졌을 때 얘기고.

더 나빠지기 전에는 방법도 없다는 건가요?

돌발성 난청의 약이나 주사보다 중요한 건 심리적인 안정입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최악의 상황도 대비하셔야죠.

응? 이현수! 뭐야? 언제 서울 왔어? 내일 온다더니.

예전보다 좀 일찍 끝나서. 야 그럼 그렇다고 연락을 해야지.

전화했는데 계속 받지도 않고. 내가 좀 피곤해서 내일 보자 우리.

근데 이거... 태희씨 내가 부탁한 줄 아시고.

나 이제 진짜 급한데? 순서대로 하고 있습니다.

아니... 뭐야? 여기 신경민 팀장님 어디 계십니까?

저인데... 누구세요? 공정거래위원회입니다.

지한 과사 특혜권으로 조사 나왔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예?

이쪽으로 가고 컴퓨터 보내요. 아니 그렇게 막 건들지 마세요.

저기요! 잠시만요!

그깟 식당 하나 매입 못해서 방송인이 뭐니 시끄럽게 하더니.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기사까지 났잖아 지금!

언론사 연락해서 바로 정성 기사 올리라고.

이미 일 다 터뒀는데 무슨 정경!

이래서 내가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라고 당부하지 않았습니까!

면목 없습니다. 그치만 아직 그냥 기사 하나니까 얼른 수습하면.

저번에 그냥 익명글 하나니까 책임지고 수습한다면.

이제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책임질 수 있어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기사 봤어요?

메인에 떴던데? 잠깐 면담 좀 하느라.

출근길에 기사 봤어요. 이제 기사도 떴겠다.

절대 그냥 못 떴습니다. 이거 고맙습니다.

뭐가요? 내가 기사 썼어요? 기자분 소개도 그렇고 전부 조언해 주셨잖아요.

저 혼자서는 못 했을 거예요. 혼자서도 잘만 했어요.

나야 뭐 동업자. 그쪽 일 빨리 끝내고 빨리 내려오면 좋으니까 속도만 낸 거지 뭐 말 한 것도 없어.

아니에요 진짜 감사합니다. 그 얘긴 됐고.

공정이는 아직이에요? 슬슬 조사 나올 때 됐는데. 온 거 같네요.

공정이 선임님이 하신 거죠? 네.

아까 인사팀은 왜 선임님이 고발한 거 알고 부른 거예요?

아니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로 면담 있었어요.

아무래도 퇴사 전에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퇴사요?

아니 왜 힘든 거 거의 다 끝났잖아요. 그간 당하신 게 있는데.

이렇게 그만두면 억울하지 않으세요? 그 사람들 벌 받는 것도 보셔야죠.

그게 다 뭘 위한 건가 싶어서요.

사실 그동안 저 지기 싫어서 버텼어요.

나 그만두길 바라는 사람들한테 내 잘못 아닌 거 증명하려고.

벌 받는 거 보면 속이야 시원하겠죠.

근데 그거 구경하려고 여기서 버티는 게 딱히 전리한 거 같진 않아서요.

전 아직도 출근할 때마다 심장이 뛰거든요.

딱히 통쾌한 마무리는 아니죠? 선임님 마음이 제일 중요한 거죠.

제가 같이 하자 부추겨 놓고 결국 말씀대로 선임님 혼자 다 하게 만들었네요.

아닌데 이제 제일 하기 싫은 거 태희씨한테 맡길 건데요.

태희씨는 저 대신 여기 남아서 계속 지켜봐 주세요.

이번 일 어떻게 끝나는지 직접 보고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 주세요.

나중에.

호수야 요새 많이 바쁘지?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네 기사를 봤는지 혹시 일일 강사 좀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네.

당분간 일이 많아서 내려가기 힘들 것 같아요.

당연히 일이 먼저지. 아무리 바쁘더라도 몸 잘 챙기고.

왜 왔어? 너는 나 찾아올 일 없을 거라더니.

아직도 감정이 덜 풀리셨나요? 감정?

내가 너한테 무슨 감정씩이나 있어. 할 얘기나 빨리 해.

바쁜 사람 함부로 찾아와서 뭐 하는 거야?

부탁 하나 드리러 왔습니다. 우리가 부탁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지 않아?

저 대신 소송 하나 맡아주세요.

제 동창 유미래 아시죠? 저번에 취하했던 성추행 사건.

이번에 정식으로 고발했습니다. 선배님이 꼬인 일 선배님이 직접 풀어주세요.

니가 직접 해. 왜 나를 시켜?

나 같은 변호사 되기 싫다고 나가지 않았나?

이번 일 상대가 제가 아닌 누구였어도 선배님은 똑같이 하셨을 거라는 거 압니다.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이기는 사람.

괴롭힌 놈 몇 배로 더 괴롭혀 줄 사람.

그런 변호사를 저 대신 붙여주고 싶은데 그게 선배님이잖아요.

왜 나인진 알겠고 왜 내가 니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해?

저 좋아하시잖아요. 뭐?

선배님 관심 없는 데는 절대 시간 안 쓰시잖아요.

이렇게 찾아온다고 다 만나주지도 않고 굵직한 케이스로도 바쁘신데.

일부러 제 사건 맡으셨잖아요. 그게 미움이든 뭐든 마음이 있으셔서 그런 거 아닌가요?

저한테?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애초에 일반적인 분이 아니시잖아요.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아직 왜 니가 안 왔는진 얘기 안 했잖아. 무슨 일이야?

그냥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요. 그것까진 할 거 없다?

나한테 뭐 약함이 나를 더 강하고 특별하게 만든다더니.

정서는 넌 약점 드러낼 생각이 없나 보네. 뭐? 그게 니 약점인가?

감사합니다. 후변인 신청도 잘 마무리했고요.

신분이랑 증여 문제도 이제 더 신경 쓰실 건 없습니다.

혹시 또 필요하거나 궁금한 거 있나요?

이거 좀 한 번 봐 둬. 이지가 그린 건데 뭐가 더 나아?

그나마 이게 간판 같지 않나? 다 좋은데요?

이제 참 별개다 고민이다 그치?

네 선생님 저번에 말씀드린 성년 입양이나 법적으로 도움 필요하신 데 생기면.

앞으로 이쪽으로 연락하시면 돼요. 제가 잘 말해뒀으니까 전화하면 친절히 도와줄 거예요.

바쁜데 내가 시간을 너무 뺏었지. 뭐 하나 제대로 혼자 못해서 죄다 니 손만 비고.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당분간 뵙기가 좀 힘들 것 같아서요.

왜 무슨 일 있어? 그냥 개인적인 제가 사실 몸이 좀 안 좋아서요.

몸이 안 좋아? 어디가 어떻게? 별건 아니고요 그냥.

뭔데 말을 못 해? 크게 아픈 거야?

너 설마 암 같은 건 아니지? 왜 말을 안 해? 그런 거야?

큰 병은 아니고요 귀에 좀 문제가 생겼어요.

귀? 원래도 한쪽 안 좋다고 했잖아. 더 나빠진 거야?

들리던 쪽도 좀 안 좋아져서요. 그래서 제가 통화가 힘들어서 이쪽으로 연락하시라는 거예요.

시간 뺏으신 거 전혀 아니에요. 미지한테는 얘기했어?

아니요. 아직 결정을 못해서. 무슨 결정?

말을 할지 말지 못 정했다는 거야?

뭐가 더 미지한테 좋을지 모르겠어서요.

조커 자식은 그걸 숨겨서 어쩌게? 안 볼 사이도 아니잖아.

그것도 아직 결정을 못해서요. 너 그 정도로 안 좋은 거야?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무튼 연락한대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미지한테는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나한테도 말하는 걸 걔한테 왜 숨겨?

너 어디 안 좋아졌다고 미지가 그런 거 신경 쓸 애가 아니잖아.

그래서 그래요.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아픈 사람 옆에 있는 거 쉽지 않잖아요.

미지 이제 막 다시 시작하려는데 제가 발목 잡고 싶지 않아서요.

미지 마음이 아니라 호수 네 마음 문제란 거네.

몸이라도 멀쩡하면 몰라. 너 까딱하면 걔 평생 수발 들고 책임져야 해.

그 짐덩이를 니가 왜 떠왔는데. 아직도 몸 안 좋아?

아니 기회 줄 때 솔직히 말해라. 또 싸우지 말고.

진짜 괜찮아? 괜찮아? 한 대 맞아.

그럼 내가 어제 진짜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말 안 하고 집에 갔다 오고 막 정색하고 그러고 나서 전화 한 통도 없고.

미안. 이제 이렇게 쭉 가서 살짝 오른쪽으로 가.

내가 이 근처에 맛집 다른 거 알아놨어. 가자.

나 괜찮으니까 가려던 데 가. 아니야.

나 갑자기 느끼한 거 땡겨서 그래 진짜.

잠깐만 내가 금방 금방 길 보고 올게.

밤에 경복궁 가면 귀신 나오려나?

아니 나 사약은 집으로 배달 가나? 아무튼 엄청 기대된다.

짠. 실례하겠습니다. 저 메뉴 잘못 나온 거 같은데.

아 그 재료 소진이라 아까 이걸로 대체해도 괜찮으시다고. 아 맞다.

네네 맞아.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너 아까 대충 끄덕였지? 어쩐지 조개 잘 먹지도 않으면서 이거 왜 시키나 했다.

아니야. 그냥 네 거 보고 괜찮아. 아니야.

난 이것도 좋아. 빨리 먹고 가자. 입장 시간 늦겠다.

맛있겠다. 경복궁이 맨날 야간 개장 하는 게 아니더라고.

내가 애매하러 들어갔을 때는 진작에 매진이어서.

내가 밤새 막 들락날락하다가 겨우 취소 표 얻은 거잖아.

너 진짜 괜찮아? 컨디션 안 좋아 보이는데 오늘 그냥 가지 말까?

아니야 나 진짜 괜찮아. 아이 취소해 취소. 오늘만 날인가.

괜찮다니까 다음에 또 예매하면 되지. 나 이번에 노하우 완전 터득해 가지고.

미지야 응?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계속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우린 너무 다른 거 같아.

다른 거 몰랐어? 좀 다른 사람들끼리 맞춰가는 게 연애지.

뭐 맞추는 데도 한계가 있잖아.

생활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점점 더 달라질 텐데.

서로 힘들어지기 전에.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니가 그런 말 하면 내가 뭐 어이구 그래.

우린 다르지 뭐 그럴 줄 알았어? 나 의심하지 말라며.

니가 귀에 딱지에 말해 놓고 지금 그 말이 먹혀?

말해 무슨 일인데 너 갑자기 이러래. 아니잖아.

나 이쪽 귀에도 문제 생겼어. 어?

돌발성 난청이 왔다는데 앞으로 더 좋아질지 나빠질지 아직 몰라.

언제부터? 너 설마 저번에 누구 돌아가셨다는 게.

그때부터 상태 안 좋아서 계속 치료 중이었는데.

나아져도 전처럼은 못 들을 거고.

못 나빠지면 아예 못 듣게 될 수 있어.

그래서 그게 지금 헤어지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너 못 듣게 된다고 뭐 달라질 거 같아 내가?

내가 달라질 거야. 전화 통화도 제대로 못 할 거고.

나중엔 대화도 힘들어서 지금처럼 얘기도 못 할 수 있어.

내가 내가 맞추면 되지. 내가 뭐든 할게.

나 필요하면 수어도 배우고 나 지금처럼 하루 종일 너랑 수다 떨 거야.

나는 그럴까 봐 그래. 여태까지도 나한테 맞춰줬는데.

여기서 더 니가 맞추는 건 내가 원하지 않아.

야 내 마음이야. 내가 좋아서 너한테 맞추겠다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위지야 넌 알잖아.

내가 어떤 마음인지 겪어 봐서 알잖아.

니가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겠다.

동정받는 기분 진짜 거지 같네.

내가 그동안 별로 잘하지 못했나 봐.

앞으로 점점 안 좋아질 모습 보이고 싶지도 않고.

지금 내 상황으로도 벅찬데 누가 나 때문에 힘들어지는 것까지는 못 버틸 거 같아.

못난 생각인 거 아는데 내 마음이 그래.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호수야 호수야.

못 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너 달리기 끝났다고 인생 다 끝난 거야?

맞잖아. 나 달리기 전까진 엄마가 나 쳐다보지도 않았잖아.

나 이제 못 달려. 발목이 꺾이고 인생 다 망했는데.

알아.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하자는 거야.

아니 아직 모르잖아. 귀가 나아질 수도 있고.

병원에서도 힘들대. 의사가 그랬어. 너 나아질 거고.

니가 의사야? 여기서 어떻게 나아지냐고.

내가 그동안 위지 너 만나서 좋았어.

건강하게 잘 지내. 어디가.

나 이런 식으로는 못 끝내. 같이 하면 되잖아.

호수야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우리 같이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앞으로도.

나 무시해. 나 숨소리도 안 내고 이러고 있잖아.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제발. 더 할 말 없지?

생각보다 일찍 왔네. 근데 이호수 무슨 일 있어? 갑자기 다른 변호사 소개해 준다고. 너 무슨 일 있었어? 나 헤어졌어.

어? 아니 왜 이호수가 그러지? 너 괜찮아? 잡았어야 됐는데 못 잡았어. 걔가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그거는 내가 진짜 잘 아는데 근데 뭐라고 잡아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못 잡았어. 놔줬어.

못 잡고 놔줬어 내가. 미안해. 야 유미래.

너 아직 시간 있지? 뭐 좀 먹고 가. 웬일로 이 시간에 일어났어? 오늘 사표내는 몸이잖아. 챙겨드려야지 또. 며칠 청순 떨어서 미안. 그게 왜 미안해? 옆에서 처져있으면 짜증나잖아.

너 안 그래도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은데. 괜히. 너 억지로 밝은 척하는 것보단 100배 나아.

약. 독. 이호수는 내 전화 안 받던데 연락해봤어? 혹시 앞으로는 어떡할 거야? 이 집 회사 대출이라 퇴사하면 바로 빼야 해서. 서울 있을 거면 따로 집 알아봐야 되는데. 안 내려가고 계속 있을 거야? 생각해볼게.

나 내일 회사에서 짐 챙기면 바로 두손리 갈 건데 같이 갈래? 됐어. 너 엄마랑 얘기하러 가는데 뭐하러. 이번에 내려가면 내가 좀 고쳐놓을까? 네 방 문고리.

됐어. 나중에 내가 알아서 할게. 누구세요? 야! 성경구! 설명할 시간 없어. 

가서 최대한 껴입고 튀어나와. 싫지? 너 바뀐 거 끝났으면 째깍째깍 보고를 해야지. 난 그것도 모르고 유미래한테 연락했다가 아주 뻘쭘해 죽는 줄 알았잖아.

나 사람 더 많아졌다고. 좋냐? 신발 하나 사자고 이 날씨에 이러고 싶냐? 그냥 운동화가 아니라고.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언제 들어가? 놀라운 사실 하나 말해줘. 네가 지금 웨이팅 위엔 웨이팅이다. 나 간다.

안 돼. 이거 인당 한 켤레밖에 못 산단 말이야. 딸별로 사야 돼. 어쩐지. 어쩐지 나를 왜 보러 여기까지 왔나 했다.

겸사겸사 이렇게 보는 거지. 유수는 뭐하냐? 할 거 없으면 나오라 그래. 걘 또 왜? 겸사겸사.

새 켤레 사게. 연락해 봐봐 빨리. 꺼져.

꼬래 아주 남친 챙기는 거 봐봐. 이렇게 추운 겨울에는 찬바람도 좀 맞고 해야 건강이 좋은 거예요. 하지마.

그냥 잘생긴 얼굴 보면 좋지. 그래도 커플 사이에 끼우면 내가 괴롭지 네가 괴롭냐? 하지 말라고.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너 유수랑 뭔 일 있어? 유수 그 새끼 뭔데? 걘 뭐 어때? 옷 쏠때 꼭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 또? 둘이 합의하에 헤어진 거라고. 합의? 위련뚝뚝 손흥깔 해가지고 합의? 딱 봐도 완벽히 차였구만. 뭐래? 무식해서 말이 안 통한대.

아니면 백수라서 안심하대? 막상 만나보니까 조금 질리는 성격이래지. 말이 좀 심하다. 아니 그 유난 떨어놓고 1년도 못 만날 거면 아예 사귀지 말든가.

아니 혼자 잘만 지내는 애를 막 들쑤셔가지고 뭐야 이게. 캔디가 지금 아예 마탱이가 갔어. 야야 오늘 밤에 그냥 치자.

내가 이 옷을 유인할 테니까 네가 뒤에서 그냥 시게 쳐. 야 이 와중에 치는 건 나 시키냐? 그러니까 이게 첫사랑은 추억으로 남겨둬야 돼. 너도 후회되지? 괜히 사귀었다 싶지? 아니 난 후회 안 해. 이 옷 만나서 좋았어. 아니 후회 안 해. 거기서부터 한 번만 다시 해줘. 지금 감정 좋았거든? 액션.

야이씨 너 진짜 죽을래? 한 번만 더 할게. 너 이거 보험 들었지? 야 이게 흑역사도 역사야 기록할 의무가 있다고. 이게 추운데 기다려줬더니 진짜.

신발. 아이 신발. 여보세요.

여기 요양병원인데요. 강홀수님 따님 되시죠? 예 그런데요. 아 잠깐만.

아유 선생님 애들 혼자서 뛰어. 어디가. 오 깜짝이야.

오 깜짝이야. 괜찮아요. 엄마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왜 이래요? 요 며칠 설사하시더니 나트륨 부족으로 선망이 온 것 같아요. 다행히 감염은 아니고 최근 식사량이 적어서 그런 거니까 나트륨 수액 맞으면 좀 나아지실 거예요. 아니 근데 이렇게 헛소리를 하는데 수액 정도로 되는 거예요? 선망은 무엇보다 환자 안정이 중요해서요.

따님이 옆에서 손도 잡아주시고 계속 말도 걸어주세요. 엄마. 애를 왜 때려.

나 때리면 내 죄를 왜 때려. 옥희 왜 때려. 엄마 나 여기 있어.

나 나 나 옥희 여기 있어 엄마. 어머니도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아빠가 말한 게 정확히 이런 순간이었을까. 요새 왜 안 아프냐. 나 이거 일중이 아니랄까봐.

아빠 말에 대꾸도 안 하고 이따 엄마한테 달려야겠다. 어느 엄마? 호수야. 언젠간 너도 누군가를 괴롭게 할 거야.

옆에 있는 사람을 지게 만드는 순간이 너한테도 분명히 올 거야. 그치만 호수야. 사랑이라는 건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아빤 그 뒤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저주 같던 그 예언은 이루어졌는데. 끝냈지 못한 그 말은.

난 끝내 알 수 없을 거다. 그 문장의 끝도. 사랑이라는 것도.

우와. 예쁘다. 나도.

왜? 너 뭐 그 한강 처음 봐? 혹시 한강에선 치맥이죠? 남들 하는 건 다 알라 그러지 아주. 너네 이 날씨에 밖에서 치킨이 넘어가냐? 추울수록 더 맛있죠. 중국 안 먹을 것처럼 얘기하네.

안 먹어. 먹지 마라. 역시 다이어트에는 시련이 최고야.

야. 여기서 궁상 그만 떨고. 이거 먹고 나랑 같이 내려가자. 됐어.

아니 됐긴 뭐가 돼. 그건 너 유미래 그거 얹혀 살지도 못한다며. 서울 숨 쉬는 것도 이거 돈이야. 괜히 돈 쓰지 말고 같이 내려가.

아 너 혼자 가. 나 여기 있을 거야. 아니 넌 고등때부터 서울에 꿀 발라놨냐? 아니 땅을 팔려면 내려가서 파. 두 손님 가면 가족도 있고 나라도 있지. 너 여기서 땅 파는 건 또 옛날처럼 너. 아. 누가 꺼내줘 너를.

난 너 서울에서 구독사 하는 거 못 봐. 그 표정 뭔데? 내가 이 며칠 그런 상상을 해봤어.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서 방구석에서 날 끌어내야 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근데 잘 모르겠더라.

생각해보니까 내가 알아서 나온 게 아니었더라고. 난 방 안에서 나 혼자만 힘든 줄 알고 밖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생각도 못 해봤어. 우리 엄마는 대체 무슨 마음으로 문고리를 땄을까.

대체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 할머니처럼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유미래는 지 힘든 것도 말 못하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리고 송경구는 무슨 마음으로 이 시간까지 강바람 맞으면서 치킨을 뜯을까.

그 마음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겨우 나온 건데 내가 거길 어떻게 다시 들어가. 아무리 초라하고 힘들어도 여기서 뭐든 할 거야. 뭐든 해서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도. 변호사 만나더니 아주 입 터는 게 늘었어. 야 너 지금 이무수 여기 닦았지? 아니 안 닦았어.

아 닦았네. 아니야. 아 진짜.

아 왜 나한테 닦어. 아니 치킨은 원래 이렇게 손으로 먹는 거야. 아 짜증나.

드디어 가시네. 폭탄 던져놓고 지 혼자만 쏙 빠지는 거 봐. 저거 책상 좀 치우라 그래. 이제 저기 앉을 사람도 없는데.

수연 선배한테 전해주세요. 너지? 이런 일 벌일 만한 거 너 말고 없잖아. 정말 저 말고는 없다고 생각하세요? 네 생각대로 될 거 같아? 공정위까지 끌어들여서 나중에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래.

뒷감당은 제가 하는 게 아니지 않나요? 이러고 퇴사하면 끝일 거 같지? 내가 너 이 바닥 발도 못 붙이게 할 거야. 그럼 또 어디 갔지도 않은 데 들어가서 비슷한 문제나 일으키겠지. 어딜 가나 똑같을 거야 너. 국장님은 그게 제일 무서우신가 봐요.

뭐? 그럼 조사 잘 받으세요. 유선임님. 유선임님.

미래씨. 이거 두고 가신 거 같아서. 감사합니다.

저기. 그동안 보기만 해서 미안해요. 오늘 면담 때는 다 얘기할게요.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네. 어머님 좀 괜찮으셔? 감담에 좀 심하다가 헛소리는 좀 나아졌어. 탈날까 봐 억지로 안 먹였더니 오히려 이 사다리 낫다.

뭐 알고 그랬니? 넌 괜찮아? 선망은 옆에 사람이 더 고생이라던데. 헛소리로 자꾸 옛날 얘기해. 덕분에 나까지 시간 여행한다.

그러자마자 엄마 낳을 때까지 나 일 못 나갈 거 같은데 어쩌냐. 이 마당이 일이 문제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엄마나 신경 써. 그래. 

또 연락하고. 여보세요. 어머 교수님 어떻게 전화를 다. 아 호수 전화가 꺼져 있어요? 근데 호수 정기검진은 여름에 받았을 텐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좀 알아듣게 얘기해 주세요. 엄마. 나 누구야? 고기.

아니 왜 이렇게 말랐어. 노인 애가 고기 끓이면 끝인 거 몰라. 진짜 죽으려던 거야 뭐야.

애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엄마. 나 누구야. 나. 나 누구냐고.

그만 물어봐. 이제 좀 돌아왔네. 아빠가 나 때렸어? 밤새 그 소리 했잖아.

그래서 그 집에서 나온 거야? 근데 왜 소방 맞았다고 그랬어. 나한테 딸낳아서 쫓겨났다며. 니가 그 집에 다시 갈까봐.

아니 근데 왜 이렇게 꾸질이게 되겠어. 난 나 때문에 쫓겨난 줄 알고. 그래서 엄마가 나 원망하는 줄 알고.

내가 평생을 내가. 나처럼 살까봐. 너는 혼자서도 잘 살라고.

혼자서 어떻게 잘 살아. 난 여태 내가 엄마 인생 망친 줄 알았는데. 나 혼자 어떻게 잘 살아.

나 위해서 나왔으면 그렇게 말을 하지. 그 말 한마디가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렇게 끝까지 숨겼어.

이제 와서 이게 뭐야. 이게. 다 늦어서 이게 뭐냐고.

고기야. 미안해. 사과를 해. 뭐 마음 편해져서 뭐 가버리려고.

꿈도 꾸지마. 나 아직 엄마 용서 안 했어. 엄마가 미안해 하지 말라니까.

아니 하지 말라는데 왜 그래 정말 자꾸. 아 아 아 아. 이게 다 무슨. 안에 계셨네.

나대님 맞죠? 전원 꺼진 줄 모르고 잠갔네. 무슨 인사까지 부르셨어요.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 아, 바빠서 청소를 못했더니.

병원은 왜 안갔어? 나 다 알고 온거야. 옷입어. 지금 바로 병원가게.

병원은 나중에 내가 알아서 갈게. 알아서? 알아서 이러고 있었니 지금? 엄마. 뭐 죽을병 걸렸니? 돌발성 난청이잖아.

한시간 급한데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혼자 처박혀있으면 뭐가 달라지니? 이러고 피할게 아니라 해결을 해야될거 아니야. 피해요? 내가요? 엄마.

못피해요. 나 지금 못피해서 이러고 있다고요. 이미 병원 가봤고.

방법 없대요. 기다리는거 말고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고요. 근데 내가 피한다고요?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제발 저도 좀 알려주세요. 엄마. 엄마.

이 지경까지 왜 말 안했어? 딴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 말했었어야지. 도와달라고 했었어야지. 우리가 뭔데요? 뭐? 지금까지 떠맡다 키워준걸로도 이미 저한테 하실건 다 하셨어요.

더는 저 신경쓰지 말고 이제 엄마 인생 사세요. 뭐 할건 다 해? 아. 이제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 이거니? 아빠에 대한 사랑 이제 충분히 알았으니까. 피도 안 섞인 진덩이 더는 떠나지 마시라고요.

이 못된 자식.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뭐? 우리가 뭐냐고? 너 지금 그거 몰라서 진짜 묻는거야? 나쁜 자식. 나쁜 자식.

니가 뭘 알아. 니가 내 마음을 알아? 니가 내 마음을 뭘 아는데 떠들어. 니가 뭘 아는데.

엄마도 다 원망하잖아요. 아빠 죽인다 보면서 속으로 끔찍했잖아요. 그 끔찍한 애를 아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맡은 거잖아요.

원망하면서 지금껏 원망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았잖아요. 그래. 원망했다.

고집부린 너도 그렇게 가버린 니 아빠도 벌도 받기 전에 죽어버린 그 취한 놈도 원망했어. 그 뿐인 줄 알아? 하필 그날 죽은 니 엄마도 원망했고 그렇게 둘 보냈던 나도 원망했어. 세상에 원망스럽지 않은 게 하나도 없었어.

나 살고 싶지도 않았어. 근데 그때 니가 나 붙잡았잖아. 엄마.

오수야. 오수야. 오수야.

다 죽어가던 니가 눈 터서 나를 엄마라고 불렀잖아. 그래서 내가 붙잡혀 있었잖아요. 잡아준 거야.

니가 나 안 떠내려갈게. 니가 잡아줘서 그래서 내가 산 거야. 서로 붙잡으라고 아빠가 너랑 나랑 연결해준 거야.

오수야. 아빠와의 사랑은 추억이지만 너를 사랑하는 건 엄마 사는 이유야. 나를 살게 하는 니가 가족이 아니면 뭐니.

우리 뭐냐고? 너 내 아들이고 나는 니 엄마잖아.

니가 이 손 놔버리면 나는 어떻게 사니? 우수야. 그러니까 놓지마. 잡을 수 있는 거 다 잡아.

응? 우수야. 어머니네? 지금 막 잠들었어. 이거 뭐야? 이거 줘줘줘.

아니요, 아니요. 아이고, 줘. 잠깐만. 여기 앉아있다가 자. 아휴, 야. 뭘 이렇게... 할머니 상태 안 좋은데 왜 연락을 안 하고 있는... 아휴, 뭐 좋은 일이라고 너네한테까지 연락을 해. 이제 괜찮아.

근데 평일에 무슨 일로 내려왔어? 회사를 어떡하고? 아... 그게... 왜? 무슨 일이 있어? 나 오늘... 회사 그만뒀어요. 뭐? 너 설마... 그 저번에 미지랑 그래서 그런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니면...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왜? 그게... 잘 못 다녔어요.

좀 힘들었어. 그래서 미지도 바꿔준 거고. 그래, 잘했어.

뭐 회사가 거기밖에 없나. 미안. 뭐가? 계속 실망만 시키는 것 같아서.

엄마는 남이 곧 뒷바라지 했는데. 고시도 그렇고. 끝까지 해낸 게 없네, 내가.

밤새 할머니 옆 지키는데. 할 수 있는 게... 손잡아주는 거랑 기도밖에 없으니까. 옛날 생각나더라.

너 어렸을 때 입원했을 때. 갓 태어난 애가 바늘이며 귀에 주렁주렁 달고 있을 때. 제발 하루만 더 살아라. 그리고 기도하다가. 다 커서 입원했을 때. 아, 이번에 그냥 제발 좀 나아라.

이렇게 빌고. 근데 그 기도가 자꾸 들어주니까. 엄마가 욕심 부렸나 봐. 지금 이대로도.

엄마가 기도한 그대로니까. 실망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봐도 봐도 안 질려요? 저 집도 이제 정리하는 거예요? 일단 할아버지 짐들만 좀 정리하려고요. 혹시라도 후임 들어오면 저기 들어와서 살 수도 있으니까.

후임 정하셨어요? 애들이 심품종이라 그런지 도전적인 사람이 없네. 그보다도 여기 내려오셨다는 건. 퇴사를 하셨다는 거고. 퇴사를 하셨다는 건. 어, 어떻게 제 제안에 답할 준비가 되셨는지.

어떻게 돼? 뭘까? 사실 제안 주신 일. 저한테는 꿈이었어요. 거기다가 미국에 지낼 곳까지. 솔직히 과분한 제안이에요.

뭘 과분하게까지. 그냥 인턴이에요, 인턴. 나머지는 본인 학위에 달린 거지.

자, 그럼 간주점프하고. 과연 유미래 씨의 선택은? 거절하겠습니다. 아, 왜? 싫어. 

싫어! 그러지 말고 같이 가요. 인턴이라 그래요? 꿈이라며. 이거 진짜 되게 괜찮은 제안인데? 알아요.

그래서 거절하는 거예요. 제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무슨 준비가 필요하지? 나 사심으로 채용하는 거 아니에요.

나 그동안 쭉 여기서 유미래 씨 지켜봤잖아요. 되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서 제안한 건데. 제가 아직 저한테 확신이 없어서요.

이 마음으로 가면 뭘 해내도 다 한세진 씨 덕분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아이고, 고지식 진짜. 누가 우리 할아버지 아니랄까 봐.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한 번 끝까지 해보고 싶어요.

여기서. 뭘요? 농장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후임자 할게요.

지금 딸기 때문에 내 제안을 깐다고요? 시험 볼 때요. 나는 이게 맞는 것 같은데 저게 더 정답 같아서 골랐다가 틀리면 그것만큼 괴로운 게 없거든요? 내가 나를 못 믿어서 틀렸구나 싶어서. 더 정답은 미국 같은데 근데 이상하게 전 여기가 맞는 것 같아요.

괜찮겠어요? 겁 안 나요? 나죠. 근데 한 번쯤은 내 마음 가는 대로 택해보고 싶어요. 틀려도.

갑시다. 인수인계하게. 아, 이게 이런 느낌이었어? 어, 왜요? 제가 그린 거랑 똑같은데.

아무튼 간판은 며칠 걸린대요. 그동안 본 것 좀 볼까요? 음, 안 보고. 아, 이거는 위생교육 안내문인데 인터넷으로도 가능하다니까 이거는 제가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어? 법원에서 왔네요? 아, 법원 결정문인데 우리 저번에 등록... 등록부 정정... 지금... 신청... 한 거예요. 허가... 했다고요. 괜찮아? 잘 있다가 갑자기 왜? 그냥... 아, 갑자기 목이... 거긴 뭐 안 좋은 소리라도 적혔어? 아니요.

이게... 이호수 이름 보니까 이게 마음이 좀... 아, 미쳤나 봐. 죄송해요. 둘이 헤어진 거야? 에에? 아, 말도 안 했는데 사귄 건 어떻게 아셨대? 아, 진짜 우리 상원 씨 생각보다 눈치 빠르시다니까. 왜 헤어지자든? 그냥 그렇게 됐어요.

걔도 뭐 이제 바쁘고 저도 이래저래 할 일도 많고. 호수랑... 다시 얘기해봐. 내가 함부로 전할 얘기는 아닌데 사정이 좀 있어.

걘 괜히... 너 부담 안 주려고... 알아요, 선생님. 저 다 알아요. 안다고? 아니, 아는데 그냥 헤어진 거야? 네. 왜? 보아하니 싫어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넌 소금을 맞아도 문 두드리다가 결국 여는 애잖아. 아, 네 성격에 집 앞에 드러눕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왜 그냥 둬? 호수 마음을 아니까요. 저도 그랬었거든요.

내가 나인 게 너무 괴로워서 몇 년 동안 방 밖으로도 못 나갔었어요. 그럼 더 잘 알겠네. 극복해봤으니까.

극복을... 못했어요. 할머니가 쓰러지셔서 얼떨결에 나온 거지 저 스스로 나온 것도 아니에요. 나왔으면 극복한 거지.

몸만 여기 있지. 아직 못 나왔어요. 저요... 아직도 혼자 있을 때는 방문도 못 닫아놔요.

예전처럼 못 나오게 될까 봐 무서워서. 아, 진짜 어이없죠. 그냥 제가 안 그러면 되는 건데 그게 뭐가 무섭다고.

그 난리를 썼으면 좀 나아져야 되는 건데 그걸 못해서 그런 제가 너무 한심하고 멍청해서 그거 들킬까 봐 그냥 괜찮아진 척했어요. 이런 주제에 제가 호수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요. 일단 제가 호수한테 뭘 해줄 수 있겠어요.

꼭 뭘 해줘야지만 옆에 있을 수 있는 거야? 그냥 옆에서 너 할 수 있는 거 하면 안 돼? 미지 두드리는 거. 나 여기 있다. 문 열면 바로 여기 있다. 계속 두드리면서 알려주면 되잖아.

너 전에 그랬지? 이렇게 내 손 꽉 잡고 아직 모르는 거라고. 그때 뭐 알고 그랬어? 똑같이 답은 몰라도 내 옆에 있어줬잖아. 다음번에 CT랑 뇌파 측정하러 가면 청력 검사는 저번에 다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돼. 예약 날짜 잃지 말고 전날에 문자 올 거야. 그날 일 없으면 엄마도 올라올 거고. 왜 웃어? 예전 같아서요.

이제 엄마 고생 안 시키나 했더니 다시 원점이네. 원점은 무슨 그때랑 지금이랑 비교가 돼? 그리고 엄마가 하루에 처리하는 공문이 몇 갠데 이게 무슨 고생이라고. 왜 혼자 그랬어? 안 들릴까 봐 그렇게 겁났어? 혼자면 그냥 나 무서운 걸로 끝나는데 옆에 누가 있으면 그 사람까지 괴롭게 할 거 같아서.

누가 아들 아니랄까 봐. 어쩜 하는 말까지 아빠랑 똑같아. 아빠요? 결혼하기 전에 아빠가 한 번 헤어지자 그랬었거든? 자꾸 자기가 나를 괴롭게 만든다나. 자기 옆에 계실 거면 내가 지게 될 거라고.

똑같은 얼굴 하면서 그렇게 말하길래 속으로 천불이 나서 내가 막 그랬거든. 어떻게 사람이 이기기만 하냐고. 당신도 언젠가는 나 때문에 지는 날 올 거라고.

우수야. 언젠간 너도 누군가를 괴롭게 할 거야. 옆에 있는 사람을 지게 만드는 순간이 너한테도 분명히 올 거야.

그치만 우수야. 사랑이라는 건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지더라도 끝까지 한 편 먹는 거라고. 백 번이라도 천 번이라도 옆에서 함께 지는 게 사랑이라고.

우수야. 사랑이라는 건 안녕.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지더라도 끝까지 한 편이 돼 주는 거야.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우리끼리 있을 때까지 진짜 가족인 척 할 필요 없잖아요. 백 번이라도 천 번이라도 옆에서 함께 지는 게 사랑이야.

저요. 아직도 혼자 있을 때는 방문을 못 닫아요. 예전처럼 못 나오게 될까 봐 무서워서.

이딴 제가 우수한테 뭘 해줄 수 있겠어요. 그냥 옆에서 너 할 수 있는 거 하면 안 돼? 미지. 너 잘하는 거. 두드리는 거. 나 여기 있다.

문 열면 바로 여기 있다. 계속 두드리면서 알려주면 되잖아. 너 전에 그랬지? 아직 모르는 거라고.

똑같이 답은 몰라도 내 옆에 있어줬잖아. 진짜 나갈게. 밖에서 다들 기다려.

문만 열면 바로 앞에 있으니까. 넌 언제든 문만 열면 돼. 미지 미지야. 할머니 들어갈게.

우리 애기 괜찮아. 도읍도독 들고 일어나지. 엄마는 아닌데. 

엄마. 엄마는 아니야? 어? 이효주. 네가 여기 어떻게... 내가 지금 너한테 가려고 했는데... 미지야, 미안해.

내가 바보 같았어. 너한테 그랬으면 안 되는데, 내가. 아니야. 

내가 너한테 더 빨리 가고 싶었는데. 내 옆에 있어줘, 미지야. 같이 있어줘.

내일을 약속한다는 건 기대가 아닌 다짐. 걸어온 길은 후회로 가득하고, 걸어갈 길은 두려운 뿐이지만. 유선임님, 오늘 퇴사했어. 

이거 누나한테 전해주래. 옆에 없어도 저는 항상 선배와 함께였어요. 그러니 부디 선배에게 너그럽기를, 제게 그러했듯이 다정하기를.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이 길을 함께 걷겠다는 결심. 마주할 결말이 초라한 뿐이여도, 끝까지, 앞으로. 혼자 힘겨운 맘에 열어보지 못했어.

We're on the train 오늘은 아팠던 맘에. 이거 뿌리면 이제 유기농 아닌데? 저 유기농 안 할 건데요? 그럼 이건 어때요? 내가 초기 자금 투자하고, 수익금 파해. 미지 걔, 열애 같은 애 걔는 관심도 없어. 

너네 뭐야, 어? 너 고수 아픈 건 아냐? 약물이 있든, 입원 치료든, 해버릴 수 있는 건 다 해버리고. 혹시 나랑 일할 생각은 없어? 엄마, 할머니가 왜? 비키라. 가자. 

이제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