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Unwritten Seoul" Drama Transcript: Episode 7 (Full)

미지의 꿈이 문방구 아저씨던 시절, 내 꿈은 나무였다. 나무라면 바늘에 찔려도 아프지 않았을 텐데.


왜 나는 아파서 모두를 힘들고 슬프고 화나게 만드는 걸까? 그때부터였다.


나무인 척 참기 시작한 건. 아픈 건 어쩔 수 없어도 울지 않는 건 할 수 있으니까.


반짝이진 못해도 참는 건 내가 할 수 있으니까. 어차피 오늘 안 들어갈 거라고 얘기해놔서.


여기 올 생각으로 얘기한 건 아니고요. 이거 소문이 더 커지겠는데 큰일 났다 진짜.


진짜 왜 왔어요? 친구가 가고 싶은데 어디든 데려다 준다고 했는데 여기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왜? 밖에 있는 건 다 가짜고 여긴 진짜니까요.


저한테 근데 소문은 왜 그렇게 싫어해요? 좋아할 이유도 없잖아요.


난 좋던데. 우리 둘 소문.


배가 고프면 고프다, 추우면 춥다 말 좀 해요. 말 좀.


나는 어떻게 배에서 천둥 칠 때까지 아무 얘기를 안 해. 면이 먼저냐, 스프가 먼저냐.


그것이 문제로다. 참고로 전 스프 파다.


자고로 이 건더기가 먼저 들어갔죠. 이야 체수가 우러나는 법이거든요.


사실 찬물에 면을 넣든 끓는 물에 넣든 똑같대요.


근데 사람의 감성이라는 게 아무래도 찬물에다 면을 넣는군요.


이름이 한세진이에요? 여태 이름도 몰랐어요?


그거 내가 먹은 거 아니에요? 이한 자산 운영의 그 한세진이라고요?


왜 알지? 주식하세요? 휴디바이오 공개 매수건은 진짜 그거 모티브로 소설도 나왔잖아요.


그리고 영민제철 소액 주주도 설득해서 지분 1% 차이로 경영권 가져왔을 때는 진짜 드라마도 그렇게 만들면 욕먹는.


왜요? 말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안 하는 거였네.


어떻게 참았대요, 그동안. 아니 그래서 좋다고 좋다는데 왜 흥이 식어?


더 해봐요, 더. 아, 됐어요.


들어보니까 나보다는 행동주의 펀드 쪽에 흥미가 있으신가 본데.


흥미 정도가 아니라 졸업 논문 주제가 주주 행동주의.


선생님 고등학교도 졸업 논문 써요? 아니, 읽었다고요?


그 주제에 논문이 많더라고요. 논문까지 찾아볼 정도면 흥미 정도가 아닌데.


근데 내 이력은 줄줄 꿰고 있으면서 어떻게 또 얼굴은 못 알아봤대?


그냥 여기서 노무사 짓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럼 뭐 생각했는데요? 제일 유력한 썰이 뭐였지?


러시아? 러시아 마피아요.


마카오 도박 및 500억 횡령. 근데 전 하나도 안 믿었어요.


다 헛소문 같아서. 오, 동업자한테 쫓겨나서는 얘기 안 하시네.


그건 또 믿었나 봐. 다 떠도는 얘기일 뿐이에요.


이 대표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뭐 이렇게 태풍까지 뚫고 올 정도의 동업자도 아니지만.


근데 진짜 왜 그만둔 거예요?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라졌잖아요.


궁금해요. 모레 알려드릴게요.


내일도 아니고 모레는 또 뭐예요? 그냥 그쯤이 괜찮은 거 같아서.


듣다 보니까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왜 여기 이러고 있어요?


아니, 말수도 적은 사람이 이렇게 줄줄 얘기할 정도면 되게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건데.


투자 쪽 일을 볼 생각 없어요? 학력, 조건 이런 거 다 떠나서 난 본인 마음이 궁금한 거예요.


뭐 좋아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왜?


집마다 사정이 있잖아요. 가족들도 있는데 나만 생각할 수도 없고.


왜? 왜라뇨. 다들 나 때문에 희생했는데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해요?


제 생각에 지금 얘기들은 다 러시아 마피아 같은 거예요. 네?


진짜 이유가 아닌 거지. 난 진짜가 궁금한데.


오고 있지? 그때 왔던 회의실로 오면 돼.


곧 도착해. 거절하라고요? 무조건?


다음에 회사 갈 때 그땐 그냥 안 판다고 그래.


그렇지만 저번 미팅에서 주도권도 잘 가져왔고. 선생님 원하시는 조건으로 제가 얼마든지 협상해 볼 수 있는데요.


원하는 거 없어. 그냥 더 말 안 나오게 잘 마무리 지어줘.


네. 친구 좀 덜 혼나게. 네, 왔네요.


어느 로펌 들어갔나 계속 궁금했는데. 개업했으면 말을 하지.


난이라도 보냈을 텐데. 나는 받은 거로 하겠습니다.


이 정도 일 맡으실 분 아닌데 일부러 이렇게 척 보러 와주셨잖아요.


인연이라는 게 참 희한해. 무슨 미납 청구서처럼.


만날 얼굴은 아무리 피해도 다시 만나게 되잖아. 우선, 너 김로사 씨 장학생이었다며?


뭐 은혜 갚으려고 이번 일 맡은 거야? 아니면 동창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건가.


그 친구도 이미 다 압니다. 그때 저한테 외부 조사 지시한 게 선배님인 건 아직 모르지만요.


유미래 씨가 너한테 중요한가 봐. 네가 그런 얘기를 다 한 거 보면.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저희 의뢰인은 로사 식당을 팔 생각이 없습니다.


오늘 자리는 최종적으로 거절 의사를 전달하러 온 겁니다.


협상도 없이 무조건 거절이다? 왜?


건물 소유주가 팔기 싫다는데 뭐 딱히 이유가 더 필요한가요?


너도 모르는구나. 네?


상식적이지 않은 선택에는 늘 이유가 있는 법이야.


근데 네가 그 이유를 모른다는 건. 네가 굳이 묻지를 않았던가.


네가 그 정도로 신뢰받지 못하던가. 둘 중 하나 같은데.


호수. 넌 그게 문제야. 그 이상한 결벽 때문에 선을 안 넘잖아.


다 알면서 입 꾹 다물고 지켜보는 거? 그거 배려 아니고 방관이야.


안 판대서 그냥 안 판다고 전화를 왔다? 그리고 김로사 씨한테도 유미래 씨한테도 전혀 도움이 안 되잖아.


그 둘은 오히려 내가 돕는 거 같은데. 돕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거겠죠, 선배님을 위해서.


너 그 중요한 유미래 씨가 회사에서 어떤 상황 겪는지는 제대로 알아?


난 알아. 그리고 그걸 해결해 주려고 하고.


이영이든 뭐든 난 유미래 씨한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애쓴다고.


네가 그걸 지금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지만. 선배님.


그러니까 선 좀 넘어. 뒷짐 풀고 이유 묻고 설득을 해.


내가 기회 줄 때 중요한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라고.


기회라고요? 결국 팔게 될 테니까.


알잖아. 난 원하면 그렇게 만드는 거.


뭐야? 벌써 끝났어? 네가 모두를 도울 수 있는 길이 뭔지 잘 생각해.


얘가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속눈썹이 꽤 기네.


눈썹은 일부러 다듬은 건가? 입술도 꼭 뭐 바른 것처럼.


왜? 아니, 혹시 다음 주엔 좀 바쁜가?


다음 주? 뭐, 왜?


미지랑 자리 한 번 만들어 줄까 해서. 응?


아니, 뭐 걔 다음 주에 서울 한 번 온다길래. 첫사랑이라면서 얘긴 한 번 제대로 해봐.


자세히 말은 안 하는데 미지 걔도 너한테 할 말이 있잖아.


어, 뭐 걔 편할 때 자리 만들어줘. 그럼.


그래. 돈은 진짜 나 아니면 어떡하려고 그랬냐?


그 배웅 안 해줘도 되는데. 나 점심 먹으러 가는 건데?


뭐 너도 같이 밥 먹을래? 오늘은 누구 좀 봐야 할 것 같아서.


아, 그래. 그럼 빨리 가.


그 나중에 미지랑 자리 만들면 연락 줘. 그래, 갈게.


잠깐 봐. 할 얘기 있잖아, 우리.


갑자기 무슨 할 얘기가 있다는 거야. 기우수 얘기인가?


왜 아직도 버티고 있어요? 저 저는 아직 일행이 안 와서.


아, 여기 자리 있어요? 이제 날 놀리네.


그래, 그 정도면 뻔뻔해야지. 고개 쳐들고 회사 다니지.


아니, 자기야. 누구신데 서운하네.


난 유미래 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는데. 나 박상혁 와이프.


이제 기억나나 봐. 근데 내가 한 말은 기억이 안 나?


염치라는 게 있으면 그이 돌아오기 전에 알아서 사라졌어야지.


망신 더 당해봐야 정신 차릴래? 아니, 그게 무슨.


자기야,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제 친구한테?


상관없는 사람 빠져요. 이건 나랑 유미래 씨 일이니까.


그럼 유미래를 찾아가. 왜 엉뚱한 사람 갖고 지랄이야?


뭐? 얘 유미래 아니라고요.


아, 그, 그게 무슨. 아니, 사람 헷갈렸으면 사과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별 미친 사람을 다 보겠네. 진짜.


야 미지야, 가자. 그걸 왜 가만히 두고 앉았어?


그런 거까지 미래 따라 하는 거야? 박지훈, 너 어떻게 쟤.


뭘 어떻게긴 어떻게야? 너 공사 얘기할 때마다 어리바리 깠잖아.


혹시나 해서 떠봤지. 내가 등 안 떠밀었으면 거기 지원했겠어, 네가?


그치. 내가 못 들어가서 안달인데 미래한테 왜 권해?


그리고 내가 등 떠민다고 떠밀리는 애야, 걔가?


아, 그것 때문에 한 거였어? 뭐 정확히 미지 넌 거 확신한 건 그거보단 그 다음 말이었지.


너 뭐라 그랬는데? 어른 같다며 솔직하고 좋아 보인다며.


그런 말은 미지 너나 하는 거지. 그때 너구나 했어.


그래도 미지, 너를 이렇게 만난 애 계속 궁금했었어.


근데 네가 나 싫어하니까 연락 안 했어. 내가 너를 왜 싫어해?


왜 시침이야? 너 나 대놓고 피했잖아, 옛날에.


그때는 그냥 네가 나한테 실망한 거 같아서. 야, 나 너 1호 팬이야.


실망을 왜 하냐? 말을 잘못해서 그러고 있어.


근데 오늘 만나서 할 얘기를 하는데. 뭐야?


몰라. 이호수 가로채 간 거 열받아가지고 확 깽판이나 칠까 했더니.


괜히 이상한 데 선수 뺏겨서 엉뚱한 사람이랑 붙었네.


너 혹시 이호수한테도 말했어? 걔도 알아?


글쎄. 아나? 모를걸.


아, 안다는 거야, 모른다는 거야. 그런 거까지 안 도와줄래?


직접 물어보든가. 아니, 근데 아까는 왜 진짜 그냥 가만히 있었어?


난 네가 그 여자 보면 머리채라도 그냥 확 쥐어잡을 줄 알았어.


너도 아는 사람이야? 혹시 뭐 아는 거 있어?


너 몰라? 미래가 얘기 안 했어? 소문?


무슨 소문? 미래 같은 부서 상사랑 불륜 스캔들 같은 게 있었어.


그 여자가 부인인데 그 공사 로비에서 미래한테 행패 부려가지고 소문이 퍼졌나 봐.


야, 너 유미래 몰라? 걔 그런 걸로는 무슨 결벽증 있는 애야.


그런 애가 뭐 불륜? 그것도 유부남이라?


미쳤냐? 걔가 뭐가 부족해서. 나도 처음엔 당연히 안 믿었지.


근데 같은 회사 사람들 댓글에 미래 막 사진까지 돌아다니니까.


뭐 속사정은 모르는 거니까. 아, 절대 아니야.


말이 되는 소리를 믿어야지.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엄청 시끄러웠어.


심지어 나도 공사 취준 카페에서 보고 알았을 정도인데.


회사에선 더 했겠지. 일단 링크 보내줄 테니까 미지, 네가 직접 보고 판단해.


아, 유미래 진짜 이런 일 있었는데도 말도 안 하고 집에 있었어?


언제 들어왔어? 소리도 없이. 아, 나 새벽에 와서.


엄마. 근데 지금 왜 출근해?


아, 임시 휴업. 태풍 복구 작업한다고.


너 서울 간 사이에 여기 난리도 아니었어. 정전에 다리 다 잠기고.


아, 진짜? 뭐 경희 덕에 난리 피해서 서울 잘 다녀왔네.


오랜만에 멀리 나갔다 왔는데 좀 쉬어.


엄마 간다? 어, 갔다 와.


어, 쉬어 얼른. 어, 미지야.


유미지, 왜? 어, 여기 미지 온다.


빨리 와. 호수가 너랑 할 얘기가 있대.


야, 빨리. 엄마 갔다 올게.


그래, 얘기 나누고 가. 어, 또 봐.


뭐 마실 거라도 줄까? 좋지.


근데 나한테 뭐 할 얘기가 있어서 여기까지.


제대로 얘기를 못 했으니까. 저번에 왔을 때 다 얘기한 거 아니었어?


너한텐 아직 못 했잖아. 유미래.


어머, 안녕하세요. 어머, 세상에 난리가 났네, 진짜.


아니, 학교다. 난리가 났네. 잠깐 여기 같이 하면 돼?


아, 네. 선생님은 여기 2층에 좀 올라가 주세요.


거기에 물청소 한번 해야겠더라고. 네.


아, 참. 네? 아들 내려왔더라. 호수가?


내려온다는 얘기 없었는데? 뭐 잘못 본 거 아니고?


아니, 우리 집에 찾아왔더라고. 미지랑 단둘이 할 말이 있다나.


우리 호수가 미지랑 할 말이 뭐가 있어? 난들 아니?


호수가 찾아온 건데 뭔 얘기를 하려는지 표정이 심각해가지고.


미지가 더 당황하던데. 뭔 일 했는데 엄마들만 모르고 있는 거 아니야?


동창끼리 막 사돈만. 무슨 사돈이야.


그런 사이 아니에요. 큰일 날 소리 하시네.


농담한 걸 갖고 뭐 정색을 해? 옆사람 민망하게?


아니, 호수랑 미지랑 뭐 하나 접점이라고 할 게 없는데 괜한 소리 하시니까.


참, 뭐야. 우리 딸 마음에 안 찬다는 소리를 아주 돌려돌려하네.


야, 나도 수발 들어야 되는 사위는 사양이거든?


너 아까 그거 무슨 뜻이야? 깜짝이야.


뭐야, 갑자기 뭐가? 수발 들어야 되는 사위라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뭐가 무슨 뜻이야.


네 아들 잘났다고 그거 아니잖아. 너 우리 호수 몸 불편한 거 가지고 그런 소리 한 거잖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넌 비유라는 것도 모른대.


그러니까 그런 비유를 왜 주냐고. 우리 호수가 뭐 병자야?


아니, 혼자야? 못 움직여?


야, 왜 수발을 들어야 되는데. 야, 너 지금 나 쳤니?


어? 사과해. 아까 한 말 사과하라고.


아니, 내가 뭐 사과를 할 게 있어야 사과하지. 그런 뜻으로 한 소리도 아닌데 왜 혼자 난리야.


아우야, 정말. 비켜.


피해 의식이야, 뭐야 정말. 이제 얘기할까?


미지가 말했어? 너희 계속 만나고 지낸 거야?


너인 거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거면 저번에 너 만나고 알았어.


계속 만나긴 했나 보네. 그 대답은 피하는 거 보니까.


그게 너한테 중요해? 중요하지.


나는 분명히 만나지 말랬고 유미지는 약속했으니까.


그래서 나한테 할 얘기라는 게 뭔데? 박상혁 수석 성희롱으로 사내 고발했다가 갑자기 취하한 거 왜 그런 거야?


다 끝난 일. 네가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있는지 지금 묻는 거야. 내가 외부 조사관으로 들어간 그날.


너 나 보자마자 도망치듯 사라지더니 바로 고발 취하했잖아.


나 때문인가 싶어서 계속 연락했는데 내내 안 받다가 쌍둥이가 대신 출근하고 있어.


정말 다 끝난 일 맞아? 너 설마 이거 미지한테 다 얘기했어?


처음엔 넌 줄 알고 사내 고발 얘기는 했어. 근데 미지는 전혀 모르는 눈치고.


나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래서 너한테 직접 물어보려고 온 거야.


내가 도울 게 있나 해서. 돕는다고?


누가 너더러 도와달래? 나 때문에 꼬인 일이니까 내가 풀게 해달라고.


박상혁 그 사람이랑 정확히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너 지금 선 넘는 거야. 넘으려고 온 거야.


박상혁 수석 담당인 거 알고 받으셨어요? 내가 미리 완전 미친년 만들었네.


근데 왜 나한텐 얘기를 안 했지? 그땐 그냥 비리 고발한 선배 편 들어주다 그랬다고.


아니, 그럼 그 새끼들은 고작 면담 때 그 한마디 했다고 1년을 괴롭힌 거야?


사람 싫어하는데 이유가 또 뭐 있어. 사내 고발 취하한 거.


이번 같은 성 관련 이슈에선 피해자가 주변에 사생활 퍼질까 봐 도중에 취하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아, 좀 보지 말라면 그냥 보지 마. 약속했잖아.


각자 삶을 건들지 않기로. 직접 듣자.


나중에 김옥희 씨, 엄분홍 씨 계단에서 같이 미끄러지셨고.


아니요, 아니요. 제가요. 두 분 다 내릴 판.


글쎄요. 제가 제가 잡아당겼어요. 상처는 잘 꾸며졌고.


철심 박을지 말지는 내일 정형외과에서 결정할 예정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2인실 자리 하나 놨다니까. 일단 뭐 하루 이틀 입원하고 경과 보시죠.


야, 미지야. 나는 쟤랑 병실 같이 못 써.


난 나는 못 써. 엄마 무슨 일이야.


어떻게 하더라도 계단에서 같이 내려오세요. 나는 지금 내가 여기 있을 게 아니라 난 경찰서 가야 돼.


아니, 계단에서 사람 머리채를 잡아? 너 이거 살인미수야, 너 이거.


너 그거 쬐끔 꾸며놓고 난리야. 나 지금 여기 철심 박게 생겼어.


아니, 지가 자빠져놓고 누구를 탓하고 있어. 나는 정당 방위야.


나는. 아, 법적으로 한번 제대로 따져볼까?


법적으로 따져? 호수야. 야, 그래, 호수야.


네 아들 너 변호사지. 법적으로 따져봐.


일단, 일단, 일단 두 분 다 흥분하지 마시고. 저기요, 학교 CCTV 한번 까봐.


너희 엄마가 밀었어. 엄마 성격 알지? 응.


야, 뭐라고? 야 이 천벌받을 이 염분한 기집애.


엄마, 엄마. 야, 너 내가 이기는 거야.


너 봐봐, 호수야. 부끄러우니까 건들지 마라.


머리 뽑힌 거나 봐. 이거 지금까지도 머리카락 나오잖아, 이거.


아이고, 너 미지 불렀어? 어, 왜?


유미지 아직 나 아는 거 몰라. 근데?


이상한 부탁인 거 아는데 일단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걸로.


뭐? 야, 유미래 뭐야? 갑자기 내려오라더니 병원에는 왜?


응, 엄마 분홍 아줌마랑 싸우다 좀 다쳤어. 하루 이틀 병원 입원해야 된대.


어? 아, 그래서 이호수도 내려온 거야?


너 왜 왔냐는데. 어, 그게 잠깐 볼일이 있어서.


아, 볼일이 있었구나. 여긴 어떻게?


저 오늘 늦는다고 했잖아요. 어머니 입원하셨다면서요.


내가 어르신들 건강 이슈에 좀 민감해. 엄마 괜찮으니까 그만.


뭐, 서울? 뭐야, 진짜 똑같아.


진짜 똑같아. 누구? 나요.


딸기, 딸기. 뭐야, 설마 진짜 딸기 안 보냈어요?


아, 그 1대 20. 오, 내 얘기했나 본데.


저희도 저번에 뵀었죠. 그때 집 앞에서 기다리시던.


아, 네, 안녕하세요. 그만 가세요.


이제 갈 데도 없는데 뭘 자꾸 가래. 다들 아직 식전이시죠?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우리 같이 밥 먹어요.


뭐야, 이 눈빛 교환. 아, 지금 나를 따돌리는구나.


다들 피곤하니까 그러지 말고 가요. 피곤해도 밥은 먹을 거 아니에요?


제가 진짜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 눈빛 교환 금지.


다들 4장 정도는 드시죠? 사장님.


네, 네. 여기 전골 3인이랑 어린이 돈가스 하나요.


아, 네. 아, 제가 비위가 약해서 4장을 못 먹어요.


근데 여기 맛집이에요? 아, 이것도 내가 진행을 해야 되는데.

우리 통성명부터 할까요? 자, 이렇게 돌아가면서.


나는 한세진 이호수입니다. 아, 이미래입니다.


미래? 오, 미래 이름 좋다. 쭉 서울 사셨다면서요? 직장은 어디 다니세요?


아, 이런 거 물어보면 안 되나? 공사 다녀요.


한국 금융관리공사. 오, 멋지다.


그럼 대학도 그쪽 전공하시고. 아, 이런 거 물어보면 안 되나?


어... 경제학과 나왔습니다. 저쪽에 물어보면 되겠네.


우리 동업자도 그쪽에 관심이 많아서 맨날 막 논문 찾아보고 그래요.


와, 이게 자매는 다 관심사가 비슷한가? 신기하네.


오... 미지가... 아, 그랬구나.


우리 호수 씨 같은 경우... 자, 말하지 마세요. 제가 맞출 거예요.


나 이거 촉 되게 좋으니까 조심하세요. 쓰읍... 법?


법의 향기가 좀 나는데? 로스쿨 다니시죠!


졸업했습니다. 어, 왜요? 뭐야?


오, 나 맞췄어! 닭살!


쓰읍... 근데 한세진 씨 농장은 어느 쪽이에요?


아, 뭐 제가 아는 데인가 해서. 쭉 서울 사셔서 모르실 텐데?


저기 다리 건너 창화농원이라고. 응?


거기 할아버지 혼자 하시던데 아니에요? 유학 간 손자 있고.


우리 할아버지 아세요? 네, 엄청 과묵하시잖아요.


아휴, 손주 자랑하실 때만 좀 말씀하셔서 기억나요.


그 손자시구나? 아, 뭐야.


우리 할아버지 얘기 다른 사람한테 들으니까 눈물 나려고 그래.


아, 근데 애라고 하셔서 좀 어릴 줄 알았는데.


쓰읍... 너무 큰 손주인데. 방금 회심의 개그?


쓰읍... 우리 서울 씨 볼수록 마음에 드는데 우리 악수해야 할 것 같아요.


악수합시다. 에? 갑자기?


네, 갑자기. 반갑습니다.


네, 꺼질게요. 시동 좀 걸어볼게요.


네. 야! 야, 야, 야!


아, 그래서. 아, 나 진짜 왜 내려오라고 한 거야.


끝내려고. 뭘?


너 이제 여기 있어. 내가 올라갈 거야, 서울.


아, 야, 야, 야!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이렇게 갑자기?


아니, 지금 이호수도 내려와 있는데 급하게 바꾸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멍청아, 이호수 다 알아. 우리 바꾼 거 알고 내려왔다고.


어? 하... 그러게 그렇게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이호수는 왜 만났어.


아니, 나는... 됐어. 나중에 집에서 얘기해.


아이... 하... 하... 이호수도 다 알고 있었다고?


미지랑 자리 한 번 만들어 줄까 해서. 너 첫사랑이라면서.


미지 걔도 뭐 너랑 할 얘기가 있잖아. 너네는 진짜 나 아니면 어떡하려고 그랬냐?


하... 쪽팔려, 씨... 하...


용미지는? 어? 아, 저... 단일 간다고.


넌 집으로 갈 거지? 가야지, 집에.


내일 병원은 언제 가? 난 오전에 갈까 하는데.


아... 아... 몰라, 얘기해보고.


뭐라고? 아... 이...


용미지랑... 이따 얘기해보고 정한다고.


미쳤어. 미지 다 안다는데 미지 소린 척 왜 해.


아, 진짜 나 쪽팔려서 어떡해, 나 이게. 아, 쪽팔려.


야, 예슬아. 아까 미지 왔던데?


에? 진짜? 호수야, 여기 있었구나.


미래? 미지? 아, 저 미지예요.


그래, 둘 다 하나 같이 찍어야지. 자, 같이 옆에 서 봐.


자, 하나, 둘, 셋. 한 번 더.


축하해. 감사합니다.


그래, 용미지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어?


나도 요새 미지 잘 못 봐. 다치고 나서는 밖에 잘 안 나와.


보기 싫은가 봐, 전부. 일 시키려고 데려다 준다는 건 아니었는데.


기분이다. 오늘 특별 수당 보너스 드리겠습니다.


됐어요. 오늘은 그냥 도와드리는 거예요. 그동안 감사의 의미로.


요새 멘트가 작별 인사 같아. 왜요?


드디어 꿈을 찾아 떠나기로 하셨나요? 꿈에서 깨는 쪽이죠.


또 아시잖아요. 아, 서울 씨 되게 사람 괜찮더라.


얘기만 들었을 땐 새침할 줄 알았는데 호탕해.


먹물이 호탕하기 쉽지 않은데. 마음에 들어.


다들 좋아해요. 특히 내가 자기 자매한테 개수작 부릴까 봐 경계하던 그 눈빛 아주 마음에 들었어.


아무튼 이제 가족 핑계는 못 대겠는데요. 서울 씨는 딱 봐도 동업자가 도둑질하며 망 봐줄 스타일이야.


가족들은 별 생각 없는데 지뢰 걱정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하고 싶은 거 해도 되지 않나? 왜 자꾸 그렇게 말해요?


뭐가요? 어제부터 핑계니 뭐니.


저로 살아본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함부로 말해요.


세상 사람들이 다 한세진 씨처럼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가족 빚 그런 거 다 한심한 핑계로 들리겠지만 저한테는 그게 현실이고 불가피한 이유들이에요.


알아요. 그거 다 내가 했던 얘기니까.


제가요. 고딩 때 뜬금없이 공무원 시험 준비했거든요.


유학 가기 싫어서. 뭐 어차피 떨어졌을 거야, 한자가 많아서.


근데 하루는 할아버지가 학원에 와서 물어보더라고.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냐고. 레퍼토리 뻔하지.


뭐 할아버지 나 때문에 이 생활을 하는데 어떻게 나만 좋자고.


집에 빚도 있고 가족이라고 나밖에 없는데. 그랬더니 안 그러던 양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라고. 네 마음 빼고는 다 가짜고 핑계라고.


그럼 진짜 이유는 뭐였는데요? 쫄리잖아요.


다들 나 잘할 줄 알고 떠미는 건데. 아니, 뭐 잘하는 게 당연한 거냐고.


생각해 봐요. 망설여지는 진짜 이유가 뭔지.


내일? 그럼 출근은 어쩌고. 연차 쓸 테니까 내일 얘기하자고.


잘래. 문 닫아라.


아, 왜 그냥 네가 병원 가고 내가 청년회 가면 되잖아.


내가 서울에서 내려와서 복구 작업을 간다고?


아니, 병원 꼭 가야 돼? 엄마 많이 다치지도 않았다며.


그냥 엄마한테는 전화만 하고 오늘은 할머니만 기껏 휴가 내고 내려와서 얼굴도 안 보고 올라갔다 그러면.


엄마한테 난 뭐가 돼. 가라.


나 불행을 만들지 말고. 나 기다리는 거 아니지?


우리 집 금방 나올 거야. 유미래.


우리 어제 못한 얘기 나중에 일 끝나면 내가 연락할게.


저기 고마워. 어제 미지한테 말 안 해준 거.


그냥 얘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 말했는데?


우와, 깜짝이야. 차차.


내가 아, 이거 너 놓고 왔네. 아, 뭐 놓고 왔구나.


가져오면 되겠다. 여기 있을게. 아니야.


나 되게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래, 너 먼저 가.


먼저 오면 또 어떻게 알고 마스크를 센스 있게 가지고 왔어.


하루에 입원하는데 유난히 수건 줄줄이 널어놓은 네가 유난히고.


미래야. 어머, 야, 미래야.


네가 여기 웬일로 혼자 온 거야? 어, 미지는 청년에 일이 있다고.


어머, 미래야. 이게 얼마만이니.


더 예뻐졌네. 우리 호수랑도 오랜만이지?


네, 안녕. 어, 안녕.


내 이름은 태어났는데. 왜 왔어?


내가 회사라 좀 바쁜데. 이거 또 뭐야?


이거 이번 동안 필요할 게 있을 것 같아서. 유난히긴 한데.


아, 유난은 무슨. 내가 건조했는데 잘됐네.


우리 미래랑 호수랑 통했네. 배려도 지능이라던데 똑똑해서 그런가.


둘 다 마음 씀씀이가 참 섬세해. 근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전에는 자매가 똑같더니 확실히 크니까 구분이 되네.


그래? 미래는 딱 봐도 숙녀잖아. 미지는 아직 애기 티 나는데.


어머, 미래는 뭐랄까. 분위기 자체가 차분하니 인텔리전트하다 그럴까.


왜, 뭐. 미지랑은 다르게 미래는 뭐 접점이 있나 봐.


얘들아, 바삭하니. 왜? 간지러워요?


샤워를 안 해서 그래. 건조해서 그래.


내가 로션 발라줄게. 아니야, 됐어.


알아서 이따 바를게. 등을 어떻게 혼자 발라.


내가 해줄게. 알아서 할게.


그냥 가만히 있어 봐봐. 빨개졌네.


그냥 살짝 긁힌 거니까 여기 있을 필요 없어. 얼른 올라가.


내려온 김에 할머니는 보고 가야죠. 너 할머니 만나면 혹시라도 나 다친 얘기 하지 마.


왜? 걱정할까 봐요? 걱정.


너희 할머니가 어디 내 걱정을. 아니야, 위에 조금 더.


여기? 시원해. 너희들한테나 다정한 할머니.


나한테 그런 엄마 아니야. 다쳤다고 해봐라.


나잇값 못한다고 싫은 소리 나지. 암튼 얼른 서울 가.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고작 요거 다쳐놓고 너 바쁜데 그게 무슨 말이야.


이만하길 다행이지. 다 됐어요.


나 가습기 물 좀 받아올게. 아니야, 엄마가 할게.


나도 평소보다 살갑다고 해야 하나. 오랜만에 보는 엄마 다쳤는데 살갑지.


그럼 너는 하다 하다 딸 살가운 것도 불만이니? 누가 불만이래.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치.


참 너희 엄마는 웃으면서 사람 살살 약 올리더라고.


어, 너 먼저 해. 고마워.


나한테 화났어? 내가 너한테 화날 일이 뭐가 있어.


근데 왜 계속 눈을 피해? 내가 눈을 피했다고?


야, 내가 언제. 니지 얘는 엄마가 다쳤는데 무슨 청년회 활동을.


내가 괜히 휴가까지 내는 백수가 참 팔자도 좋아, 그치.


너 마스크 못 닫혔네. 먼저 갈게.


뭐야, 피하는 거 맞네. 어, 저 마무리들혀.


다들 고생 많았수. 마을회관에 보쌈을 좀 삶아놨다니까.


먹고 싶은 사람들은 들어들 오시고. 먹기 싫은 사람들은 들어들 가시고.


알아서들혀. 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가, 안 가요?


네. 저는. 이러니까 진짜 마지막 같네.


그래요, 그럼. 어, 잘 가요, 미래 씨.


아이, 저기 잠깐. 내일 말해주기로 한 거 지금 말해주면 안 돼요?


진짜 그만두는 거예요? 아직 한나절도 더 남았는데.


하긴 내일 못 볼 수도 있으니까. 따라와요.


이런 건 한잔 하면서 얘기해야지. 혹시 네오 물산이라고 들어봤어요?


그럼요. 거기 경영진 바꾸고 갑자기 사라지신 거잖아요.


잘 아시네. 사실 그건 제가 좀 고집부려서 무리해서 들어간 거였어요.


막판에 지분 2% 가진 투자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 설득한다고.


와, 진짜 전 직원 다 달려들어서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떠들어댔었는데.


출석 주주는 확보했고요. 의결권 2%만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간에 불만 많으셨던 고질적인 문제들 이번에 확실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할아버지 전화가 오더라고요. 원래 전화 같은 거 잘 안 하거든요.


일단 거절했죠. 경영진을 아예 교체하는 게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이사진 리스트도 저희가 준비를 했고.


이번 기회에 확실히 좀 힘을 몰아주시면 좋겠습니다.


... ... ... ... ... ... ... ... ... ... ... ... ...


몰라. 이게 끝난 건지 뭔지.


애초에 미래 괜찮아지면 끝내기로 한 건데 이게 괜찮아진 건지도 모르겠고.


괜히 이걸로 엄마랑 만났네. 엄마한테 말을 했어?


뭐? 우리 바꾼 거? 아이, 엄마한테 말해봤자 뭐 해.


괜히 미래 인생 망친다고 혼이나 나지. 그냥 엄마 다쳤다고 해서 보러 온 거야.


다쳤어? 별거 아니고 분홍 아줌마랑 투닥대다가 그냥 좀 찢어먹었어.


어디를? 엄마 지금 오라고 해.


아이, 엄마 못 와. 병원에 있어서.


많이 다친 건 아니고 그냥 검사 때문에. 엄마한테 가자.


엄마한테? 응. 아, 어떻게 가.


휠체어 타고 가. 가자.


엄마한테 가자. 할머니, 내가 엄마 퇴원하면 바로 오라 그럴게.


걱정하지 마요. 괜찮아.


부탁하신 김용선 씨 자료입니다. 확인해보니까 고아원 출신이라 다른 가족은 없는 것 같고.


슬하에 아들 하나만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예 아버지가 있을 거 아니야. 검찰 관계자 통해서 알아보니까 살해당했더라고요.


김로사 씨 지인한테. 뭐?


지인이면 뭐 치정이야? 아니요, 피고인 여자고 김로사 씨랑 같은 고아원 출신이었습니다.


범죄 전력도 없고 김로사 씨 진술로 정상 참작돼서 감형받았다.


진술을 해줬어? 그 피고인 지금 연락돼?


이미 사망한 걸로 확인했습니다. 사망했다?


그 사람 좀 더 알아봐. 김로사 씨 동서는 계속 체크하고.


아, 이름이 뭐라고? 현상월. 현상월.


민망해서 뭘 죄송해. 엄마가 아파서 내려간 걸.


그래도 직접 뵙고 미팅 결과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아니, 말씀드리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거절하라고 해서 거절한 건데. 그럼 이제 그 얘기는 아주 끝난 건가?


아, 저 선생님. 혹시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어, 그럼. 뭔데?


지난번에 건물 안 팔리는 이유를 제대로 못 물어본 거 같아서요.


말했잖아. 돈이고 뭐고 복잡한 거 딱 질색이라고.


그거 말고 다른 이유는 없나요? 다른 이유라니?


저번엔 선생님 개인적인 이유로 안 파나 싶어서 더 묻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어떤 사정 때문에 못 파시는 상황인 거면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맡은 일은 이제 끝난 거 아니었어?


이건 대리인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여쭤보는 거예요.


선생님 돕겠다고 나서 놓고 중간에서 전달만 했지 제대로 도운 게 없는 거 같아서.


혹시 서류나 절차가 복잡할까 봐 그러시는 거면 제가 대신 해드릴 수 있어요.


그거 말고도 제가 도울 수 있는 걸 말씀하시면. 없어.


그런 거 이제 다 끝난 거지? 네, 손님 왔네.


나중에 밥이나 먹으러 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린 얘기한 건 진짜 맛있다.


어제는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 어쨌든 도와주려고 온 건데.


아니야. 내가 너무 갑자기 왔어.


마지막으로 본 날 나 도망친 거 맞아. 네 얼굴 딱 보는데 이상하게 가족들 생각이 나서.


가족들한테는 내 문제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거든.


어차피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꼭 혼자 해결할 필요 없잖아.


혹시 내가 불편한 거면 다른 변호사 소개해줄게.


법적인 방법 아니어도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아마.


마음은 고마운데 솔직히 당장은 뭘 도와달라고 해야 될지도 잘 모르겠어.


일단 내가 돌아가서 보고 도움받을 거 생기면 그때 부탁할게.


네, 유미래. 어, 어, 오랜만이다.


어, 바쁠 텐데 어쩐 일로 내려왔어? 아, 집안일 때문에.


아, 집안일. 아, 미지는?


미지? 미지는 집에.


집에? 집에? 진짜 뒤질래, 유미지?


야, 너 왜 다 알면서 모른 척해. 야, 네가 할 소리냐?


너 왜 연락 안 해? 나 친구 너밖에 없는데.


야, 나는 너 말고 누구 있냐? 나 진짜 너한테 연락 못 해가지고 내가 답답해 뒤지는 줄 알았구만.

오, 야! 이호수님!!! 어디서 보여줘도 못하고 여기다 뺄게요.


결혼식에서? 야, 이호수. 그 옛날부터 눈깔 돌면 그냥 뵈는 게 없더니 멋있다, 형.


야 근데 넌 어떻게 이호수를 서울 바닥에서 다 만나냐? 이 정도 우연이면 그거 운명 아니야?


야, 근데 근데 오늘 혹시 알았어? 이호수가 나... 너 좋아하는 거?


아 뭐 고백쇼하고 대충 눈치챘지. 아 근데 뭐 니가 별말 안 하길래 깠나보다 생각하고 있어.


표정이 좀 이상해 너. 너 이호수 좋아하냐? 아 몰라.


어머 진짜 미쳤어 미쳤어. 아우 아파.


아니 언제부터? 이번에 서울 올라가서야? 아니면 뭐 옛날부터 뭐가 있었어?


아 있기는 뭐가 있어. 나 첫사랑이라는 것도 이번에야 겨우 들었는데.


야 그거 들었으면 끝난 거야. 어? 남자한테 첫사랑이라는 이 단어를 들었으면.


이그이그 그냥 게임 끝이야. 아 됐어.


첫사랑이니 뭐니 해봤자 다 나 다치기 전 얘기고.


아니 갑자기 다치기 뭔 상관. 이호수 그럼 네 발목 보고 좋아했대?


으이씨. 아 옛날에 이호수 서울 가기 전날 잠깐 봤었거든?


근데 나 그때 내 탓을 하다하다가 남 탓까지 할 때라서 진짜 최악이었는데.


유미지. 이호수 내일 서울 간대.


이거 여기에 둘게. 유미지.


오늘 밤 집 앞에서 기다릴게. 유미지 맞아?


상관없지 않아? 어차피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너 이건 갑자기 왜 준 거야? 이거 그때 우리 얘기했었잖아.


서울 가면 여기 나온 곳 같이 가보자고. 내가 먼저 서울 가서.


그러니까. 이걸 지금 나한테 왜 주냐고.


나 놀려? 놀리는 게 아니라.


놀리는 게 아니면 불쌍해서 이러냐? 야.


내가 서울을 어떻게 가. 발목 이 꼬라지 되고 인생 다 망했는데.


망한 거 아니야. 너 나아질 거고.


네가 의사야? 여기서 어떻게 나아지냐고 내가.


네가 왜 지랄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동정받는 기분.


진짜 거지 같네. 더 할 말 없지? 유미지.


이상해. 더 심하게 말한 건 난데.


너 유미지 맞냐? 그 말 한마디가 계속 남아서 안 잊혀.


걔한테는 밝고 웃고 뛰어다니던 내가 유미지였구나.


예전 모습은 다 사라져서 이제 나를 못 알아보는구나 하고.


그러니까 첫사랑은 그 유미지지. 내가 아니라.


자아분열이 작작하고. 그래서 뭐.


아니 뭐 어떡하겠다고. 아 뭐.


이호수 좋아한다며. 서로 아는 거 아니야?


그냥 네가 사나이답게 먼저 고백해. 아 지금 얼굴을 못 쳐다보는데 뭘 어떻게 고백해.


아 얼굴을 왜 못 봐? 보기만 해도 미쳐버려?


아 그게 아니라. 아니 유미래일 땐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거든?


아 근데 나로는 뭘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


갑자기 막 마스크 벗은 것처럼. 아 너무 여리여리하다 갑자기.


아 진짜 이 못쓸 새끼. 이거 진짜 어떡하냐 얘를 진짜.


아니 그래서 뭐. 뭐 좋아한다고 고백도 안 하게?


아 몰라. 나중에. 아니 나중에 나중에 언제.


이거 쿨타임 기다리다가 우리 금방 마흔 돼요.


아야. 유미란이 힘들다고 저러고 있는데 뭐 나 좋자고 고백이나 할 때냐, 내가.


아 몰라 나도. 내일 퇴원할 때 호수가 와주게.


아 이게 뭐야. 그래주면 엄마는 너무 행복하지.


같이 있으니까 이런 게 또 좋네. 아니 그만큼 좋다는 거지.


어, 그래. 푹 자고. 오. 신기해서 본다.


야 어떻게 그런 말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하냐.


꼴 보기 싫으면 커튼이나 치시던가. 야 누가 꼴 보기 싫대.


신기해서 봤다고. 난 그런 소리 못 하니까.


못한다는 소리만 말고. 노력을 좀 해.


아까도 그게 뭐니. 이래 오랜만에 봤는데 쫓아내기 바쁘고.


내가 뭐 싫어서 쫓아냈냐. 그럼 좋아서 쫓아냈어?


말을 그렇게 하는데 네 마음을 어떻게 아니. 고집대로 말하는데도 꼬아듣잖아.


너부터가 그러잖아, 지금. 내가 언제?


방금도 신기하다 그랬더니 꼴 보기 싫냐 그러고.


아니 그리고 뭐 뭐? 뭐 호수 몸 불편한 거로 내가 뭐라 그래?


야 나도 아픈 자식 엄마야. 내가 어떻게 그딴 소리를 하냐.


대체 평생 나를 어떻게 생각했으면은 진짜. 그럼 그냥 그때 오해라고 했지 뭐.


내가 했잖아. 오해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도 안 들었잖아, 네가.


아 됐어. 이렇게 타고난 건 누굴 탓하겠냐.


네 말대로 피해의식이 있나 보지 내가. 그래 내가 꼬아서 들었다.


야 됐어? 자냐? 잘 자라.


기다려. 너 뭐야? 나 시킨 적 없는데?


뻥이야. 오랜만이다. 야?


아니 뭐 듣자 하니까 결혼식에서 내 편 들어줬다며?


뭐 혼낸 것까진 아니고. 아 됐고 고맙고.


아니 뭐 내 편 들어줬다니까. 내가 뭐 굳이 한 번 이렇게 물어보는 건데 말이야.


너 혹시 유미란 간 보냐? 뭐?


아니 뭐 걔 직업이 변변치 않다던가. 아니면 뭐 너처럼 배운 놈은 아니라서 연애하긴 좀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성질이 나네?


막 화가 나? 근데 너 왜 말을 안 해?


너 유미란 옛날에도 좋아했잖아. 그때는 타이밍이 안 좋았어.


겨우 마음먹었을 땐 미지가 너무 힘든 상태였고.


불발탄이었다? 오케이. 그럼 지금은?


한 번 어긋났으니까 이번엔 서로 걸리는 거 없을 때 제대로 하고 싶어서.


뭐 암살하냐? 장소에 동선, 도주로 이런 걸 완벽하게 다 계획을 해야 돼?


나중에. 지금 미지가 좀 너무 불편해서.


아니 그러니까 나중에. 그래 너희들하고 나중에 이렇게 황혼 연애나 해라.


둘이 똑같아. 아주 똑같아.


야 이호수. 완벽한 타이밍 같은 건 없어.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딨냐? 완벽한 타이밍 같은 건 없어.


무서웠다. 안 무서웠어요?


고생해서 겨우 거기까지 올라갔는데 다 놓고 내려온 거잖아요.


완전히 무서웠죠. 근데 안 놓고 붙잡고 있으면 다른 걸 못 잡잖아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기쁜 거, 좋은 거, 즐거운 걸 잡읍시다. 미래 씨도.


어떡하냐. 뭐 해?


어, 너 올라가기 전에 미리 얘기해두고 좀 정리하도록.


미안한데 우리 며칠만 더 있다가 바꿔도 될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여기 일만 마무리하고 바로 올라갈게. 나는 괜찮은데 왜?


또 무슨 일 있어? 우리 바꾸던 첫날에 네가 그랬잖아.


다시 돌아올 준비되면 사직서 쓰라고. 그땐 알겠다고는 했는데 사실 나 쓸 생각 없었어.


그만둘 생각을 못 했거든. 무서워서.


뭐가 무서워? 나한텐 지금 이 회사 나한테 되게 과분하다고 생각하거든.


야 과분해 무슨. 아니야.


진짜 운 좋게 들어간 거야. 너나 엄마나 자꾸 내가 되게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데.


나 그냥 어중간한 사람이야. 지루한 걸 좀 잘 참을 뿐이지.


노력 대비 결과로만 보면 평범보다 못한 걸 수도 있어.


그래서 그만두기 무서웠어. 거기 들어간 건 어중간한 내가 어쩌다 얻은 행운이니까.


야 너 거기 말고도 어디든 더 좋은 데 갈 수 있어.


나한테는 이 회사가 너한테 달리기 같은 거야.


여기 말고도 어디든 갈 수는 있겠지만 여기보다 더 좋은 데는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내 손으로 놓기 무서웠어. 나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데.


나한테 실망하는 건 이제 좀 지쳤거든.


그래서 낼지 안 낼지도 모르는 사직서 쓰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


나 진짜 바보 같지? 야, 울든가 웃든가 하나만 해.


약한 나를 들킬까 혼자 숨어서 기던 소리 없는 나날들.


여보세요? 옥희야. 많이 아파, 엄마야?


괜찮아. 전화해, 엄마.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무가 되길 바라며 켜켜이 쌓아올린 껍질들 속엔.


그 안에 갇혀 조금도 자라지 못한 여린 마음들.


인수. 나 문자를 지금 봤어.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오래 기다렸어?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 다 굳은 것 같은데. 사실 오래 기다렸어. 되게 많이.


지금 여기서 기다리는 내내 계속 그날 생각났어.


나 서울 가기 전날. 그때도 여기서 이렇게 너 기다렸었거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막상 너 나오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그땐 내가 힘들어서 괜히 너한테. 내가 힘들었을 땐 넌 항상 다가와 줬잖아.


못나게 굴어도.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었어, 너한테.


그래놓고 막상 너 다치고 힘들어하는 거 보니까 용기가 안 나더라.


난 너처럼 누굴 낫게 할 힘이 없어서 오히려 널 더 다치게 할 것 같았거든.


영영 못 볼 바엔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아무 사이 아닌 채로.


가끔 제삿날 운 좋게 네 얼굴 보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았어.


전에는 미지야. 네 마음이 좀 더 편할 때.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일 때. 그때 제대로 해야겠다 싶어서 계속 참았는데.


지금 말할게. 좋아해.


아주 오래. 되게 많이.


행복했어. 사실 요즘에 드리운 건 내 마음이었나 봐.


서울은 언제 가요? 오늘 가는 거 아니면 이따 밤에 잠깐 볼까요?


밤에는 왜요? 별이 밤에 뜨니까.


아드님? 들은 대로 진짜 잘생기셨네. 태몽 뭐였어요?


아직도 많이 불편하세요? 엄마는 이제 엄마만 잘 챙기세요.


손님. 아니면 나가. 현상월 씨 아시죠?


당신은 뭐야? 안녕하세요.


어머, 서영 선배 왔어? 벌써 귀국한 거예요?


잘 지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