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1만 5천명. 서울에서 차로 4시간. 기차역도 없다.
한 달이 건너면 모두가 다 알고, 이곳에서는 외지인이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알아차린다. 한마디로, 한번 들어오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곳.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해하고,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는 유치원 선생님으로 위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해외 봉사활동도 많이 했네요? 네, 부모님 모두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셔서요.
그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집안 매력이 중요하죠.
그런데, 부샘이 선생님이라면 이성여대 부속유치원에서도 무착 잡았을텐데. 왜 여기 무창까지 내려오신 거예요? 그 이유, 지금부터 말씀드리려고요. 어디서 오셨어요? 저 근처에서 왔어요.
네, 집이 근처. 이지현, 장아린, 김영란. 들어오세요.
네. 들어오실게요. 이지현씨? 네. 대기업 하청을 하는 민정식품을 굴지의 라면 회사로 키우신 가성그룹의 가성우 회장님이 항상 강조하시던 도전하는 자가 발전한다! 라는 인재상에 감명받아서 영포자였던 저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캐나다로 1년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캐나다 어학연수를 통해서 토익 930점이라는 성적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견문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회화는 외국인과 프리토킹도 가능한 수준입니다. 외국인과 프리토킹도 가능한 수준입니다. 오케이, 충분합니다.
최다 같은 학원을 나왔나. 사람 지키는데 어학연수가 왜 필요해? 아니, 괴한이 외국인 용병일 수도 있죠. 네? 네? 다음.
김영란씨? 김영란입니다. 97년생? 나이가 너무 많네. 장롱 면허? 이딴 거 왜 적었대? 네, 집에 차가 없어서 적어놨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본 거 아닙니다. 네? 이렇게 순진해서 어디 취업이라도 할 수 있겠어? 장비서님? 지하철 성추행범 잡아서 용감한 시민상 받은 경력도 있습니다. 다른 것도 더 말씀드릴까요? 저기요, 김영란씨.
내 눈 봐봐요. 뭐 같아요? 97년생 김영란씨. 저희가 원하는 경호원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에요.
그런 점에서 김영란씨는 눈치가 영없네. 안 들어가요? 한 입으로 두 말하기엔 내 입이 좀 비싼데? 뭐 하는 거예요, 지금? 경호라는 우발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겁니다. 괴한이 예고를 하고 공격하진 않으니까요.
지금 제가 휘두른 주먹은 괴한의 주먹이고 경호 대상자는 놀라서 뒤로 낮아빠진 상황이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내신탕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 막는 게 경호 아닙니까? 네, 아마 저라면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막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처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죠. 그리고 보통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거든요. 합격.
네? 합격이요? 합격이요? 괜찮으세요? 그때 합격이라고요? 일부러 논 것 같은데? 가성우 회장님 개인 경호원으로 합격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제부터 김명란 씨는 24시간 항시 대기, 주말 휴일은 없습니다. 각오했습니다.
각오만으로는 부족할 텐데? 돈 많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돈이 각오고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법 솔직하네? 네? 네, 눈을 보니까 딱 알겠네.
내가 지금 무슨 말 할지 알죠? 김명란 씨. 정과자예요. 네. 제가 몇 차례 쳐줬더라도 나 좀 내 말 좀 들어드렸어! 왜 내 말 안 듣냐! 엄마? 용란이니? 일찍 오네? 이게 뭐야? 설마 내 월세 보증금 뺐어? 이게 얼마나 된다고! 용란아, 용란아. 엄마가 이 돈으로 큰 돈 벌면 누구 먼저 생각하겠어? 딸 먼저 생각하지 않겠니? 어떻게 토시 하나 안 바뀌냐, 10년 동안.
사람이 발전하는 게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게 어디서 엄마를 가르쳐? 가르친다고 배우기를 해? 그럼 이 모양, 이 꼴 안 살지! 진짜 도대체 왜 그래! 제발 도대체! 엄마한테 작작 좀 대들어, 이 년아. 이러고도 엄마야? 엄마라고 부르지 마. 지긋지긋해, 엄마란 소리. 나도 엄마 되고 싶어서 된 거 아니거든? 네? 중학교 3학년 때 편의점에 생리대를 훔쳐서 징역 6개월 구형받았고요.
초법소년 나이가 지나가지고 소년원에서 실형을 살았답니다. 생리대 하나야, 얼마나 해? 글쎄요, 뭐 한 돈만 원 안 할까요? 아니, 겨우 만 원짜리 하나 훔치고 징역을 6개월을 살아?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돈 없고, 백 없고, 지켜줄 사람 없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죠.
왜, 다른 정권 없고? 그 이외엔 없습니다. 개가 천선이라도 한 모양이죠. 다른데 경험하면서 문제도 없었고? 네, 뭐 보안회사 경력도 괜찮았고.
아, 잊고 있었는데 빚이 좀 있습니다. 신용불량자 어머니가 딸 이름으로 대출을 무지막지하게 땡겼더라고요. 회장님, 일반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는 빚이 얼만지 아세요? 글쎄요.
오천이에요. 오천? 죽음 참 싸죠. 근데 김영란 씨는 빚이 그 오천에 열 배입니다.
그 돈 못 갚으면 걜 어떻게 되는 건데? 황강다리가 있겠죠? 회장님, 경호원 채용이 무슨 자선사업도 아니고. 아니, 갑자기 넘치시는 인류에 너무 안 어울리세요. 사람은 말이야.
때론 이력서 매출로 파악할 수 없는 존재거든. 난 회사를 30년 했고, 자넨 사람 보는 눈이 후지잖아. 그래서 이번 면접은 제가 더 꼼꼼하게 보지 않습니까? 난 말이야.
약점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더라. 입고 있는 옷은 죄다 싸구려해. 화장도 안 해, 머리 염색도 안 해. 그 고재재한 구두까지.
그 정도 절박함이면 내가 좀 심술을 부려도 떨어져 나가지 못할 거 아니야. 그래도 전과자는 안 됩니다. 전화해봐.
누구요? 김영란이요? 응, 물어볼 게 있어. 어서. 식사나 갈게요.
식사하세요, 식사. 아이고, 밥 먹으러 가자. 여보세요? 가성그룹 회장님 변호사 이돈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김영란 씨, 면접 보고 나가면서 벽에다 신발로 치고 뭐라고 했어요? 그 벽이 뭐 비싼 건가요? 수입산이라던가 이틀이자라던가 그런 건가? 돈 물어내라고 안 할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봐요.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화풀이해서요.
합격이라 그래. 예? 가난한데 양심적이기까지 하잖아. 아주 약점 투생이야.
김영란 씨. 경호원 합격 취소한 거 취소입니다. 네? 네? 저, 정말요? 저 그럼 출근하시죠? 네, 열두시까지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얘 구했나봐. 너무 잘했다. 내가 아끼는 건데.
이거 마셔. 아직 따뜻해. 언니 먹어요.
곰떡 상인 중이야. 나도 좋은 일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너무 잘했다.
밥 먹으러 가자. 오늘 불고기 숙주볶음이라 빨리 걸려. 빨리 와야 돼. 빨리 와. 언제 출근해? 언제? 그게 마지막이야.
오케이. 다녀올게. 운전 조심.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잘 챙기셨어? 아, 일해도 되겠어? 어, 차가 좋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아유, 물량 어떻게 좀 못 늘려? 가성부로 회장님 때 결혼하는 딸기라고 소문나서 맛있다고 여기저기서 달라고 난리야. 여기서 물량 늘리면 장담 못해요.
아시잖아요. 얼굴은 아이돌이면서 깐깐하지. 이중에 뵐게요.
아무튼 용돈 정도 없어. 나 같으면 한국이라도 납품할 건데. 들어가.
은하야! 감사합니다. 김영란 씨. 동민 씨 왔어요? 네, 안녕하세요. 회장님은 본체에 계시고 우리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별치에서 지내.
참, 주방은 본체만 있으니까 밤에 배고프지 않으려면 알아서 적당히 먹어둬. 네, 알겠습니다. 2주 후에 뵙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여기는 백혜지라고 내일 같이 도와주는 도움이랑 쓰면 돼. 성격도 무난하니 같이 지내기 나쁘지 않을 거야. 자기는 여기.
네. 네, 도착했습니다. 네, 건너가겠습니다. 이 변호사님 호출이야.
가봐. 지지력은 상해. 김영란 씨. 들어오세요.
매일 일정은 전날 오후 9시에 핸드폰으로 전달됩니다. 일정이 변동되면 더 늦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 맞춰서 경호 동선은 알아서 짜면 되고.
네. 회장님 말 많이 거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하셔? 내일 오전 8시에 집 앞에서 대기하세요.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혹시 제가 몇 번째 경호원인가요? 생각보다 눈치는 있네. 올해만 벌써 다섯 번째. 비싼 데는 이유가 다 있는 거야.
밤 11시에 징소리 울리면 이 길 오전 6시까지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고. 오케이? 알겠습니다. 이상 여기까지.
혹시 제 가방 뒤졌어요? 너 되게 없어 보여. 그런 애 가방 뒤져서 내가 뭐하게? 그건 아는데요. 사람들은 꼭 돈이 아니라 호기심의 가방을 뒤지기도 하거든요.
얼마나 형편없는 옷들 뿐인지. 그런 얄팍한 호기심. 너 내 말에 기분 안 나빠?
별로예요. 말로 상처받을 만큼 꽃길만 걷지 않아서. 멋있다.
나는 백혜지. 우리 친구할까? 친구 같은 거 안 합니다. 왜? 내가 잘해줄게.
친구랑 영화 보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어, 좋은데? 그거 하자. 그런 거 돈 들어서 안 합니다.
친구. 이거 내 특기다. 신기하지? 너도 알려줄까? 경호하는데 필요할 수도 있잖아.
내가 어렸을 때 발레를 했거든. 이렇게 발 앞에 중심을 두고 딱 버티면.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아, 뭐야. 손도 안 대셨네. 드시는 건 없는데 살은 안 빠지시고.
밖에서 나 몰래 뭘 드시나. 어이, 이거 먹어. 한우 투뿌리야.
감사합니다. 라면 같은 게 없나. 뭐 찾니? 아, 배가 좀 출출해서요.
아유, 넌 이 큰 스테이크를 다 먹고 또 먹게? 너무 맛있게 먹었더니 얼큰한 게 땡겨서요. 나야. 자. 감사합니다.
있잖아. 나는 밤 11시 이후로는 핸드폰도 꺼놓고 자거든. 네. 나 절대 깨우지 마라.
네. 들어간다. 안녕히 주무세요. 제법이네, 그것은.
치렁치렁 이게 다 뭐야. 괘안히 덮치는데 그 소매 잡히게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입만 산 것보다 좀 나았나 싶었더니.
사장님,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그렇죠? 시끄럽다. 예. 출발하겠습니다.
이번 가성의 신제품 라면에 요즘 인기 있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포토 스티커를 넣는 겁니다. 가선우 부사장. 우리 가성 라면을 주로 사먹는 연령층이 어떻게 되지? 저희 가성 라면의 모토지 않습니까?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라면.
죽을 때까지 질리지 않은 가성 라면. 그럼 여성 아이돌을 좋아하는 연령층은? 뭐지? 뭐지? 죄송합니다. 회장님, 요즘 아이돌 덕질은 나이, 연령 뭐 이런 거 상관 안 해요.
이봐, 우린 식품기업이야. 일시적인 홍보 마케팅이 아니라 맛으로 승부를 봐야지. 그렇죠.
맛으로 승부를 봐야죠, 아버지. 근데요, 요즘 시대가 변했습니다. 아이돌 덕질하고 라면 먹고, 무슨 뭘... 제가 아이디어를 냈잖아요, 아버지.
뭔가 갖다 붙어 말씀해 주세요. 됐다! 공산은 구분하라 그랬지! 미친네, 성격 진짜. 가선우 부사장이 추진한 프로젝트가 벌써 세 번째 접규합니다.
경영자 한 번 잘못 들어오면 회사 휘청거리는 거 순식간이라는 거 아시잖아요. 박 전무 걱정이 너무 많아. 내가 어떻게 일군 회사인데 그냥 망하게 두겠어.
돈도 많은데 불행해 보이냐. 교수님, 새로 들어온 경환이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궁상이에요.
이번에도 젊은 여자야? 아이고, 남자들은 궁상맞은 여자 안 좋아해요. 궁상맞다는 게 무슨 뜻이겠어요. 여자가 좀 품어주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품어줄 겨치 없다는 거죠.
아버지 식단 권리는 내가 시킨 대로 하고 있지? 아이고, 걱정 마세요, 교수님. 제가 이래봬도 식품 영양학과 출신이잖아요. 아니, 이번에 회장님 건강검진 나온 걸 보니까 콜레스테롤 수치가 무척 높으시더라고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혈관도 아주 그냥 잘 막히고요. 혈관이 잘 막히면 뇌졸중으로 쓰러지실 확률도 높다는 거죠. 또 콜레스테롤이라는 게 식이요법이 굉장히 중요한 거... 아유, 이 싸가지.
아니, 근데 왜 계속 여자 경험원만 뽑는 거야, 너희네? 아버지, 요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지난번 건강검진에서 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더라고요. 제가 채집사한테 식단 신경쓰라고 단단히 주의지고 있어요. 덕분에 많이 좋아지는 것 같다.
아버지, 아무리 1년밖에 안 사셨다고 해도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꽃 정도는 아셔야죠. 자기약이에요. 비싸고 화려한 꽃. 저희 엄마 워낙 어릴 적부터 부족함이라고는 없이 자라셨잖아요.
부자집 딸로. 저 둘, 가 회장 친자식 아닌 거 알죠? 몰랐습니다. 회장님이 애 둘 딸린 미망인한테 장가를 갔는데 그 여자가 1년 만에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거예요.
피도 한 방울도 안 쌓겠는데 법적으로는 가족이라고. 웃읍죠? 그럼 그 죽은 딸은요? 어? 아예 모르는 거 아니네? 걔만 친 딸. 밖에서 나와서 데리고 온 애라 나뭐라나. 아무튼 다 커서 데리고 와서 유학까지 보내놨더니.
뭐 마약에, 남자에. 저 아들은 꼴통이라 무시해도 되고 저 큰딸, 큰딸 조심해요. 세안대학 교수인지 뭔지 아는데.
그냥 회장님 곁에 여자라도 붙을까봐. 최집사가 일곱수 일두족을 다 감시해서 보고한다니까. 보고할 게 없긴 하겠네.
무슨 여자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노인네. 옆에 여자라도 붙어봐요. 유산 문제 때문에 골치 아파지잖아.
내가 이 재벌가 운전수만 세 번째라 잘 아는데. 다들 저렇게 앞에서는 실질 웃고 뒤에서는 죽는 날만 기다린다고. 그 놈 유산 때문에.
왜 죽을 날만 기다릴까? 죽일 수도 있잖아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데. 우리 주님의 딸 이민정 성도님의 28주기 기일을 맞이해서 우리 모두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의 말씀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사람과 믿음으로 살아온 우리 귀한 주님의 자녀 이민정 성도가 주님 곁으로 떠난지 벌써 2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자리는. 우리 엄마 불교야.
고인의 삶이 남긴 따뜻한 기억과 사랑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 살아있음을 되새기는 자리입니다. 커피 좀 사와라. 시원한 걸로.
예, 커피. 예, 예, 예. 네. 이 손목에 상처. 이거 왜 생긴 거야? 대답해드리면 저도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대답 먼저.
맞았습니다. 누구한테? 제가 질문할 차례인데요. 몰래카메라 회장님이시죠? 처음에는 변태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화장실이랑 탈의실 그런 데는 없더라고요. 본체와 별체 건물이 두 갠데 주방이 하나만 있는 것도 이상하고. 누가 회장님 죽이려고 하나요? 질문하라고 안 했다? 더 찾아봐.
찾으면 보장이라도 있습니까? 보물찾기 해봤지? 소풍 가서. 소풍 가본 적이 없어서요. 내 집에 소풍 왔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찾아봐.
회장님 오늘 점심은 안 드실 겁니다. 내가 특별 요리 준비했는데. 됐어요.
아 근데 집사님. 왜 이병. 집사님은 집사일을 해야지 왜 요리사일을 하세요? 내가 요리를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다르잖아요. 저도 좋아하는 일 했으면 펄리우드 갈게요. 얼굴이 안 되잖아.
얼굴이. 영란씨. 영란씨가 이거 좀 먹어야겠다.
제가 오늘 속이 좀 안 좋아서. 화장실 좀. 혜지야. 아우 진짜.
아니 이 고급 음식을 왜 못 열어보고들 그러냐? 이거 좀 먹어봐. 진짜 맛있겠다. 그렇지? 맛있게 드세요.
뭐야. 누가 들어오면 재채기야? 아유 정말 함은 뭐해 함은. 오늘 점심은 치킨입니다.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최집사 음식도 가끔은 드셔야죠. 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맛없는 음식이야.
내가 선영이가 심어놓은 사랑을 만든 음식을 뭘 믿고 먹나? 요즘엔 많이 웃으십니다. 이번 연휴에 내가 그냥 집에 있으려고. 자네도 별일 없으면 어서 갈비찜에 소주나 한잔해.
아니 뭐 요즘 애들처럼 지냅도 괜찮고. 회장님. 저도 고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차로 4시간. 기차욕도 없고. 온 마을 사람들이 오늘 저녁은 뭘 먹었는지.
내일 아침은 또 뭘 먹을지. 모두가 다 하는 그런 끔찍한 고향이요. 고향 어디라고? 무창입니다.
회장님 드시는 딸기 격주로 배달 오는 곳이요. 그럼 갔다 오면서 딸기나 챙겨와. 네. 이번에는 특별히 지난번 보너스보다 20% 인상됐습니다.
그럼 해상. 해상. 고마워요.
일단. 감사합니다. 친구.
나 바프 올리면 좋아요 바로 눌러. 네. 넌 집에 언제 갈 거야? 이따 저녁 때쯤에요. 부모님이 두 분 다 일하셔서 늦게 들어오시거든요.
심심하겠다. 우울해도 차갑다. 그렇게 숨어있으면 내가 모를 줄 알고.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 집에 CCTV가 몇 개냐? 별체 현관과 복도에 두 개. 본체 현관에 하나. 그리고 거실이랑 1층 복도에도 세 개. 각 창문 옆으로 한 개씩. 아 그리고 뒷문에도 있었네요.
많이들 찾았네. 이 라면 어떻게 끓이면 제일 맛있는지 아니? 모릅니다. 이 봉투 뒷면에 쓰인 그대로 끓이면 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대로 끓이면 제일 맛있단 말이지.
진짜 맛있어요. 아빠. 천천히 먹어.
감사합니다. 너무 맛있어요. 죽은 따님 생각하세요?
너 기억나? 네. 내가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잠시 만나던 여자가 있었어. 헤어지고 나서 아이를 낳았더라고. 그래서 그 아이는 내 존재도 모른 채 19년을 보육원에서 자랐어.
세상이 자기를 버렸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나를 원망하고 산뜻 날이 서서는 마치 고슴도치 같았어. 고슴도치가 왜 가시를 부풀리는지 아나? 사귀를 지키려구요. 근데 그것밖에 방법이 없으니까.
괜찮으세요? 최 집사, 강 회장이 혼자 있는 게 아니라고? 아, 정확히 확인은 못했는데요. 새로 들어온 여자 경호원이 좀 늦게 간다고 했던 것 같아요. 이런 건 미리미리 말했어야지.
둘이서 뭔 짓을 할 줄 알고? 나 자네한테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물어보세요. 라면 값은 할게요.
겨우 만 원짜리 하나 훔쳤네. 어디에 6개월을 살아? 부모님 뭐 하시고? 회장님,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넌 어디 안 보이는데 들어가 숨어 있어.
누군지 짐작이 가니까. 누구세요? 아버지, 저예요. 아버지, 연휴에 라면이 뭐예요? 비뚤어오는데 왜? 무슨 일 있냐? 열어.
안 열어? 야, 영란아, 김영란! 선영아. 김영란. 김영란.
영란아. 어딨니? 어딨니? 가게님? 다 확인했음 그만 가봐라. 식사 잘 챙겨 드세요, 아버지.
제가 직접 백화점에서 산 거예요. 그래, 잘 먹으마. 갔다.
이제 나와도 된다. 라면 잘 먹었습니다. 네, 회장님.
들어와. 난 여기서 주로 먹고 자고 해. 회장님, 진짜 누가 회장님 죽이려고 하나요? 내 딸 예림이. 기사에서 봤습니다.
마약, 남자 뭐 그런 거 사실이 아니다. 내 딸은 살해당했어. 열아홉 살에 이 집에 처음 와서 그림 공부를 하고 싶다고.
걔 뉴욕에 보내줬어. 혼자서. 내 딸 죽인 년. 늦었지만 뉴욕에 사람을 보냈어.
뉴욕 현지 신문에 난 기사에 사진이 있더라고. 사진 원반을 구해서 확대했더니. 거기 선영이가 있더라.
유학 생활은 어때? 할만해? 네. 언니가 예림이 떠올리고 싶어서 갑자기 찾아왔어. 어떻게 가족이 그럴 수가 있지? 니 그 손목에 상처는 가족이 그런 거 아니냐? 돈 때문에. 그놈들한테 나는 그냥 지들이 지 애미로부터 마땅히 물려받아야 될 유산을 중간에 가로챈 사람에 불과해.
그런데 예림이까지 나타나서. 혹시 회사 경영권을 승계할까? 눈에 가시가 닿겠지. 영란아.
나 시안부다. 이제부터 길어봐야 6개월이야. 걔 죽기 전에 그놈들한테 복수하려고.
그것도 그놈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방법으로. 경호원 사이에 떠드는 소문이 있었다. 돈 많은 사람을 경호하다 보면 가끔 거액의 돈과 함께 청구살인의 제안이 오기도 한다고.
회장님. 제가 뭘 해드리면 될까요? 영란아. 나랑 결혼하자.
영란아. 이건 없다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동안 차트에 교묘하게 숨겼는데 모류핀 맞더라구요. 내가 수고비는 계좌로 입금할게요.
나한테 1억이 생길 것 같거든? 믿기가 돼서 터치를 놓고 기다리는 거야. 자 이제부터 김영란씨가 아니라 부세미 선생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