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Episode_12 뉴페이스야. 내가 전에 말한 그 구천 오래 떠돈 노하우 있다는. 아.. 그. 20년 전에는 저승사자 만났었다가 도망친 적도 있대. 한 20년 됐나? 어떤 망자와 마주쳤는데, 아무 정보가 없는 망자였어. 오 진짜요? 나도 아홉 살 때 비슷한 경험.. 아주 오래 이승을 떠돈 듯했고, 두려움도 없어 보였어. 저승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망자는 처음 봤어. 희한했지. 반갑다, 네가 그 도깨비 신부구나. 예, 저도. 자, 그만, 그, 어.. 남의 영업장에 이렇게 죽치시면 올 손님도 안 와요. 예, 이제 장사해야 되니까 다들 나가 주세요. 냉정한 계집애. 언니부터요, 빨리, 빨리. 불친절한 계집애. ★ 하아, 느낌이 좀.. 호러 인생 20년에 그런 건 처음 본 단 말이지. 아흐, 까먹자, 까먹자. 바빠 죽겠는데 귀신까지 쓸 틈이 없다. 음 주 4일로 이렇게 몰면 알바 시간을 좀 미뤄야 하는데.. 허, 연서? 새삼 빡치네(화가 나다), 남은 사느라 바빠 죽겠는데, 연서? ★ 하아.. 저는 저승사자입니다. 만나고 싶다, 안 만나고 싶다, 만나고 싶다. 어떻게 맨날 일곱 잔 딱 떨어지지? 흠.. 이렇게 일곱 잔 딱 떨어질 걸 알면서도 나는 만나고 싶다로 시작 했네. 만나고 싶다, 안 만나고 싶다, 만나고 싶다.. ★ 넌 복숭아꽃 맞아본 적 있어? 있지. 무당집 갔다가 된통 맞았지. 흉 오래 간다 그거. 아까 거가 낫다. 그지? 아까 게 낫지? 근데 넌 기억을 찾고 싶다는 생각 한 적 없어? 없지, 잊은 기억이라는 게 뭐야, 없는 기억과 마찬가지 아니야? 애초에 없었던 걸 왜 굳이.. 나는 그게 그립네. 그러지 마. 우리 다 죄인이야. 그 그리움 뒤에 뭐가 따라올 줄 알고. 알아, 아는데도 이 그리움의 한 발 한 발이 어디로 가 닿을지 너무 두려운데도 나는 자꾸 그게 그립네. ★ 어째 오늘 술이 과한 느낌이다? 나 들켰어, 저승사자인 거. 써니 씨한테. 잘 한다, 잘 해. 이 한 겨울에 복숭아 꽃까지가 어디서 났을까? 그러게.. 이제 어떡하지? 많이 혼란스러울 텐데. 뭘 어떡해? 기왕 이렇게 된 거 손이나 더 잡아 봐. 거기 내 얼굴 있나, 없나. 나 들켰다니까? 들킨 김에 막 잡아 봐. 거기 내 얼굴 있나, 없나.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전생 볼 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누가 억지로 이렇게 막 밀어 넣듯이 들어온다고, 순식간에! 그림에서만 봤던 얼굴이 생기를 얻으니 너무 아름다워가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 내 누이다. ..어 가지고.. 어리고 어리석어 보이는 얼굴은 하나 봤어. 그 어린 왕. 그 멍청이 생각만 했나 보네, 우리 못난이. 오라비는 안중에도 없지. 나 여깄어, 왜. 아, 아니에요, 다음에요. 아, 내놔요! 왜 남의 노트를 보고 난리인데! 왜 남의 노트에 내 글이 써있고 난리인데? 너 이거 뭐야, 너 또 나 몰래 사문서 위조했어? 허, 참. 모르는 척 하기는! 연서잖아요, 연서, 본인이 쓰신. 연서를 썼어? 썼더라고요, 첫사랑한테. 뭐 얼마나 거창한 사랑 얘긴지, 뒷얘기가 궁금해서 아저씨한테 도움 좀 받아 보려 그랬죠. 앞 얘기는 뭔데, 이거 연서 아닌데? 아닌 거 좋아하시네, 아주 명문이더만요. 그렇게 백 년을 살아 어느 날, 날이 적당한 어느 날. 막, 어? 쳇. 그 내용 아닌데? 그 내용 맞던데? 덕화 오빠가 다 읽어 줬는데? 그렇게 백 년을 살아 어느 날, 날이 적당한 어느 날. 그럴 리 없는데? 덕화가 죽었다 깨나도 읽을 수가 없는데? 그건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나 혼자 간직한 말이었는데? 그렇게 백 년을 살아 어느 날, 날이 적당한 어느 날, 첫사랑이었다, 고백할 수 있기를. 그러네, 그 내용 아니네. 아닌데, 덕화 오빠가 분명 해석해 줬는데. 연서네. 전에 말이야, 너 차 수십 대 날려 버렸을 때 너 혹시 덕화한테 내가 기억 방면으로 도움 줄 수 있다고 말했냐? 아니. 끝방 삼촌, 저랑 어디 좀 갑시다. 근데 걔는 어떻게 알고.. 나한테 다짜고짜 가자고 했지? 그러고 보니, 덕화 오빠가 나 단풍잎도 찾아 줬는데? 내가 완전히 잃어버린 거. 이 단풍, 어느 동네 건지 맞춰 봐. 뭐지? 오, 좀 멋진데? 우와, 좀 멋진데? 하아, 왜 몰랐을까.. 무려 도깨비 집터를 부동산에 내놓는 애였는데.. ★ 왕이었는지, 신이었는지, 나였는지. 이 글자는 들을 청이예요. 그 소녀 찾았어, 지금 스키장에 있어. 그건 니네 사장님이 전생에 우리 삼촌 여동생이라 그래. 우리 술 한 잔 할까요? 드디어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가 만났네? 운명이지. 왕여는 또 왜? 검이 꽂힌 채 사는 자에게 검을 꽂은 자를 만나게 하면 어떡해? 내 집엔 어쩐 일로? 여기 살아? 그 또한 운명이므로.. 마침 집도 구한다기에. 장난도 정도껏 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특별히 사랑하여. 김신, 그 아이 벌 받은 지 900년이야. 아직도 모자라? 한 생명의 무게란 그런 것이지. 애초에 죄를 만들지 말고 완전무결한 세계를 만들지 그랬어? 그럼. 그럼 신을 안 찾으니까. 하나 하나 다 사랑으로 점지한 아이들이야. 그만 좀 괴롭혀. 그 아이 눈 가린 손도 그만 치우고. 서로 알아보게 둬. 어떤 선택을 하든. 아쉽네, 잘 생겨서 좋았는데. 드디어 왔네. 덕화 너! 누구신지, 통성명이나 합시다. 칠성님! 천지님! 천지신명님! 그 누구에게도 빌지 마라. 신은 듣고 있지 않으니.. 신은 여전히 듣고 있지 않으니, 투덜대기에.. 기억을 지운 신의 뜻이 있겠지.. 기억이 나면 나는 대로, 안 나면 안 나는 대로 다 신이 뜻이겠지. 넘겨 짚기에. 늘 듣고 있었다, 죽음을 탄원하기에 기회도 줬다. 헌데 왜 아직 살아있는 것이지? 기억을 지운 적 없다.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선택을 했을 뿐. 그럼에도 신의 계획 같기도, 실수 같기도 한가?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 일뿐.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이 아이와의 작별 인사도 그대들이. 그럼 난 이만. 삼촌들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언제 왔어? 난 왜 쓰러져 있는 거야? 대박, 나 방금 필름 끊겼던 거야? 꼴랑 한 잔에? 네가 누구든 한 대만 맞자. 어, 어! 오오오, 왜 애한테 그래, 이 분은 아무 죄가 없으셔! 이 분? 야! 내가 자꾸 어디 가자 그런 거, 죄송. 예? 끝방 삼촌 왜 이래, 삼촌? 그걸 지금 말이라고, 너 덕화 맞아? 어? 야, 나비, 나비, 나비! 나비 양반! 삼촌 취했구나! 일루 와! 안 와? 아, 잠깐 타임! 타임, 놔 봐. 말로 할게. 말로 할게. 놔봐, 놔봐, 아이! 놔봐! 딱 놔! ★ 후후, 아 뜨거! 아뜨아뜨! 아우, 근데 진짜 맛있다. 그 남자 저승사자더라. 어떻게 아셨어요? 넌 어떻게 알았는데? 난 봐버렸어, 아주 이상한 한 순간을. 저는 어쩌다 보니 어릴 적부터 인연이 있어가지고. 말씀 안 드린 건 죄송해요. 근데 김우빈 씨, 저승사자치고 되게 착하고, 참하고.. 막 찾아오고 집착하는 여자 귀신 같은 건 없니? 씨, 그 생각부터 들더라. 나랑은 조건이 안 맞잖아. 남자가 너무 기울지. 응? 이승과 저승인데. 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지.. 하, 이런 생각도 했어. 그 사람이 저승사자면 내 오라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진짜로 천 년 가까이를 살았겠구나. 맞아? 그러니까 니가 ‘내’야? 도깨비 내외? 엄밀히 말하면 제가 ‘외’긴 한데요, 바깥 일 하니까. 허어, 미친다. 허.. 근데요 사장님, 이렇게 저희 집 앞에 서성거리셔도 김우빈 씨 만날 확률이 별로 없어요. 워낙 야근이 잦은 직업이라.. 그냥 연락하세요. ‘헤어질까요’라는 소리를 듣고 어떻게 연락을 하니? 연락이 오면, 응? 억지로 받긴 하겠지만. 그냥 협조해. 네. 근데요 사장님 죄송한데요. 그래, 그렇게 해.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너 대학생 됐으니까 알바 시간 조정해 달라는 거 아니야? 헐 대박. 사장님은 사람 맞으시죠? ★ 어서 오세요. 어우 깜짝이야, 사람 보고 놀란 거 되게 오랜만이다, 야. 응? 저두요. 근데 웬 닭 집 입니까? 뜬금 없이. 좀 전의 저분이 우리 아랫집 사셔. 아는 사이에 팔아 주고 그럼 좋잖아? 응, 그래. 빨리 먹고 가자. 응. 어후, 연초라 사건 사고 많아서 아주 죽겠다. 맛있게 드세요. 저희 이거 안 시켰는데.. 서비스예요. 신 메뉴 나와서. 고된 일 하시니까. 아이구, 참 거, 알아주셔서 감사합니.. 와, 맛이 죽입니다. 예? 왜들 그러십니까? 먹어, 먹어. 예, 소스 찍어서. ★ 뭐야? 망자가 겁도 없이 저승사자 앞에 나타나? 오랜만이다. 그간 저승사자로 살고 있었더냐. 무슨 소리야, 나를 알아? 알다마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째서 내가 네 앞에서 이리도 당당한지. 헌데 그보다.. 네가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은가? 가서 그 여인의 손을 잡아 보아라. 방금 나온 그 가게 주인 말이다. 저승사자는 전생에 큰 죄를 지어 된다는데, 그 속에 네 죄가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죄 속에 내가 있을 것이니.. ★ 기억을 지운 적도 없다.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선택을 했을 뿐. 그럼에도 신의 계획 같기도, 실수 같기도 한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하면 안 되는 생각.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 왜 하십니까? 오늘 안 하면 내일 할 것 같아서. 그러지 마십쇼. 지금 분위기 안 좋습니다. 장항동 김 차사 건으로 저승부에서 행동 강령 내려왔지 말입니다. 뭐라고. 너희들이 죄인이란 사실을 잊지 말라. 하아, 괜히 뒤숭숭해 죽겠습니다. 이거 이번 달 명부요. 답을 준 것인가, 질문을 준 것인가. 명부 드렸는데요? TEXT ON THE SCREEN 유신우 81세 2017년 2월 22일 17시 10분 심근경색 다녀왔습니다. 세 시간 후야. 사인은 심근경색. 마지막 배웅이라도.. 하고픈 말은 살며 다 했어. 마지막까지 내게 미안해할 모습은 보고 싶지 않고. 배웅은 나 대신 네가 잘.. 걱정 마. 꼭 다시 태어나라고. 다음 생에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고.. 고마웠다고, 내가 많이 고마웠다고. 무슨 일이에요? 검은 옷을 챙겨 놔. 곧 유회장의 부고가 올 테니까. 저 자 좀 들여다 보고. ★ 이런 내 맘 모르고 너무해, 너무해. 아씨, 너무하네. 아이고, 허리야. 내가 사장 되기만 해 봐, 아주. 맨날 여기로 출근해서 맨날 회식하고 콜 모범택시 태워 보낸다, 내가. 촌스러운 옷 엄청 칭찬해서 계속 그 옷만 입게 하고 만다, 내가. 덕화군. 왜요, 할아버지가 나 일 하나 안 하나 아주 대놓고 감시하래요?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지금요. 저 아직 퇴근 시간 멀었거든요. 옷은 준비했으니 차에서 갈아 입으시구요. 무슨 옷이요? ★ 이 생에서의 모든 순간이 선했던 자. 여기 잠들다. 유신우. TEXT ON THE SCREEN 이 생에서의 모든 순간이 선했던 자, 여기 잠들다. 유신우 ★ 이런 거군요, 불멸이란.. 하아, 유회장님 자꾸 뒤돌아 보시겠네. 참 마음 쓰이는 나으리시네, 하고. 그러니까 남은 사람은 더 열심히 살아야 돼요. 가끔 울게는 되지만, 또 많이 웃고, 또 씩씩하게. 그게 받은 사랑에 대한 예의예요. 따뜻한 거 뭐 좀 드실래요? 덕화 데리고 와서 같이 먹을게. ★ 나 어떡해? 나 효도도 못했는데.. 나 미안하게 이렇게 안 기다려주고 가시면 나 어떡해, 삼촌? 할아버지한테 죄송해서 나 어떡해, 삼촌? 나 이제 어떡해.. 나 이제 혼자 어떡해.. 니가 왜 혼자야. 삼촌.. 그래 삼촌 있잖아, 삼촌이랑 같이 있자. 아무 걱정 말고, 응? 삼촌.. ★ 일어나 봐, 뭐 좀 먹자. 사과가 토끼인데도? 금 나와라 뚝딱 해줄까? 하아.. 벽으로 쓱 하는 거 해줄까? 오빠, 이거 제 카메라 가지세요. 오빠 이거 좋아했잖아요. 됐어, 우리 할아버지가 너 주려고 직접 고르신 건데.. 미리 말 못한 건 미안해. 네게 마음 정리할 시간을 줬어야 했나 싶고, 후회돼. 근데 세상엔 질서라는 게 있고.. 알아요, 저희 집안이 도깨비 가신만 몇 대 째인데요. 다들 감사합니다. 그럼 전 할 일이 있어서. 할아버지가 내내 신경 쓰여 하실까 봐. 알잖아, 우리 할아버지 성격. 알지. 회사는 김 비서님이 CEO로 취임했어. 할아버지가 다 준비하고 가셨더라고. 잘 됐지. 어차피 난 아직 준비도 안 돼있고. 그래. 바닥부터 일 잘 배울게. 그게 우리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걸 테니까. 그래. 바둑도.. 배울게. 그래서 삼촌의 형이,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잘 되어볼게. 우리 할아버지처럼. 그래. ★ TEXT ON THE SCREEN 유덕화 어느 날에 김가 성에 믿을 신을 쓰시는 분이 찾아와 내 것을 찾으러 왔다 하시거든 드려라. 내가 남긴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다. 그분은 빗속을 걸어와 푸른 불꽃으로 갈 것이다. 그럼 김신인 줄 알아라. ★ 갔구나? 누구, 저 아세요? 알지. 착한 것 밖에 없는 애, 그래서 세상을 밝히는 애. 네 복은 네 심성에서 나와. 잊지 마. 네, 뭐. 애는 또 아니긴 한데, 나랑 술 한 잔 할래요? 술은 아름다운 사람이랑 마셔. 아름다우신데? 사람이랑 마시라구. 안녕. 뭐, 뭐야.. ★ 뭘 그렇게 많이 해? 덕화 온대서. 하아.. 후추 좀. 덕화 부럽다, 삼촌도 있고. 신경 쓰지 마. 나 요즘 좀 뭐가 자꾸 부럽고, 그립고 그래. 딱 얘기해. 부러운 게 삼촌이야, 되게 엄청 잘 생긴 삼촌. 왜? 너 사자된 게 언제라 그랬지? 300년 좀 넘었는데? 왜? 나 뭐 묻었어? 그냥, 아주 잠깐, 너한테 전에 안 보였던 얼굴이 묻어서. 누구? 어떤 얼굴? 내 눈에 보이면 안 되는 얼굴. ★ 하아.. 삼촌! 아, 않던가, 돕던가, 들어가던가, 왜 자꾸 알짱거리는데! 네가 쓸모 있다는 것에 대견해 하는 중이다. 하, 참. 재벌 3세라 함은 응당, 시간 외 업무도 경영 수업의 일환이다 생각하고.. TEXT ON THE SCREEN 이력서 지원부서: 천우 그룹 영업팀 성명: 김우식 삼촌 왜 그래? ★ 오늘 첫 개강! 저 대학생! 오늘 개강 파티! 그래서 짧은 치마! 아니야. 다녀올게요. 덕화가 데려다줄 거야. 오늘은 내가 다른 선약이 있어서.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다 알죠. 완벽하죠? 하나가 빠졌네. 아 나 뭔지 아는데. 눈은 왜 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어? 이제 완벽해졌네. 이거 그 단풍국에서. 오, 좀 감동인데? 근데 이거 뭐라고 적힌 거예요? 불어로 하늘이 정해준 운명 이라는 뜻이야.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절대적인 운명. 내가 좋아하는 단언데, 운명. 어떻게 알았지? 미팅 안돼, 소개팅 안돼, 낭만 안돼, 태희 오빠 안돼, 이 목걸이 반경 30센치 내에 어떤 남자도 안돼. 내가 생각하는 운명은 그런 거야. 아 진짜, 그런 거 하러 대학 갔구만. 방도 없지, 하늘이 그렇게 정한 걸? 늦겠다.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 ★ TEXT ON THE SCREEN 은탁 안전하고 찬란하게 학교 잘 도착했구요, 저 때문에 지옥에 오가실까 봐 보내구요. 선약은 화이팅이구요! 목걸이 잘 하고 있고, 주변에 남자 안 나오게 사진 잘 찍었고, 예쁘네. TEXT ON THE SCREEN 2017년 천우그룹 경력직 사원 채용 면접 하아. 상장군의 명을 받듭니다. 용서하십시오. 곧 따라가 뵙겠습니다. 흐흠! 아! 길이 어긋났을 게야. 내가 이리 살아있어서. 많이 쓸쓸했을 게야. 부디 용서하게.. 김우식씨, 최정민씨, 이지연씨 들어오세요. 예. ★ 붙었다고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보 붙었어. 아빠! 아이구 우리 딸! 자장면 먹을까? 어? ★ 회사에서 제공하는 주택입니다. 저한테요? 네, 면접을 잘 보셔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차량입니다. 저, 저한테요? 네, 면접을 너무 잘 보셔서. 아니.. 5월 초하루에 태어날 사내아이의 이름입니다. 대대손손 세상을 밝히는 큰 사람이 될 겁니다. 제 아이가요? 네. 저 근데 아까부터 계속 누구신지..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천우그룹 사장 김도영입니다. 사장님이요? 아이구, 아유,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저, 근데, 그러니까요, 저한테 왜 이런 과분한 걸 주시는지.. 전생에 나라를 구하셔서요. 제가요? 네. ★ 여보세요? 너 지금 어디야?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안 들어와, 이 험한 세상에. 지금 오후 다섯 시구요,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구요, 잔소리 좀 작작 하시구요. 작작? 너 어디냐고! 나 아까부터 묻잖아! 저요? 어딘지 알면 깜짝 놀랄 텐데? ★ 저 여깄네요. 협소하고 비좁은데. 너 아주, 어? 오, 저기 저기 저기 저기! 하나 둘 셋! (예쁜척!) 오, 잘 나왔어. 오, 그 정신 없는 와중에 웃는 것 봐? 여기선 언제 나가? 글쎄요? 5분쯤 후에? 왜 5분쯤 후에? 그 사이에 심쿵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협소하고 비좁은 데서? 그런 일 없거든. 있을텐데, 이렇게. 8원은 반올림해서 5,210원이에요. 봐요. 심쿵하죠? 아이, 넌 무슨 돈을 이렇게 협소하고 비좁은 데서 갚아? 그 돈으로 우리 사장님한테 얼른 고구마 값 갚으시라고. 빨리 갚으래? 누이는 보고 싶은데, 사장님한텐 현재가 있으니 가기도 그렇고 안 가자니 보고 싶고, 맞죠? 그래서 고구마 값 갚을 겸 얼굴 볼 핑계 만들어 준 거잖아요. 저 알바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보고 싶긴 한데, 너네 사장 무서워. 다음에 갈게, 다음에. 오, 대박. 현실 남매? 그만 나가요. 어? 아, 벌써? 왜, 밖에 엄청 추워. 학교는 어때? 다닐만해? 근데, 태희 오빠 있잖아요 이런 개.. 걔 안부 물어봤어? 학교 안부 물어봤지? 아니, 태희 오빠 미국 간대요. 메이저리그. 도깨비는 크게 될 인물을 알아본다고 해서, 그거 멋있다고 말하려고 한 건데.. 내 자랑 같아 뭐하지만, 내 예전부터 큰 사람이 될 정승상을 알아보곤 하였다. 황희 그 친구가 대표적이었지. 맹사성 그 친구도 참.. 알겠구요.. 쓰읍,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제가 바빠서요. 저 알바 늦었거든요? 협소하고 비좁은 데서 황희가 웬 말이냐고요. 다녀올게요. 어, 그, 그래.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 이렇게 좁고 비좁으니 몹시 곤란하군. 아, 좁고 비좁으니는 같은 말이군. 매일 오고 싶군. ★ 장풍! 으윽, 아아. 일루 와. 누나한테 와. 늦었어. 집으로 바로 가. 할머니 기다리셔. 또 보는구나. 그땐 인사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아 말이지, 나는 박중헌이라 한다. 낯빛을 보니 넌 이미 나를 아는구나. 모르는데요. 김신, 그 자가 말하지 않더냐, 날 죽인 게 그 자라고. 김신이 받고 있는 벌은 목숨의 무게만큼 늘어간다. 그 안엔 내 목숨 값도 있지. 원하는 게 뭐야? 그런 거 없다. 그저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하려는 것뿐. 나를 아니 왕여도 알겠구나. 김신의 가슴에 꽂힌 그 검은 왕여가 하사한 것이다. 이 비극적인 운명의 시작과 끝이 바로, 왕여지. 그런 왕여가 지금 누구와 살고 있는지 아느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왕여는 지금 김신과 살고 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맞다, 이름도 없는 저승사자, 그 자가 바로 왕여다. 그런 둘이 서로를 알아보게 되면 어찌 될 것 같으냐? 아, 이제 김신이 날 죽일지 살릴지는 네 손에 달린 것 같구나. 김신의 죽음이 네 손에 달렸듯. 오 이제 보니 넌 죽음을 관장하는 아이로구나. 잘못 알았어. 우리가 아는 그 저승사자는 이름이 있어. 김우빈. 내가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느냐, 난 그들의 파국을 원한다. ★ 뭐 해요, 안 비켜주고, 둘 만 한 장 박아 줍시다. 싫어. 내가 먼저 앉아 있었어. 왕여는 지금 김신과 살고 있다. 아, 미치겠네. 기타 누락자. 아, 아놔. ★ 잘 먹을게. 놀라게 한 건 미안하고. 무슨 일 있어요? 일부러 오신 거예요? 답답해서, 얘기할 데가 여기밖에 없기도 하고. 뭔데요? 사장님이요? 여러모로, 전생에 큰 죄를 지으면 저승사자가 되거든. 무슨 죄요? 그건 나도 몰라. 근데 아무래도 김신과 김선 오누이 역사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아서. 그 역사 속에서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세 명이야. 수천의 적들의 목을 벤 김신, 그런 김신과 왕비인 김선을 죽이라 명한 왕여, 그런 왕여를 종용해 김신, 김선 오누이를 죽음으로 몰아 간 박중헌. 김신은 아직까지 살아있고, 김선은 써니 씨로 환생했고 그렇다면 나는 왕여 혹은 박중헌이 아닐까 여기까지가 내 생각이야. 이름도 없는 저승사자 그 자가 바로 왕여다. 근데 둘 중 누구든 난 김신 그 자의 원수겠지. 둘 중 누구든 난 써니 씨와는 못 만나겠지. ★ 허, 어우 놀래라! 어우, 어 때릴 뻔 했잖아요. 죄송해요, 놀라셨나 봐요. 어, 네. 쫌. 어쩌죠? 문 닫았는데. 그러네요, 그럼 다음에 봬요. 네, 다음에 오세요. 절대 안 된다! 황후의 처소에 그 어떤 탕약도 들이지 마라! 백성 위의 왕, 왕 위의 신, 그 신이 김신을 일컫는다 합니다. ★ 치, 음, 음. 여보세요. 우리 만나요. 그만 헤어지자면서요? 써니 씨 집 앞입니다. 딱 기다려요! 미친다, 어머, 어. ★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면 어떡해요? 집에 있다 나와서 쌩얼이잖아요. 반지 돌려 받을 겸 나온 거예요, 우리 아직 그 핑계 남았으니까. 표정이 왜 그래요? 나 보고 싶어서 온 거 아니에요? 맞습니다. 근데요? 하지만 제가 누구일지 몰라 두려운 마음으로 물러섭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모든 게 오답인 제가, 하아. 제발 이건 정답이길 바랍니다. 그러지 마요. 살아있지 않은 저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그런 제게 안부 물어줘서 고마웠어요. 그러지 말라니까요. 저승사자의 키스는 전생을 기억나게 합니다. 당신의 전생에 내가 무엇이었을지 두렵습니다. 하지만 좋은 기억만 기억하길, 그 속에 당신 오빠의 기억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김신이면 좋겠습니다. ★ 그대의 오라비가 또 개선을 하였구나, 그대는 우리 둘 중 누가 살았으면 좋겠느냐. 폐하.. 대답해 보거라. 아님, 이미 계산이 선 것이냐, 하긴 그대는 내가 살든 오라비가 살든 잃을 것이 없구나. 못나셨습니다. 죽고 싶은 것이냐, 꼴은 왜 그러는 것이냐, 하 이미 그대 마음엔 초상이 났구나. 황후의 패물함을 가져오라! 왜 몸에 지니지 않는 것이냐, 이것들을 내가 여기 넣어두라 하사한 줄 아느냐, 나는 이제 알 수가 없다. 변방의 오랑캐가 적인지, 네 오라비가 적인지. 박중헌이 적입니다. 적들도 죽이지 못한 네 오라비를 난 오늘 죽일 것이다. 폐하. 네 오라비의 죄는 역모다. 그러니 이걸 끼고 황후답게, 대역죄인인 오라비를 맞아라. 그대는 누구의 편이냐, 단 한 번이라도 내 편인 적은 있었느냐,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심중에 있긴 하였느냐, 단 한 순간이라도 날 사랑한 적 있느냐, 그 자의 편에 서지 말라. 그게 그대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내 여인으로 살 것인지, 대역 죄인의 누이로 죽을 것인 것. 폐하를 사랑하는 여인은 대역죄인의 누이입니다. ★ 이거 뭐예요, 내가 본 것들 뭐예요? 당신의 전생입니다. 혹시 당신의 전생 속에 김신이 있나요? 혹시 당신의 전생 속에 나도 있나요? 잠깐 내 눈을 좀 보시겠어요? 행복으로 반짝거리던 순간만 남기고 힘들고 슬픈 순간들은 다 잊어요. 전생이든 현생이든. 그리고 나도 잊어요. 당신만은 이렇게라도 해피 엔딩이길. ★ 거기 오라버니? 왜 또 내 가게를 뚫어져라 보고 있죠? 오늘은 또 뭔데요? 노리개? 약과? 버선? 내 군고구마 값을.. 참, 나. 그건 내가 쏜 걸로 하죠. 근데 오라버니 폐하께서 진짜 저 못생겼다 하셨어요? 아무리 전장을 떠도는 오라비라고는 하나 어찌 답장을 한 번 안 주시고.. 정녕.. 정녕 네가.. 너무 늦게 알아봐 죄송해요, 오라버니. 행복해지겠다는 약조도 못 지켰어요. 죄송해요, 오라버니. 홍시, 꽃신, 비단. 고마웠어요. 하아.. 이제 이 못생긴 누이 자주 보러 오셔야 합니다. ★ 끝방 삼촌! 안 바쁘시면 저 좀요.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좀 걸리는 게 있어서.. 삼촌이랑 또 싸우셨어요? 아니, 그 전부터, 그날 이후로 가끔. 언제요?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그날이면.. 우리 삼촌 때문은 아니네. 저희 그 때 절에 있었거든요. 절에? 네, 삼촌이 등불 올리셨어요. 1년에 하루 그렇게 하신다고. 삼촌 마음에 빚이 있으신 분들이라고 그렇게나마 기리시는 거래요. 이름이 두 글자씩이었는데.. 김선이랑 왕, 왕 뭐였는데.. 한자여가지고.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곤마.(바둑 용어: 딱한 처지에 놓인 말) ★ 얘! 허, 얘 봐라? 또 안 보이는 척하네? 야, 이 나쁜 계집애! 안 보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쟤 지금 진짜 나 안 보이네.. ★ 나도. 네? 내가 너 학교까지 데리러 와서 신난다고, 나도. 아, 김신 씨가 저 학교까지 데리러 와서 너무 신나요. 치, 됐거든? 생각할 게 좀 있어가지고. 근데 뭐 좋은 일 있어요? 아까부터 좀 그런데? 일찍도 물어본다. 누이가, 우리 선이가 날 기억해 냈어. 아, 진짜요? 정말? 와, 잘 됐다! 근데 어떻게요? 아, 그걸 안 물어봤네. 그러네, 어떻게 전생이 떠올랐지? 표정이 왜 그래? 그러니까, 일단 차 좀 잠깐 세워 주실래요? 제 얘기 화내지 말고 들어주세요. 뭔데. 아저씨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사람인 거 저 믿어요, 진짜로. 무슨 일인데. 제가 어떤 망자랑 마주쳤는데 아무래도 박중헌인 거 같아요. 네가 박중헌을 어떻게 알아. 죄송한데, 그때 저승 아저씨랑 하시는 얘기 들었었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악귀인가 했는데 뭐가 목적인지 잘 모르겠어요. 괜히 주변의 이상한 일들이 다 연관이 있는 것 같고, 사장님이 전생 기억하시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인 것 같고. 얘기 잘 했어, 고마워. 일단 집에 데려다 줄 테니까 집에 꼼짝 말고 있어. 도깨비 집터가 제일 안전하니까. 네. ★ 구백 년을 피해 다녔는데 이리 마주치다니, 허망하구나. 괘념(마음에 두고 걱정하거나 잊지 않음)치마라, 바로 없애버릴 것이니. 허나 구백 년을 피해 다녔는데 이제 와 내 눈에 띈 이유를 답해야 할 것이다. 역시 천한 무신 출신이라 구백 년의 세월에도 혜안(사물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눈)은 못 가졌구나. 원수를 지척에 두고도 못 알아보는 꼴이 우스워서 내 친히 알려주려 함이라. 역시 네놈의 혀는 구백 년이 지나도 망령되구나. 제일 먼저 혀를 뽑을 것이다. 그 다음엔 몸뚱아리를 갈기 갈기 찢을 것이다. 그것들을 지금 할 것이다. 너나, 나나 구백 년의 세월이다. 그깟 물의 검으론 나를 못 벤다. 소신 노릇이나 하며 살더니 진짜 천상의 신이라도 된 줄 알았더냐. 네 놈 하난 어떻게든 죽일 테니 괘의치 말아라. 그리 우매하니 그리 하찮게 목숨을 잃는 것이다. 네가 썩어 문드러지던 그 20년 동안 알아보지 못할 만큼 컸지, 여는. 여의 이름을 한 번만 더 들먹이면.. 네 놈 곁에 있는 그 저승사자가 누군 줄 아느냐. 검을 내리고 그 검을 네놈 가슴에 꽂은 자가 바로 그 자다. 그 자가 바로 왕여다. 미친 소리. 네 우매한 누이는 이번 생에서도 그 자에게 빠졌더구나, 가엾게도. 넌 끝끝내 복수를 못 하겠구나. 울었다며, 네가 왜 우냐? 나도 안 우는데. 근데 누구야? 이 그림 속 여인. 기억은 없고 감정만 있으니까. 그냥 엄청 슬펐어. 가슴이 너무 아팠어. 디게, 엄청 잘 생긴 삼촌. 혹시 이런 반지 본 적 있어? ★ TEXT ON THE SCREEN 김선 金善 왕여王黎 ★ 네 전생에, 저승 그 자가 있느냐, 저승 그 자를 보았느냐? 이봐요, 오라버니. 남의 영업장 와서 다짜고짜 이게 뭔 행패지? 내가 전생 다 기억났다고 해서 진짜 김선이라도 된 줄 아나 본데.. 그 자가 왕여가 맞느냐? 난 퇴근해야 하니까.. 그 자가 왕여가 맞느냐고 물었다. 하아.. 너는 이번 생에서도 그 멍청이를 지키는구나. ★ 그랬던가, 내가 왕여였던가, 기억 없이 남은 감정은, 내가 왕여인 걸 잊지 말라는 스스로 주는 벌이었던 걸까? 역시 나는 가장 나쁜 기억인 모양이다, 당신에게서도, 김신, 그자에게서도. 내 목소리 들리지, 나도 네 목소리가 다 들리거든, 아주 선연히(실제로 보는 것 같이 생생하게). 상장군 김신, 폐하를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