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KDrama Script: Ep2

   Remember 02

 

1. 구치소 접견실 / 오후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진우와 서재혁. 서재혁 얼굴에 파인 주름이 더욱 깊게 보인다.

 

서재혁 진우야. 미안하다.

진우 그런 소리마. 재판 가면 억울한 거 변호사가 다 풀어줄 거야.

나라에서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 위해서 국선 변호사 선임해 주거든. 사명감 갖고 열심히 하는 분들 많대.

 

그때, 접견실에 들어오는 국선변호사. 말쑥한 양복차림의 고지식한 느낌을 풍긴다.

 

송 국선 (눈도 안 마주치며) 안녕하세요. 국선 변호사 송재익 입니다.

 

서재혁과 진우, 고개 숙여 인사한다. 간절함이 묻어나 있다.

 

송 국선 (진우 보며) 자제분인가요? 재판 관련된 이야기를 할 거라

둘만 있었으면 싶은데.

진우 재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되요. 아빠한텐 저밖에 없어요.

송 국선 뭐... 좋습니다. 검찰 조사 받아봐서 알겠지만 상당히 어려운

재판입니다. 증거도 그렇고.... 자술서까지 쓰셔가지고.

서재혁 그 자술서, 강제로 쓴 겁니다.

송 국선 강제요? 그런 얘긴 못 들었는데. (건성건성) 강제든 자의든

마찬가집니다. 지금이라도 범행 인정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표정 굳는 서재혁과 진우.

 

송 국선 잘못 뉘우치고, 선처 호소하면 형량을 1년이라도 줄일 수 있어요.

서재혁 아니요. 응하지 않겠습니다.

송 국선 (감정 없이 사무적으로) 결과는 책임 못 집니다. 국민 참여 재판 신청

하셨고... 재판 들어가면 판사가 유무죄여부 물어볼 겁니다. 제가 대신 대답할 거니까 대답하지 말고 결백한 척 앉아있으면 됩니다.

서재혁 결백한 척이라뇨? 저 진짜 결백합니다.

송 국선 (서재혁의 표정을 보더니) 백점이네요. 백점. 방금 그 표정으로 갑시다.

진우 (불쑥 끼어드는) 우리 아빠 안 믿죠?

송 국선 (당황해서) 뭐?

진우 아빠 대신 법정에서 싸워줄 유일한 사람이 변호사 아닌가요?

변호사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어요? 네?

송 국선 (마지못해 대답하는) 믿... 믿어야지. 아니... 믿는다.

진우, 얼굴에 불안함과 답답함이 가득하다.

 

2. 법원 앞 광장 / 오후

 

취재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법원 앞. 시위대들도 보인다.

인아, 주변을 살피며 법원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 고급 외제차가 선다. 여경이 내린다.

 

인아 (놀라서) 여긴 무슨 일이야?

여경 (어이없고) 내가 일일이 너한테 보고하며 다녀야 돼?

나 배심원으로 뽑혔어. 재판하는 거 재밌잖아.

인아 (황당) 넌 재판을 재미로 생각하니?

여경 누군가는 반드시 이기고, 누군가는 반드시 지는 게 재판이잖아.

그냥 게임 같은 거야.

 

인아, 여경을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이때 호송차가 들어서고 서재혁이 내린다.

기자와 시위대가 달려들며 아수라장이 되고, 인아와 여경은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그들 틈에서 진우를 발견하는 인아!!

 

인아 (가까이 다가가) 학생! (대답 없자) 나 기억 안나?

(실망한) 에이... 잘난 기억력도 별 거 아니네. 근데 왜 여길...

진우 (쓰러질 듯 초췌한 얼굴) ....

인아 (뭔가 의외다) ??

 

그 순간, 시위대 중에 한 명이 진우를 보고 소리친다.

 

시위 1 저기! 서재혁 아들이다! 살인마 아들!!!

 

순식간에 시위대가 몰려들고 그 중 한 명이 진우의 멱살을 강하게 붙잡는다.

청경이 달려들어 멱살남을 떼어내는데, 순간 진우의 목에서 목걸이가 떨어진다!

목걸이에 시선이 가는 인아. 사람들의 광기어린 상황에 입을 막는다.

이때, 누군가 진우를 향해 날계란을 던지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떨어지는 날계란들.

인아가 보는 앞에서 계란 세례를 받는 진우. 인아의 눈동자가 강하게 떨린다.

 

3. 법원 화장실 / 오후

 

화장실에 들어오는 박동호. 대변칸 에서 우웩하는 소리가 들린다.

양변기를 붙잡고 토악질을 하고 있는 남자. 서재혁의 변호인, 송 국선이다.

 

송 국선 (토하다말고 박동호를 보고) 박동호 선배님이시죠?

저는 송재익 변호사라고 합니다.

박동호 (등을 두드려주며) 그래! 변론 앞두고 술 먹고 왔을 리는 없꼬...

법정 상투 트는 날이가?

송 국선 (우웨엑~~) 티 안내려고 무지 (우엑~) 노력했는데...

박동호 (어이없어서 웃는) 국선?

송 국선 국선인 것도 티 납니까? (입가에 묻은 이물질 제거하며)

박동호 무슨 재판이고?

송 국선 오정아 살인사건이요. 국민 참여 재판입니다.

 

그때, 화장실 입구에 들어서는 진우. 송 국선의 목소리를 듣고 멈춰 선다.

 

박동호 아 그 사건? 초짜 국선이 큰 거 물었네.

송 국선 국선 수임이니까 맡았지 누가 이런 사람을 변론 하겠습니까?

 

입구에서 그 말을 듣는 진우.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송 국선 (우황청심환을 꺼내 씹으며) 이거 참... 심장이 벌렁거려서...

박동호 누구랑 붙는데?

국선 홍무석 검사요. 아세요?

박동호 (입 꼬리 올라가며) 좀 알지. 성격 깐깐에... 소설가 뺨치게 스토리도 잘 꿰고... 내하고도 악연으로 묶여있고....

송 국선 악연이요?

박동호 (악연이 떠올라 쓴 웃음 지으며) 그런 기 있다. 근데..

그 인간 배심원 맴 흔들고 구워삶는 게 특긴데 와 배심재로 갔노?

송 국선 피고인 뜻입니다.

박동호 싸우면 백퍼센트 진다. 싸우지 말고 검사판사하꼬 양형 쇼부봐라.

피살자 가족한테 백배사죄하는 코스프레도 좀 해주고...

빵에서 모범수로 잘 견디면 또 아나? 살아서 세상 구경할지...

송 국선 제 말이 그겁니다. 진짜 무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저러는 건지...

박동호 (코웃음치며) 무죄? 여기 오는 인간들 치고 억울하지 않은 인간이

어딨노? 다들 억울한 척... 사연 있는 척, 죄 없는 척 하기 바쁘제.

근데, 심장 떨리는 거 말고 딴 문제는 없나?

송 국선 그게... 하나가 있는데....

박동호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4. 형사합의부 법정 / 오후

 

사람들로 빼곡한 재판정. 배심원들이 일제히 들어오면 그 중에 여경도 보인다.

인아, 방청석에서 진우를 발견했다. 계란 뒤집어 쓴 모습.

인아, 얼굴이 어두워지며 조심스레 진우의 뒤쪽 방청석에 앉는다.

이때 법정 문이 열리면서 서재혁이 들어온다. 방청석에서 야유 소리가 쏟아진다.

이 모든 상황이 감당되지 않는 듯 힘겹게 발을 내딛어 피고인석에 앉는 서재혁.

 

진우 (가슴이 무너지며) (E)아빠...

 

보랏빛 법복을 입은 판사가 들어와 착석한다.

 

판사 지금부터 서울 지방법원 형사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입니다. 먼저 배심원 대표 선서해주세요.

 

배심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배심원 대표 여경이 선서를 시작한다.

 

여경 본 배심원들은 이 재판에 있어 사실을 정당하게 판단할 것과 이 법정이

설명하는 법과 증거에 의해 진실하게 판결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판사 검찰 측 최초의견 진술해주세요.

홍무석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오며) 2011년 11월 2일 발생한 오정아

살인사건에 대해 피고인 서재혁을 살인죄로 기소합니다.

 

차갑게 미소 짓는 홍무석의 얼굴에서-

 

5. (과거) 홍무석 검사실 / 오후

 

1부 58씬의 상황. 곽 형사가 파일에서 서재혁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홍무석 피해자와 이웃에 아버지랑은 친구라면서요. 잘 아는 사이면서

모른다고 진술했고.. 다른 기억도 오락가락하고...

곽 형사 기억상실 부분은 지금 신경과에서 진단 중이라 (하는데)

홍무석 (말 끊고) 이 시간부로 수사지침 내립니다. 유력한 용의자 서재혁이

어떻게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혐의를 벗어났는지 그걸 파요.

 

6. 형사합의부 법정 / 오후

 

다시 현재. 비릿한 웃음이 스쳐가는 홍무석의 얼굴.

그때, 재판정에 들어오는 박동호. 빈자리를 찾아 슬그머니 앉는다.

그 앞줄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인아가 앉아 있다.

 

판사 변호인 측 주장 말하세요.

 

배심원들이 숨을 죽이고 변호인의 말에 집중한다.

 

송 국선 (자리에서 일어나며) 저희는... (애써 한 글자씩 겨우 내뱉는)

검.. 사... 측이... 제시한... 모든. 공.소.사.실을.... 이이이인... 정..하지

않..습니..다. (힘들게 말을 끝내고 덧붙이는) 무죄.. 주장..하겠.. 습니다.

(털썩 자리에 앉는)

 

변호사가 심각한 말더듬이라는 사실에 방청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판사 (판결봉 두드리며) 방청객 조용하세요. 변호인. 제대로 변론할 수

있겠습니까? 좀 심각해 보이는데...

송 국선 괘애애... 괜찮습니다.

박동호 (방청석에서 피식) 말 더듬는다 해서 구경 왔더니... 재밌네.

 

팔짱 끼고 본격적으로 재판을 구경하기 시작하는 박동호.

재판정 앞에 스크린이 설치된다. 앞으로 걸어 나오는 홍무석.

 

홍무석 오정아양은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됐습니다. 여성의 질 내부가 심하게

훼손된 흔적이 있었지만 범인의 정액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7. (인서트) 숲 / 아침

 

숲길에서 발견된 오정아의 시체 컷.

 

8. 형사합의부 법정 / 오후

 

홍무석, 배심원석을 한번 쭉 둘러보더니.

 

홍무석 피고인 서재혁이 피임도구를 착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범행으로 추론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박동호 (방청석에서 혼잣말하는) 증거 있나?

홍무석 피고인 서재혁은 오정아씨를 성폭행 한 후,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먼저 오정아씨의 얼굴을 가격한 후, 목을 조르기 시작합니다.

 

9. (인서트) 숲 / 새벽

 

서재혁이 오정아의 얼굴을 때리고 목을 조른다.

 

(홍무석) 미리 준비해 온 흉기로 오정아양의 가슴을 찌릅니다. 이 부분 역시

피고인의 계획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10. 형사합의부 법정 / 오후

 

박동호 (혼잣말) 전부 추측 아이가? 소설 쓰지 말고 팩트를 가져 와야제.

홍무석 몇 번이나 찔렀을까요? 한 번? 두 번? 세 번? 아닙니다.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한 배심원석. 잔뜩 긴장한 표정의 인아.

 

홍무석 국과수 부검 결과 오정아 양은 처음 찌른 타격에 이미 숨을 거뒀다는

사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은 무려 십여 차례나 오정아 양의

몸 구석구석을 흉기로 찔렀습니다.

 

11. (인서트) 숲길 / 새벽

 

서재혁이 오정아의 몸을 계속 찌른다. 일그러진 서재혁의 얼굴.

 

12. 형사합의부 법정 / 오후

 

홍무석이 포인터를 누르자 스크린에 사진이 뜬다.

오정아 몸 구석구석이 자상흔적으로 처참하다. 인아, 충격에 눈을 감아 버린다.

 

박동호 (혼잣말) 국선은 뭐하노? 살해도구 찾았냐고 브레끄 걸어야제?

 

하면서 송 국선 보면,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다.

 

홍무석 찌르고. 또 찌르고 계속 찔렀습니다. 죽은 걸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요?

거기서 쾌락을 느낀 겁니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 반론하는 송 국선.

 

송 국선 (마음은 급한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지....지금... 발언은 검... 사의...

추추추추추.... (잠시 쉬고서 다시) 추추추추 추측에 불과... 합니다.

홍무석 (들었으면서 모른 척) 잘 못 들어서 그러는데 추? 뭐라고요?

송 국선 (심하게 더듬으며) 추추추추추추... 측이라고 했... 습...니다.

 

송 국선의 어수룩한 말투 때문에 여기저기기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방청석엔 오정아 부도 있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서재혁을 노려보고 있다.

 

홍무석 아. 추측. 이건 추측이 아니라 보통의 상식에 의한 추론입니다.

판사 인정합니다. 검사는 증거에 입각해 발언해주세요. 잠시 휴정합니다.

 

13. 법원 복도 / 오후

 

박동호, 송 국선에게 자판기 커피 건네고 있다.

 

박동호 이기는 건 둘째 치고 그래가꼬 변론이나 제대로 하겠나?

송 국선 (주위를 살피더니 아무도 없는 거 확인하고) 법정공포증이랍니다.

연수원 모의재판 때는 문제없었는데 필드에 나오니까 이러네요.

박동호 (쳐다보는)

송 국선 닥터 하는 말이 이건 약 먹어선 안 되고 법정에 계속 서 봐야 된다네요.

박동호 니 더듬병 치료하는 동안 누구는 골로 가겠구만.

송 국선 뭐 어쩔 수 없죠.

박동호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며) 어쩔 수 없다?

 

14. 형사 합의부 법정/ 오후

 

휴정 중이라 사람들 몇 없는 법정. 인아가 조심스레 진우에게 다가간다.

 

인아 (목걸이 조심스레 건네며) 이거.. 아까..

 

진우, 보면 법원 앞에서 떨어져 나간 자신의 목걸이다.

목걸이를 쥐어 잡더니, 고개 떨어뜨리며 흐느끼는 진우.

인아, 안쓰러워 진우 향해 손을 뻗다가 주저하며 거둔다.

 

15. 법원 외경 / 오후

 

재판이 열리고 있는 법원 외경. 그 위로-

 

(판사) 피고인 나와 주세요.

 

16. 형사합의부 법정 / 오후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증인석으로 걸어 나가는 서재혁.

아버지의 지치고 힘든 걸음걸이를 차마 보지 못해 고개 돌리는 진우.

 

홍무석 처음 오정아 양을 발견한 자가 피고인 맞습니까?

서재혁 네.

홍무석 오정아 양과는 이웃에 살면서 10년 넘게 알고 지내던 사이가 맞습니까?

서재혁 네.

홍무석 형사에게 목격진술을 했을 때는 오정아씨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죠?

서재혁 그때는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렇게 대답했지만 지금은 기억이 (하는데)

홍무석 (말 끊고)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

서재혁 ...네.

홍무석 오정아 양이 살해되었을 거라 추정되는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피고인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서재혁 (주저하는) ...그건...

홍무석 이번 대답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할 겁니까?

 

망설이는 서재혁을 보는 진우. 서재혁이 오정아 시체를 발견한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17. (과거) 진우의 집-거실+숲길 / 새벽

 

1부 51씬. 서재혁이 오정아 시체를 발견하기 직전 상황이다.

핸드폰 진동음이 울린다. 액정에 ‘아빠’ 찍히고-

 

진우 (화내며) 내가 전활 몇 번을 했는데...

서재혁 전화? 난 못 들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며) 여기가 어디지?

 

핸드폰 종이백을 들고 멈춰 서 있는 서재혁.

처음 온 길을 보는 것처럼 계속 두리번거린다. 기억이 뒤죽박죽이다.

 

진우 (불길함 예감하고) 아빠, 침착해. 내가 찾아갈게.

 

18. 형사합의부 법정 / 오후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서재혁.

 

홍무석 (더욱 몰아붙이는) 다시 묻겠습니다. 피고인은 사건발생 시각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배심원석의 여경, 방청석의 인아와 진우, 박동호 모두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박동호 (혼잣말) 거짓말이라도 해라. 기억 난다꼬!!

서재혁 (입을 열더니)....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방청석에서 들리는 탄식. 방청석의 오정아 부, 분노하는 표정이다.

 

홍무석 그러니까 사건발생 시각 피고인이 어디서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거죠?

서재혁 ...네.

홍무석 기억상실이라... 참 편리하군요. 결정적인 순간은 기억 안 난다하고.

이번 재판... 계속 기억상실로 밀어 붙일 생각인가본데...

(몰아붙이는) 살해한 사실 자체를 기억 못하는 건 아닙니까?

서재혁 아닙니다. 제가 죽이지 않았습니다.

홍무석 기억 못하는데 죽이지 않았다는 건 어떻게 확신하죠?

서재혁 (대답 못하는)

홍무석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판사를 보며) 대답을 못하는 군요.

 

절망적인 눈빛의 서재혁. 홍무석, 배심원들을 바라본다. 여경과 눈이 마주친다.

 

홍무석 (여경을 바라보며) 배심원 여러분. 피고인이 그날의 기억은 지웠을지

몰라도... 그날의 진실까지는 지울 수 없을 겁니다. 정의가 살아있는 한.

 

배심원들, 동요하는 눈치다. 진우, 어깨가 더 움츠러든다.

인아, 그런 진우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더 어두워진다.

 

박동호 (어이없는 표정으로 혼잣말) 저 양반 진짜 죽인 거 아이가?

 

그 순간, 방청석에서 들리는 소리. ‘뭐 기억이 안나?’

오정아 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증인석으로 달려든다.

막아서는 법원경위도 밀어내고, 서재혁을 잡아챈다.

급기야 몰래 들여온 칼을 꺼내 서재혁의 목에 들이댄다.

법원 경위가 뛰어오고- 법정은 아수라장이 된다.

 

오정아 부 (울부짖는) 니가 어떻게 내 딸한테 그럴 수 있어?

내 딸이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서재혁 나 아니야. 정말 아니야.

오정아 부 재판이고 뭐고 필요 없어. 내 딸은.. 지금 내 딸은 죽어서 차가운

땅바닥에 묻혔는데.. 이 살인마 새끼는 여기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뻔뻔하게... 뭐? 기억이 안나?

법원경위 (진압봉 들고 다가가며) 진정하고 칼 내려놓으세요.

오정아 부 오지마. 더 이상 다가오면 이 살인마 새끼 죽여 버릴 거야.

 

그 말에 자극받은 오정아 부, 서재혁 목에 들이댔던 칼날을 약간 밀어 넣는다.

거리 유지하는 법원경위들. 진우, 인아, 박동호, 여경 반응 컷들.

 

오정아 부 판사. (핏발 선 눈으로) 당장 사형 때려. 내가 보는 앞에서 사형 때리라 구!

 

홍무석, 오정아 부의 행동이 재판에 이득이 될 거라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돌고 -

 

오정아 부, 서재혁 목에 들이댔던 칼을 찔러 넣으려하자-

어느새 뒤로 다가왔던 박동호가 오정아 부의 손을 탁 잡아챈다.

깜짝 놀라는 오정아 부, 눈빛이 강하게 흔들린다. 상당한 힘의 박동호.

 

오정아 부 이거 안 놔!!!

박동호 죽이고 싶은 맴은 백번 만번 이해합니다마는....

오정아 부 (절규하며) 이거 놓으라고!!

박동호 이러다 딸내미 죽인 놈보다 먼저 감옥 드갑니더.

 

그렇게 말하며 딱 버티고 서는 박동호. 오정아 부는 더 이상 칼을 찔러 넣지 못한다.

순간, 박동호 얼굴을 본 진우의 기억 속에 팍! 하고 스파크가 튄다.

 

19. (비주얼) 기억의 방

 

진우 뇌 안으로 파고드는 비주얼.

수천 개가 넘는 기억의 방들을 빛의 속도로 찾아 들어간다.

 

20. (과거) 납골당 / 오후

 

고등학생 진우가 서재혁과 함께 납골함 앞에 서있다.

인기척에 진우가 고개 돌리면, 촌스러운 양복을 빼입은 남자가 보인다.

그가 기억의 방에서 찾아낸 박동호다.

 

21. 형사합의부 법정 / 오후

 

진우, 기억 속에서 찾은 박동호의 얼굴을 보고 있다.

그 박동호가 아버지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있다!

박동호, 오정아 아버지의 팔을 꺾어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게 한다.

법원경위들이 오정아 부에게 달려들면서 인질극 상황이 종료된다.

땅바닥에 쓰러져 오열하는 오정아 부.

 

박동호 (명함 꽂아주며) 변호사 필요할 깁니더. 특별히 반값에 해드릴게예.

 

박동호, 구겨진 양복 상의를 추스르고, 넥타이 바로 잡는다.

 

22. 법원 복도-> 밖 / 오후

 

수갑 채워진 서재혁이 법원 경위를 따라 복도를 나가고 있다.

뒤에서 따라붙어 서재혁과 필사적으로 대화하는 진우.

 

진우 아빠! 목에서 피나.

서재혁 아빠 괜찮으니까 걱정 하지 마. 오늘 기일인거 알지? 엄마랑 연우 꼭 보러가라. 안가면 하늘에서 서운할 거야.

진우 (고개 끄덕이며) 알았어. 꼭 갈게.

 

호송차에 태워지는 서재혁. 할 말이 더 남았는지 창문에 바짝 붙어서-

 

서재혁 아빠 방 옷장 열어봐. 오늘 엄마한테 갈 때 입히려고 양복 다려놨어.

진우 (마음 울컥해지는)

 

호송차, 출발한다.

 

23. 법원 밖 / 오후

 

호송차에 태워지는 서재혁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보고 있는 인아. 여경이 다가온다.

 

여경 이참에 우리 내기 할래?

인아 뭐?

여경 수갑 채워져서 끌려가는 저 살인마 누명이 벗겨질지

아님 죗값 치르러 감옥에 들어갈지.

인아 그런 내기를 내가 왜 해야 하는데?

여경 난 저 사람이 범인 같거든. 증거, 자술서 모두 확실하고.

근데 넌, 아까 보니까 또 그 잘난 감정이 앞서는 거 같아서..

인아 (진지하게) 내기 같은 거 할 생각 없어. 그리고.. 남여경...

재판 이제 막 시작했어. 피고인 얘긴 자세히 들어보지도 않았는데

죽였다고 판단 내버린 거면.. 넌..배심원 자격 없어. 그만 둬.

여경 (한방 맞은 듯) !!

인아 아무리 사람 죽인 범죄자라도... 법정에선 자기 삶에 대한

공평한 기회를 가져야 하는 거잖아.

여경 그래. 그건 니 말이 맞아. 앞으로 이 재판... 내 선입견이 뒤집힐지

아님 구질구질한 변명을 듣게 될지 잘 들어볼게. 덕분에 이 재판

더 재밌어졌는데? (차가 앞에 도착하자 타는)

 

인아, 그런 여경을 바라보는데 어두운 표정이다.

24. 법원 근처 버스정류장 / 오후

 

진우,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아까 바닥에 떨어졌던 박동호의 명함이다. ‘형사소송 100퍼센트 승소’라는 문구!

핸드폰으로 박동호 변호사 관련 기사를 검색해본다.

 

-박동호가가 수임했던 사건들. 경력, 물의를 일으켰지만 승소했던 사건들이 나온다.

-최근 변론은 ‘유전무죄 승소’ ‘금수저는 진리인가?’ 등등의 기사가 실린 재벌 사모님 사건.

 

버스가 도착하고 진우가 탑승한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겨우 차에 오르는 인아. 둘은 서로를 발견하지 못한다.

 

25. 버스 안 / 오후

 

진우와 인아가 탄 버스가 시내도로를 달린다. 빌딩 옥상 전광판에 뜨는 뉴스.

 

기자 1 검찰발표에 따르면 서재혁은 오정아씨를 성폭행 한 뒤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서재혁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진우, 창밖으로 전광판 뉴스 발견하자, 위축되어 고개를 푹 숙인다.

진우 뒤에 앉아있던 인아도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한다.

‘피살자 아버지, 법원에서 인질극 벌여!’ ‘비극의 인질극, 과연 누가 죄인인가?’

‘광분한 네티즌, 배심원에 사형 선고 내리도록 서명운동 시작.’

 

인아, 심란한 마음에 창밖을 보려다, 앞에 앉아 있는 진우를 발견한다.

인아, 진우를 지켜보는데- 진우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더니 작게 흐느끼고 있다.

 

시간경과>

 

버스 안에 진우와 인아 밖에 없다. 인아, 용기를 내서 진우 곁으로 다가가 앉는다.

진우 놀라서 돌아본다. 인아다.

 

인아 (손수건을 건넨다.)

진우 동정 필요 없어요.

인아 아직 고딩이라 잘 모르겠지만.. 너, 사실과 진실이 다른 건 알지?

암튼... 법, 그리고 판결이라는 거.. 결국 사실과 진실 같은 거야...

진실은 사실을 이길 수 있다....

진우 위로도 필요 없어요.

인아 나도 아직 뭐가 진실인지는 몰라. 근데...

우리 아빠가 그랬어. 너네 아버지 정말 그럴 분 아니라고....

진우 (그제야 천천히 고개 들어 인아를 보는)

인아 이제 시작이잖아. 끝난 건 아무 것도 없어.

 

진우, 인아가 준 손수건을 가만히 쥐어 본다.

 

26. 동네 버스정류장 / 오후

 

진우가 내린다. 인아도 내린다.

 

인아 저~ 위쪽이지?

진우 (그걸 어떻게) ?

인아 (반대쪽 가리키며) 난 저쪽 조 밑에 피자집 알지? 거기가 우리 가게야.

가끔은 내가 스쿠터 끌고 배달 나가. 니가 시키면 누나가 특별히 치즈 토핑 두껍게 올려줄게. 너 기억력 좋지? 514에 6776.

진우 (희미하게 웃으며 가버리는) ....

인아 (가는 진우의 뒤에 대고) 야. 고삐리 어깨 펴.

누나가 신상 피자 한 판 갖다 줄까?

진우 (고개도 안 돌리고 가면서) 고삐리가 뭐에요~ 나 서진우이야. 서진우!

인아 그래. 서진우! 힘내라. 기도해. 진실은 사실을 이긴다.

 

진우, 계속 걸어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인아의 모습에서-

 

27. 남규만의 집무실 / 오후

 

집무실에 설치된 TV를 보고 있는 남규만. 왼쪽 턱 아래엔 밴드가 붙여져 있다.

 

기자 피해자 오정아씨의 아버지가 재판도중 인질극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오늘 국민참여 재판은 연기됐습니다.

 

그때 걸려오는 핸드폰 받아들면-

 

남규만 안 그래도 지금 보고 있다. 뭐? 거기로 지금 오라고?

 

28. 일호그룹 입구 / 오후

 

남규만이 외제 승용차에 오르자 출발한다.

거리 두고 주차되어 있던 박동호의 차량도 따라서 움직인다.

 

29. 박동호의 차안+구치소 / 오후

 

박동호가 타고 있는 차량 내부. 운전 중인 편 사무장. 남규만의 차를 미행하고 있다.

박동호, 창밖을 보며 <네박자> 특정 부분을 휘파람으로 부른다.

곧이어 박동호의 핸드폰이 울린다.

 

박동호 네. 형님.

 

구치소에서 통화 중인 석주일.

 

석주일 남규만 그 놈은 만나봤나?

박중호 (앞에서 주행하는 남규만 차량 보며) 지금 끝장 볼라꼬예.

형님은 퇴소 준비 하고 있으면 됩니더.

30. 일호빌딩 공사현장 외경 / 오후

 

철근 골조에 콘크리트만 덮인 앙상한 건물 외경.

먼저 와 있던 외제차량 한 대가 보인다. 남규만 차량이 도착한다.

멀리 떨어져 박동호의 차도 선다.

 

31. 일호빌딩 공사현장 최상층 / 오후

 

최상층에 도착하는 공사용 엘리베이터. 남규만 일행(수행원과 안 실장)이 내린다.

미리 와 있던 배철주.

 

배철주 뭔 혹들을 이렇게 달고 왔냐? 사람 좀 물려봐라.

(규만 귀에 대고) 우리 지난 번 파티....

 

남규만, 안 실장에게 손짓하자, 수행원들과 작업하던 인부들 일제히 내려간다.

 

배철주 그때 노래 불렀던 애. 요즘 시끄러운 그 재판 맞지?

죽은 날짜 보니까 파티 했던 그 날이던데.

남규만 그게 뭐?

배철주 (잠시 고민하다가) 너.. 혹시... 아니지?

 

남규만이 뭐라 대답하려는 그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한다.

문 열리면서 모습 드러내는 박동호. 저지하려는 안 실장.

 

박동호 남규만 상무님이시지예? 어? 친구 분도 같이 계셨네예?

 

당황하는 기색의 남규만과 배철주.

 

박동호 유명하신 분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뵙게 되다니 이런 횡재가 또

있습니꺼? (고개 푹 숙여 인사한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만.

 

만류할 사이도 없이 잽싸게 찰칵 찍어버리는 박동호.

 

남규만 (버럭) 이 새끼가.. 사진 지워 새끼야. 너 뭐야?

박동호 박동호 변호사라고 합니더.

남규만 (박동호 복장을 보더니) 변호사? 웃기고 있네. 빨리 안 내려가?

박동호 어제부로 석주일씨에게 선임됐십니더.

상무님이 룸싸롱에서 얼굴 만져준 사람 있잖습니꺼?

남규만 (급흥분해서) 여기가 개나 소나 다 들어오는 데야? 저 새끼 당장 치워!!

 

안 실장이 무전기에 뭐라고 말하자, 아래층에서 인부들이 우르르 올라온다.

 

박동호 (인부들에게 끌려 나가는 와중에 핸드폰 꺼내는)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면 이리 박한 대접은 못할 긴데... (흔들림 없는)

남규만 미친 새끼. (억지로 흥분 가라앉히며) 저 새끼 데려와 봐.

 

인부들이 박동호를 끌고 온다.

남규만 너는 새끼야, 핸드폰 안에 뭐가 있어도 죽고.. 없어도 죽는다.

박동호 (실실 웃고만 있는)..

남규만 (황당) 뭐야? 약 빨았어?

박동호 약은 상무님이 하셨을 깁니더.

남규만 뭐?

박동호 저희 의뢰인과 약간의 물리적 다툼이 있던 그날 밤 여기 계신 친구분과

메토톤 나눠 마신 거 다 압니더.

남규만 (표정 일그러지는)

박동호 유럽에 오래 계셔서 깜빡하신갑네예. 메토톤을 들여오거나 복용하면

무기 또는 5년! 군대 면죄 받으셨지예? 군대 가는 맴으로 쉬다오이소.

남규만 너 지금 나 협박하냐?

 

박동호, 남규만과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는 모습에서-

 

32. 인아네 피자가게 / 오후

 

인아 부는 도우에 토핑을 올리고 있고, 인아 모는 연지의 머리를 빗겨 주고 있다.

인아가 들어서자, 금세 인아 곁으로 다가오는 인아 부와 인아 모.

 

인아 부 인아야, 진짜 그 분이 그런 거 맞아?

인아 (힘없이 앉으며) 나도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어...

인아 모 에휴.. 그 여자 애 아부지는 이제 뭔 낙으로 살겠어...

하필이면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인아 근데 법정에서 보니까 그 분 정말 결백해 보였어.

(곰곰이) 그냥 있는 그대로 진실 되게 말하는 거 같았거든...

인아 모 그래도 동네 사람들은 다~들 그 아저씨가 죽였다던데?

야휴... 여기저기 동네 집값 어떡하냐며 다들 난리야 난리~

인아 부 (묵묵히 토핑 올리며)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 너무 하네..

같이 한 동네에서 살 부비고 산 게 얼만데... 판결도 안 났구만...

 

인아, 동생 연지의 머리를 매만지는데 생각이 복잡한 표정.

 

33. 일호빌딩 공사현장 최상층 / 오후

 

박동호 (핸드폰에서 사진폴더 터치하며) 범행현장 담은 씨씨티비 동영상하나면

뭐, 게임 오바 아니겠습니꺼?

남규만 (얼굴이 굳어지는) ...

박동호 아, 또 하나. 서촌별장에서도 2차로 귀국파티 하셨더라고요.

여기 계신 분하고예.

 

‘귀국파티’라는 말에 궁지에 몰린 동물처럼 무섭게 번득이는 남규만의 눈빛.

순간, 박동호의 얼굴에 꽂히는 주먹. 한 대 두 대 연이어 주먹을 박아 넣는다.

급기야 박동호가 쓰러지자 마구 발길질한다.

 

남규만 (발로 밟으며) 너, 잘못 건드렸어. 내가 누군지 알아?

어디 변호사 나부랭이가 설치고 있어. (퍽퍽)

 

분이 안 풀리는지 발길질이 점점 거칠어진다. 반항하지 않고 맞기만 하는 박동호.

 

남규만 너 같은 새끼는 내가 맨손으로 찢어 죽이고.. 밞아 죽일 수 있어. (퍽퍽)

 

분이 조금 풀렸는지 발길질을 멈추는 남규만. 바닥에 떨어진 박동호 핸드폰을 집어 든다.

 

남규만 (핸드폰 터치하며) 복사본 있지? 그것도 내놔. 안 내놓으면

변호사 인생 끝장 날 줄 알아.

 

박동호의 핸드폰을 터치한다. 조금 전 박동호가 찍은 자기 사진 외에 아무 것도 없다.

 

남규만 뭐야? 왜 없어? 동영상 어딨냐고?

 

박동호, 피 섞인 침을 뱉자 부러진 이빨 서 너 개가 떨어진다.

박동호가 이빨하나를 줍는다. 코와 입술에서 피가 터져 처참한 모습.

 

박동호 (고통스러워하며) 복사본 그딴 거 없십니더.

남규만 뭐?

박동호 원본 자체가 없으니까예. 동영상 있었으면 지 몸 상하는 방법을 쓰진

않았겠죠. (부러진 이빨 주워들며) 이가 없으면.. 잇몸 아닙니꺼?

남규만 (기가 막히는)

 

남규만, 박동호의 멱살을 잡아 난간 쪽으로 끌고 간다.

공사 중인 건물이라 펜스가 없다. 한 발짝만 잘못 내딛어도 바로 60층 아래.

 

남규만 너 같은 새낀 여기서 던져버려도 아무도 몰라.

박동호 (60층 아래 바라보는데 까마득하다.)

남규만 왜? 내가 못할 거 같애?

박동호 꼭 말투가 옛날에도 몇 번 그래본 말툽니더.

남규만 (움찔한) 뭐? 이 새끼가.

박동호 그거 아십니꺼? 하바드 법대생 사이에 이런 얘기가 있다카데요.

살인을 하고도 빠져 나올 수 있어야 하바드 법대생으로 인정해준다꼬.

상무님 권력이라면 하바드 법대생이 하는 건 충분히 하실 수 있겠지요.

남규만, 당장이라도 박동호 잡은 손을 놓아버릴 것 같은데.

그때, 건너편 건물에서 핸드폰으로 그 모습 찍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남규만을 향해 손까지 흔든다. 박동호의 부하들이다.

 

박동호 이걸 우짜노. 구경꾼들이 쪼매 있네예.

남규만 (할 수 없이 손을 놓는) ...

박동호 석 사장님 건은 합의해주시라 믿겠십니더.

남규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그 양아치가 니 애비라도 돼?

 

비틀거리며 걸어가다 ‘아버지’라는 말에 걸음 멈추는 박동호

 

34. 일호빌딩 공사현장 앞 / 오후

 

박동호가 비틀비틀 걸어 나온다.

박동호 부하들이 조폭 두목 모시듯 허리를 90도로 굽힌다.

엉망진창인 얼굴로 차에 타는 박동호. 운전석에는 편 사무장.

 

박동호 (힘겹게) 형님 기다리시겠다. 깊이 밟아라.

 

35. 박동호의 차안 / 오후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박동호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창밖을 응시한다.

 

박동호 아버지라...

 

생각에 깊이 잠기는 박동호의 얼굴 위로-

 

36. (과거) 장례식장 / 오후

 

문상객 하나 없는 쓸쓸한 장례식장. 조화조차 하나도 없다.

참담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고 있는 대학생 박동호(24). 그때-

조화 가득 든 덩치들과 석주일이 입장한다.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지는 장례식장 분위기.

석주일, 박동호 아버지의 영정사진에 정중하게 절을 올린다.

 

박동호 지 꼬맹이 때 각그렌저 끌고 자주 왔었지예?

석주일 (웃으며) 기억나나? 그래... 대학교 댕길 학자금은 있고?

박동호 돈 벌어 학교 다니는 게 이득일지, 취업하는 게 이득일지 계산기

뚜드려 볼 깁니더.

석주일 계산기 뚜드러 볼 필요 없다. 어? 학교 안 가면 내같이 된다.

내가 뭐로 보이나? (대답 없자) 와 대답이 없노?

박동호 (머뭇거리며) 건달 양아치 조폭 중에 덜 실례되는 말이 뭡니꺼?

석주일 (웃으며) 내가 건달생활을 스물에 시작했다. 딱 니 만할 때다.

박동호 이리 쓸쓸한 장례식장 보셨십니꺼? 차라리 건달이 낫겠네예.

울 아버지처럼만 안 되면 됩니더. 죽었는데도 한명도 없다 아닙니꺼.

 

막상 그렇게 말했지만 눈시울 붉어지는 박동호. 소매로 눈물을 훔친다.

석주일 눈에 영정사진 옆 권투대회 트로피가 보인다.

 

석주일 느그 아부지. 원하던 권투 원 없이 하다 갔으니 한풀이는 됐을 기다.

여기 계산 다 했으니까 아부지 마지막까지 잘 보내드리라.

 

석주일, 테이블에 두툼한 하얀 봉투 내려놓는다.

 

석주일 이걸로 학자금 해라. 남은 걸로는 영어도 배우고, 데이트도 쫌 하고.

(나가려는데)

박동호 지도 같이 갈랍니다.

석주일 (걸음 멈추는) 내랑 간다꼬? (잠시, 쳐다보다가) 내랑 같이 가면...

세상 단맛 쓴맛 짠맛 똥맛까지 다 볼 낀데....

박동호 쓴맛 똥맛은 이미 압니더. 아등바등 밑바닥 치며 사는 것도

지겹습니더. 지도 이제 단맛이 뭔지는 알아야겠십니더.

석사장 (쓰리게 웃는)

박동호 아버지가 지한테 물려준 기 딱 두 개 있습니더....

하나는 사채빚 5천. 그리고 주먹입니더. 받아 주이소.

석주일 니 주먹 세나?

박동호 (고개 크게 끄덕인다)  

석주일 (냉랭한) 니 잘못 알고 있다. 진짜 센 주먹은 그게 아이다.

 

동호 버려두고 나가는 석주일과 건달들. 남겨진 동호, 혼란스럽다.

 

37. (과거) 장례식장 외부 / 오후

 

장대비가 퍼붓고 있다.

석주일 차량이 빗물을 튀기며 출발하자 두 손을 펼치고 막아서는 박동호.

 

박동호 지는 왜 안 됩니꺼? 아부지가 그랬심더. 주먹으로 세상을 때리 눕히지

못하면 그 주먹으로 눈물을 닦게 된다꼬!!! 망할 놈의 세상!

아부지하고 내 깔봤던 인간들 다 때리눕힐 깁니더!

 

박동호의 눈에서 눈물이 빗물과 함께 흘러내린다.

 

석주일 니 동호라켔지? 동호야. 니 주먹으론 어림도 없다. 세상이고 사람이고

맨바닥에 때리 눕히는 센 주먹은 말이다. 법을 주물럭거리는 주먹이다.

박동호 법말입니꺼?

석주일 내 겪어 봤더니 그만한 주먹이 읎다. 내 같은 건달들은 법 주물럭

거리는 넘들한텐 죽었다 깨나도 절대 못 이긴다. 생각 있나?

있으면 타고?

박동호 (전혀 생각지 못한 제안에 갈등하는) 지보고 법을 배우란 말입니꺼?

석주일 비 들어온다. 빨리 결정해라.

박동호 (갈등하는)

석주일 그쟈? 니 머리로는 무리지?

 

박동호 남겨두고 출발하는 차량. 수많은 생각이 스치는 박동호의 얼굴에서-

 

38. 유치장 앞 / 오후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담배꽁초들.

박동호, 마저 한 대 더 피우려 꺼내려는데 덜컹- 철문 열리는 소리.

석주일 나오자 둘이 얼싸안는다.

 

석주일 동호야 애썼다. (동호의 엉망진창인 얼굴을 봤다) 얼굴이 와 이렇노?

박동호 (쓰리게 웃으며) 이게 다 형님한테 배운 스킬아입니꺼?

법전만 파는 샌님들은 흉내도 못 내지요.

 

박동호가 어떻게 자신을 꺼냈는지 짐작이 가자 더욱 꼭 끌어안는다.

 

석주일 고맙데이. 참말로 고맙데이.

차량이 주차된 곳까지 걸어가며 대화하는 둘.

 

석주일 역시 내 감이 보통 감이 아이다. 주먹질 하겠다는 니 설득해서

변호사 맨든 게 오늘처럼 뿌듯한 적이 읎데이~

 

석주일 차 앞에 도착하자-

 

박동호 오늘 좀 일이 있어서 여기까지만 배웅하겠십니더.

석주일 (가만히 생각하더니) 아 오늘이 아부지 기일이지?

박동호 네.

석주일 니 변호사 되서 잘 나가고 있는 거 아부지도 하늘에서 대견해하고

있을 기다. 내 안부도 전해라.

 

39. 진우의 집 / 오후

 

진우, 옷장 문을 연다. 서재혁이 다려놓은 양복 두 벌이 걸려있다.

콧노래 부르며 양복을 정성스레 다짐질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진우의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진다! 양복을 바라보는 진우의 눈동자가 슬픔으로 떨린다.

그 위로 서재혁의 목소리-

 

(서재혁) 얘들아. 놀이공원까지 20분 남았다.

 

40. (과거) 차 안 / 오후

 

낡은 경차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로를 달리고 있다.

운전대는 서재혁이. 조수석엔 진우 모가, 뒷자리엔 진우 형 연우(8)와 진우(6)가 앉아있다.

진우 모의 목에는 법원 앞에서 떨어졌던 진우의 목걸이가 걸려 있다!

 

진우 아빠. 20분 아니야. 횡단보도에서 16번 멈췄던 날은 25분 걸렸어.

진우 모 (웃으며) 신호등 말고 기억나는 거 또 있어?

진우 기억나는 게 너무 많은데... 다 말해도 돼? 커피가게가 23개, 빵가게는

12개, 모자 쓴 사람이 29명이었고... 가방 맨 사람이 12명... (하는데)

연우 뻥이지? 그걸 다 어떻게 외워?

진우 외우는 게 아니라니까. 사진으로 찍는 거야. 그 다음에는... 머릿속에

방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 하나 골라서 사진을 집어넣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거라고.

 

창밖 풍경을 보는 진우. 도로 가득한 자동차 번호판의 숫자들,

빌딩 간판의 수많은 글자들이 공중에 떠올라 진우의 머릿속에 빨려 들어간다.

방처럼 나눠진 구역에 기억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비주얼. (씬 23의 기억의 방)

 

진우 모 좋은 기억이 많으면 부자야.

진우 좋은 기억? 그럼... 엄마는?

진우 모 당연히 엄마도 부자지. 엄마는 아빠랑 결혼하고, 진우랑 연우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좋은 기억이 얼마나 많은데.

진우, 연우 와, 우리 가족 부자다. 부자야.

 

사거리 신호 받고 멈추는 차량.

 

진우 모 멋 훗날 어른 됐을 때 진우가 가진 능력으로 사람들 행복하게 해주고 힘든 일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도와주라고.. 하나님이 주신 거 아닐까?

 

신호등 바뀌어 출발하는 서재혁.

그 순간, 반대편 차선에서 트럭이 신호를 어기고 달려든다. 쾅!!!

귀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차량 측면을 들이박는다.

 

41. (과거) 도로 / 오후

 

당장이라도 터질 듯 검은 연기 뿜으며 도로에 멈춰서 있는 진우 가족의 차.

 

42. (과거) 차 안 / 오후

 

정신을 차리는 진우. 엄마와 형의 몸이 트럭 차체에 끼어있다. 둘은 이미 죽었다.

운전석의 서재혁도 의식을 잃었다.

 

진우 (서재혁 흔들며) 아빠 정신 차려.

(형 흔들며) 형아! 일어나. 빨리 일어나. 엉엉.

(엄마 흔들며) 엄마, 눈 뜨라고 제발. 안 돼.

 

힘겹게 눈을 뜨는 서재혁의 눈에 절규하는 진우.

죽은 진우 모의 손에 걸려있는 반지.

 

43. (현재) 납골당 / 오후

 

진우의 목걸이 체인이 진우 모의 반지다.

검은 양복 차림의 진우가 납골함 앞에 서 있다. 환하게 웃는 사진 속 어머니와 형.

 

진우 엄마. 형. 미안해. 아빠랑 같이 못 왔어.

 

들고 있던 국화꽃을 내려놓는 진우. 진우의 손에는 엄마의 유품, 목걸이가 쥐어져 있다.

 

진우 (목걸이 움켜잡으며, 눈시울 붉어져서) 그치만.. 걱정 하지 마.

내가 어떡해서든... 아빠 구할 거니까. 그러려면...

변호사가 필요해. 누명 풀어줄 변호사.

 

그때, 납골함에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울린다.

소리의 정체는 박동호다! 진우가 서 있는 납골함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박동호.

그 위로-

 

진우 재판 무조건 이겨줄 변호사.

 

박동호, 진우 바로 옆 칸에 멈춰 선다. 얻어터진 흔적으로 엉망진창인 얼굴.

그런 박동호를 쳐다보는 진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두 사람 눈이 마주쳤다.

 

박동호 니도 혼자 왔나 부네.

진우 아저씨도 오늘이 기일이죠?

박동호 그래. 느그 가족도 오늘이가?

진우 아저씨.. 변호사죠?

박동호 (뿌듯한 표정으로) 내 얼굴이 벌써 그렇게 팔렸드나?

진우 아저씨가 변호사 처음 된 날... 여기 왔었죠?

박동호 (멈칫)  !!!

진우 그때 아저씨... 오늘처럼 검은색 정장에... 파란색 넥타이, 구두는

지금보다 더 촌스러운 하얀색. 술에 취해있었고... 변호사 자격증 나온

날이라고 기뻐했어요. 그런데...

박동호 ?

 

진우, 두 눈을 감고 기억을 떠올린다.

 

44. (기억) 납골당 / 오후

 

납골함 속 사진엔 진우 모와 형이 환하게 웃고 있다.

진우(16),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 보려고 숨을 훅훅 내쉰다. 진우를 감싸주는 서재혁.

그 옆 코너에 들어서는 촌스러운 양복의 남자. 박동호(34)다.

아버지 납골함 앞에서 변호사 자격증 들고 서 있는 박동호. 그 모습을 보는 진우.

 

박동호 아버지. 내 변호사 됐습니더. 여기 이름 박혀있는 거 보입니꺼?

변호사 박동호라꼬!

 

유리함 사진 속 박동호 부가 웃고 있다.

 

박동호 이제 아부지처럼 살 일은 없을 깁니더. 아부지가 평생 번 돈을 내는...

하루 만에도 벌 수 있을 깁니더. 두고 보이소. 내는 돈을 벌낍니더.

 

박동호, 기분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갑자기 얼굴에 서글픔이 밀려온다.

 

박동호 (눈물 차오르며) 근데.. 그게 와이리 슬픈지 모르겠네예.

 

그 위로 진우의 목소리가 흐른다.

 

(진우) 울고 있었어요. 아주 서럽게.

 

45. 납골당 / 오후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박동호 그래. 내가 그랬던 것 같다. 느그 기억력 쓸 만하네.

우리의 우연도 재밌고. (하는데)

진우 아빠가 누명을 썼어요.

박동호 누명?

진우 변호사는 있는데 실력이 없어요.

박동호 변호사는 실력 없으면 바로바로 갈아야한다. 재판이라는 기 인생 걸린

도박 아이가?

진우 아저씬 아무리 범죄자라도 불법 편법 합법 모두 동원해서 풀어주는 변 호사라는 거 알아요.

박동호 (살짝 빈정 상하는 얼굴)  !!

진우 그런 능력이면 우리 아빠처럼 누명 쓴 사람은 더 쉽겠죠?

박동호 근데 우짜노? 내는 죄 있는 의뢰인이 더 좋다. 죄가 있어야 수임료를 따따쁠로 받는다 아이가? 알았나? 집에 돈은 좀 있나?

진우 (대답 못하는)

박동호 그래. 느그 아부지 뭔 누명 썼는데?

진우 아까 법정에서 아저씨가 구해준 사람이 우리 아빠에요.

 

그 말에 놀라는 표정 되는 박동호. 이내, 실망하는 표정으로 변한다.

 

박동호 우연치곤 재밌네. 그래. 잘 들었다. (가는)

진우 (가려는 박동호 붙잡고) 어디 가세요? 우리 아빠 변호해주세요.

박동호 느그 집 돈 없제? 그래서 국선 썼제? 뭐 내하고는 볼 일 없겠네.

쌩 하니 가버리는 박동호.

 

46. 납골당 밖 / 저녁

 

박동호가 탄 차가 출발한다. 진우가 앞을 막아서자, 급브레이크 밟는 박동호.

두 팔 벌려 박동호의 차를 막아서는 진우.

 

진우 (절박하게) 우리 아빤 죄 없어요. 감옥 가게 둘 수 없어요.

박동호 (건조하게, 감정 없는 눈빛) 원래 죄 없는 사람도 감옥 간다.

진우 아저씨가 해주세요.

박동호 딴 변호사 찾아라. 다치기 싫으면 나와라.

진우 부탁드려요.

 

그때, 절박하게 차를 막아서고 있는 진우의 모습에서

석주일 차를 막아섰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41씬 상황) 하지만-

 

박동호 내는 다 필요 없고... 돈이다. 알았나?

진우 (절망적인 표정)

박동호 아부지한테 가서 전해라. 쓸 만한 변호사 살 돈 없으면 죄 짓고

살지 말라꼬. (차를 출발시킨다.)

 

혼자 남겨진 진우의 모습에서-

 

47. 진우의 집 / 밤

 

힘없이 집에 들어서는 진우. 그때- 갑자기 와장창 거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거실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있다.

진우, 밖으로 뛰어나간다.

 

48. 진우의 집-대문 앞 / 밤

 

진우가 뛰어나오면- 속도를 내서 사라지는 오토바이가 보인다.

대문과 벽에 써있는 빨간 글씨들. ‘살인마 죽어버려.’ 사형 당해도 싸다.‘ 등등의 욕설들.

진우, 착잡한 얼굴로 바라본다. 이때, 진우 곁으로 점점 몰려드는 동네 사람들.

진우를 위협적으로 에워싼 마을 사람들. 삼삼오오 수군대기 시작한다.

 

주민 1 진짜 낯짝도 두껍네. 그런 짓을 저지르고...

주민 2 벌써 옆 동네에도 소문 쫙 났잖아요. 이쪽으론 다니지도 말자고..

 

진우, 한 마디 말도 없이 고개 숙인 채 서 있다.

 

주민 3 진짜 사람 속은 한 치도 할 수 없는 거야...

겉으론 그렇~게 사람 좋은 척 다 하더니...

진우 (울분 터지며) 당신들이 뭘 알아!! 우리 아버지는 아니라구요!!!

 

 

49. 골목 / 밤

 

어둠이 길게 드리워진 골목. 피자배달 스쿠터를 운전하던 인아.

 

인아 (헤드셋에 대고) 네네. 금방 갑니다. 거의 다 왔어요.

 

멀리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인아, 뭐지 싶어 스쿠터를 튼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진우의 모습을 보게 되는 인아!!

 

인아 안 돼!!

 

그대로 인아의 스쿠터가 진우를 향해 질주한다.

 

50. 진우의 집-대문 앞 / 밤

 

진우 앞으로 돌진해 멈춰서는 스쿠터. 사람들 스쿠터를 피하느라 진우에게서 떨어진다.

 

인아 이게 무슨 짓들이에요? 얘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요?

(손가락으로 콕콕 집으며) 당신 당신 당신.. 내가 얼굴 다 기억했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위협하듯 핸드폰 꺼내 번호 누르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동네사람들.

인아와 진우만 남았다. 쓰고 있던 헬멧 벗어 던지고 진우를 부축해 일으키는 인아.

진우, 인아의 손 빼내고 대문 안의 어둠으로 비틀비틀 걸어 들어간다.

 

인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를 쫓으며) ...진우아!

 

잠시 간의 침묵이 흐르고-

집안에서 진우가 절규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마음 쓰이는 인아.

 

51. 진우의 집+인아의 집 교차 / 밤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진우. 목걸이를 쥐고 있다.

절망이 바닥까지 내려간 슬픈 얼굴. 진우의 눈에 아버지가 다려놓은 양복이 보인다.

 

인아는 스탠드 불빛 아래서 책을 보고 있지만 집중이 되지 않는 얼굴이다.

책을 덮고 유리창 너머 밤하늘을 쳐다본다.

 

다른 곳에서 슬픔에 빠져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52. 진우의 동네 외경 / 새벽

 

동이 터오는 새벽하늘.

 

53. 진우의 집 - 거실 / 오전

 

성인남자 스타일의 슈트. 등에는 백팩을 멘 진우가 대문을 나선다.

뭔가 이전과 다르게 부쩍 어른스러운 느낌이다.

대문 앞에 피자 한 상자가 놓여있다.

 

진우 (누가 놓고 갔는지 알 것 같은)

 

54. 사거리 / 오전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 진우. 택시를 잡아서 타려는데, 누군가 막아선다. 인아다.

 

인아 진우야. (잡는다)

진우 이거 놔요. 왜 자꾸 쫓아다니는데?

인아 너 못가. (꼭 잡는다)

진우 이거 놓으라니까.

인아 (택시 기사에게) 아저씨 먼저 가세요. (택시 떠나자) 어디 가는 거야?

진우 왜 이래요!

 

인아, 급히 진우의 백팩을 낚아챈다. 지퍼를 쫙 열자 텅텅 비었다!

 

인아 가방이 텅 비었네. 여기에 뭐 채우려고? 응? 옷도 갑자기 왜

이런 거 입었어?

진우 (표정 굳는)

인아 그거 하지 마. 무슨 짓 하려는 건지 모르지만....그거 나쁜 짓이잖아.

하지 마.

진우 당신이 뭔 상관인데?

인아 너 지금 정신 나갔어. 판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야. 그러다 잘못

되기라도 하면 아버지 재판에 나쁜 영향 끼친다는 거 몰라?

너.. 분명히 후회해.

진우 (표정 굳어져서) 후회? 누난 가장 소중한 사람, 손 쓸 기회 없이

잃어봤어? 그런 아픔 겪은 적 있냐고?

인아 ....

진우 엄마랑 우리 형 죽는 모습이 방금 전 일어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해.

절대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아무도 몰라...

인아 (흔들리는 눈빛. 백팩을 잡고 있던 인아의 손에 힘이 풀린다)..

진우 아빠만 구할 수 있다면 어떤 짓도 다 할 수 있어.

(강하게 백팩을 뺏는)

 

진우 앞에 끼이익- 서는 택시. 택시 타고 가버리는 진우.

 

인아 (택시 뒷모습 보며 자책하듯) 인아야. 정말 그 분이 범인일 수도 있어.

쟤랑 자꾸 엮이면 안 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잠시 후 스쿠터에 시동 걸고 택시를 뒤쫓기 시작하는 인아.

 

55. 박동호 변호사 사무실 / 오후

 

사무실에 들어서는 진우, 변호사 사무실인지 건달 사무실인지 구별을 할 수 없다.

 

편 사무장 아그야. 니 무슨 일로 왔냐?

 

창가에 서 있던 박동호, 진우 발견했다.

 

박동호 니... 또 왔나?

진우 우리 아빠 변호해주세요.

박동호 또 그 소리네. 귓구녕에 못 박았나? 돈 가져오라니까.

진우 얼마면 변호해줄 건데요?

박동호 (피식) 얼마? 니 지갑에 있는 거 다 내놔봐.

 

진우, 지갑 꺼내서 탈탈 턴다. 만 원짜리 두 장과 천 원짜리 몇 장이 전부다.

 

박동호 그 봐라. 그봐. 그거 밖에 없잖아. 니 자꾸 무죄니 결백이니 해쌌는데

내한테 오는 의뢰인들은 말이다 자기가 결백하다는 걸 니처럼 말로

싹 때우는 게 아니라 지갑을 열어서 증명한다. 알았나? 사무장.

이 놈 내보내.

 

편 사무장이 진우를 잡아챈다.

진우, 편 사무장 손을 뿌리치더니 바닥에 내려놓았던 백팩을 집어 든다.

뭐하나 싶은 표정으로 보는 박동호. 그때- 백팩 지퍼를 확 여는 진우.

백팩 안에 한가득 담긴 만원, 5만원권 지폐 다발을 바닥에 후드득 쏟아버린다.

1억 상당의 돈이 바닥에 쏴 흩어지는데-

 

진우 (감정 터지며) 이 돈이면 증명 됐어요? 우리 아빠 결백?

 

진우를 끌어내려던 편 사무장, 하던 행동을 멈추고-

 

진우 이젠 변호해줄 수 있죠?

박동호 (이거 봐라?)

 

그런 박동호를 팽팽하게, 간절하게 노려보는 진우의 얼굴.

 

박동호 이 돈 어떻게 구했노?

진우 제가 벌었어요.

박동호 (의혹에 찬 눈으로) 니 같은 고삐리가 이 돈을 벌었다꼬?

이거 버는데 얼마나 걸렸노?

진우 반나절.

박동호 아놔!! 반나절? 미치겄다. 지금 그 말을 내보고 믿으라꼬?

 

그러자 진우,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진우 한번 본 건 뭐든 다 기억해요.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까짓 돈 버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박동호 니 기억력 좋은 건 어제 충분히 감상했다. 그걸로 어떻게 돈을 버는데?

진우 카드 나오는 순서를 외울 수 있어요.

박동호 카드 순서? 도박으로 이 돈을 땄다는 기가?

 

그 말에 솔깃한 표정되는 박동호. 그 위로-

 

56. 사설 도박장 외경 / 오후

 

간판도 떨어져나간 낡고 허름한 건물. 택시가 정차하고, 백팩 멘 진우가 내린다.

 

57. 사설 도박장 내부 / 오후

 

실내 가득 찬 담배연기. 테이블마다 상품권 다발이 가득 놓인 이곳은 사설 도박장이다.

포커부터 시작해, 고스톱, 마작, 블랙잭, 원카드 등등 각양각색의 판이 펼쳐져있다.

블랙잭 코너에 자리를 잡은 진우.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카드를 받아든다. 바로 그때-

뒤편 어딘가에서 와장창 판을 뒤집는 소리가 들린다.

 

노름꾼 왜 내 패만 다 나가리야? 이거 사기지? 내가 지금 여기 꼴아 박은 돈이

얼만지 알아!!! 사천이야 사천. 내 돈 내놔!!

 

잔뜩 흥분해서 맥주병 던지며 난동부리는 노름꾼.

그러자, 건달들이 일제히 튀어 나와 노름꾼을 일거에 제압한다.

바닥에 시체처럼 쓰러진 노름꾼을 질질 끌고 나가는 건달들.

진우, 그 모습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딜러 (자주 있는 일인 듯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자 카드 돌리겠습니다.

 

딜러가 테이블에 카드를 올려놓으면서 시작되는 블랙잭.

 

58. 몽타주 / 오후

 

-테이블에 빠르게 뿌려지고 회수되는 카드들.

-이미 나온 카드와 다음에 나올 카드가 진우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입력된다.

-뒤집혀진 카드가 진우의 눈에는 어떤 모양, 어떤 숫자인지 훤히 보인다.

-포커페이스 유지하면서 베팅 금액을 점점 올리는 진우.

-점프컷으로 계속해서 이기는 모습의 진우.

-시간이 지날수록, 진우 옆에 수북하게 쌓이는 돈다발들.

-진우가 판을 완전히 휘어잡는다. 같은 테이블의 사람들, 딜러까지 점점 놀라는 모습들.

 

59. 사설 도박장 입구 / 오후

 

건물 앞에 인아의 피자배달 스쿠터가 멈춘다.

 

인아 (헬멧 딱 벗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아우씨. 벌써 2시간 돌고 있네.

얘는 대체 어디서 내린 거야?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는데, 남자 서넛이 폐업 표지판 달린 철문을 두드린다.

문이 열리자 남자들이 슬그머니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인아, 진우가 저기에 있을 것 같다!

한참 주저하던 인아. 잠시 후, 도박장으로 향한다.

 

60. 사설 도박장 CCTV실 / 오후

 

모니터로 도박장 내부를 감시하고 있던 조폭들.

 

도박장조폭 1 저 새끼 수상한데요?

도박장두목 뭐가?

 

진우가 돈 따는 장면을 앞뒤로 돌려가며 반복해서 체크하는 도박장 조폭.

 

도박장조폭 1 지금까지 딴 돈이 1억이 넘어요. 아무래도 카드 세는 거 같습니다.

도박장두목 카드를 센다고? 그게 가능해?

 

61. 사설 도박장 입구 / 오후

 

쾅쾅- 철문 두드리는 소리에 건달들이 문을 열고 나온다.

앞에 인아가 쭈뼛거리며 서 있다.

 

건달 1 뭐야?

인아 (피자 박스 들이밀며, 떨리지만 꾹 참고) 피.. 피자 배달 왔어요.

건달 1 여기서 시킨 거 확실해?

인아 그럼요. 주소 두 번이나 불러줬어요. 식기 전에 빨리 갖다 달라고.

 

인아를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보는 건달. 긴장감에 침 꿀꺽 삼키는 인아의 모습에서-

 

62. 사설 도박장 내부 / 오후

 

테이블 위에 가득한 현금다발을 백팩에 쓸어담는 진우. 급히 자리를 뜨려는데,

 

도박장조폭 1 어이! 그 돈 가지고 일루 와. (칼 빼들고 다가오며)

너 카드 셌잖아. 아냐?

진우 (대답 못하는)

도박장조폭 1 니가 운이 억수로 좋은 건지, 그 전설로만 전해지는 카드 세는

타짜인지 얘기 좀 해보자니까.

 

진우, 뒤를 힐끔 돌아보는데 퇴로를 건달이 막고 있다. 꼼짝없이 붙잡힐 위기에 빠진 진우.

이때, 피자 박스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인아, 진우와 눈이 마주친다!

 

인아 어.. 어떡하지. (하다가)

 

피자 박스 들고 달려드는 인아. 진우를 압박해 들어가는 조폭들.

난데없이 끼어든 인아 모습에 당황한다. 당황한 건 인아도 마찬가지.

진우, 그 틈을 이용해 인아의 손목을 잡아채더니 상층부 계단으로 도망친다.

 

도박장조폭 1 저 새끼 잡아!!!

 

63. 사설 도박장 계단 / 오후

 

위로 이어진 계단을 타고 달리는 진우와 인아.

조폭들도 몇 층 아래에서 추격해 올라오고 있다.

 

진우 여긴 왜 왔어요? 위험하잖아.

인아 그걸 알면서 넌 왜 왔는데?

 

둘이 정신없이 계단을 올라가는-

 

64. 사설 도박장 옥상 / 오후

 

옥상 철문 열고 나오는 진우와 인아. 문을 잠그려고 하는데 망가졌다.

문을 막을 만한 도구도 옥상에 없다. 결국 옥상 난간에 올라서는 진우와 인아.

 

인아 (울먹이는) 어떡해! 여기 너무 높아.

 

잠시 후, 옥상에 올라온 조폭들.

 

도박장조폭 1 뛰어내리면 평생 휠체어 탄다. 그니까 어여와.

 

진우, 뛰어내릴 생각으로 다시 내려다보는데.. 너무 높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난간에서 내려오려는데, 그때-

지상에 대형 트럭이 다가오고 있다. 기호를 포착한 진우.

 

진우 (인아의 손을 꼭 잡는다.)

인아 (순간, 가슴이 살짝 떨리는)

진우 누나. 나 믿어요?

인아 이 판국에 내가 널 믿지 누굴 믿어? 근데... (아래쪽 내려다보자)

믿고 싶지 않아. 으아아~ 뭘 어쩌려고? 나 무서워.

진우 누나, 나 믿어야 돼. 그래야 살아.

 

진우, 머릿속에 복잡한 수학공식이 떠오르고-

진우가 서 있는 난간과 다가오는 트럭 사이에 거대한 사선이 그어진다.

트럭의 속도와 건물의 높이를 계산해 뛰어내릴 시간이 나온다.

순간 인아의 손을 잡고 뛰어내리는 진우. 트럭 짐칸에 아슬아슬하게 착지하는 진우와 인아.

 

65. 박동호 변호사 사무실 / 오후

 

다시, 박동호 변호사 사무실이다. 만원, 5만원 다발 가득한 백팩을 바라보던 박동호.

 

박동호 이 돈 모두 다해서 얼마나 되드나?

진우 1억이에요.

박동호 내 쓰려면 1억에 천만원 더 있어야 된다. 필요 없다. 나가라.

진우 (물러서지 않는) 그럼 기다려요. 천만원 더 구해올게요.

박동호 니가 1억천 구해 온다꼬? 그럼 내가 필요한 건 1억 2천이다.

진우 (표정 굳는)

박동호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긌나? 게임 끝났다. 나가라.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치는 진우. 마치 한 대 얻어맞은 얼굴이다.

 

시간경과>

 

창밖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박동호. 백팩을 멘 진우가 힘없이 걸어 나가고 있다.

 

편 사무장 (다가와서) 형님. 와 거절하신 깁니꺼? 섭섭지 않은 금액인데예.

박동호 떨어지는 칼날은 잡는 게 아이지. (잠시) 알아보라는 건 어떻게 됐노?

편 사무장 남규만 별장파티 건 말이지요? 내일 중으로 뭐든 하나 나올 깁니더.

 

66. 형사합의부 법정 / 오후

 

속속 법정에 들어오는 방청객들.

까칠한 수염, 메말라 부르튼 입술의 서재혁의 피고인석에 착석한다.

변호인석은 첫날처럼 송 국선이 들어와 앉는다.

배심원 석에는 여경이, 방청석에는 진우와 인아가 앞뒤로 앉아 있다.

 

67. 호텔 커피숍 / 오후

 

고객과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박동호. 한없이 여유로워 보인다.

이때 편 사무장이 들어와 박동호 귀에 뭐라 속삭인다. 박동호의 얼굴이 오묘하게 바뀐다.

 

68. 형사합의부 법정 / 오후

 

착잡한 표정으로 변호인석을 보고 있는 진우.

인아, 배심원석의 여경과 눈이 마주친다. 차갑게 웃음 짓는 여경.

 

판사 어제 진행하려던 검사측 증인 심문 시작하겠습니다. (문서 뒤적이더니)

헌데... 변호인측 증인 신청이 한 명도 없네요. 서류가 누락된 겁니까?

송 국선 (여전히 말 더듬는) 혀혀혀..현재.. 로선... 증인이 없습..니...다.

판사 흐음.. 한 명도 없다...

 

못 마땅한 표정의 판사. 그때- 재판정 정문 벌컥 열리면서 등장하는 남자.

박동호다. 방청석의 진우, 박동호와 눈빛 마주친다.

 

박동호 (앞으로 걸어 들어가며 진우 향해) 내 왔다. 많이 기다렸제?

진우 (금세 밝아지는 얼굴) ...

박동호 서재혁 피고인의 변호인입니더. 오늘부터.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