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5, 2025

"Always" (오직 그대만) Movie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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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ways" (오직 그대만) Movie Script

오직 그대만  

제작 / HB 엔터테인먼트

각본 / 송일곤, 노홍진

각색 / 유영아 , 안지선

감독 / 송일곤


Ver.11.최종고

프롤로그 / 동강 

햇빛이 부서지는 동강이 보이고 한 남자가 뒷모습으로 걸어 들어온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슬픈 듯. 처연한 듯. 오랜 시간을 버텨온 사연이 많은 그의 눈빛에서 강물로 이어지면. 



1. 타이틀 백/ 철민의 몽따주, 오후-> 해질녘 


*배달되는 생수통의 물들. 

생수차가 멈추고 그 위에서 던져지는 생수통을 받아 카트를 밀며 빌딩으로 들어가는 철민(30), 계단을 오른다. 

사무실의 생수통을 교체 한 후 다시 빈 통을 들고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철민. 

생수 배달 일을 하는 철민의 모습이 빠르게 보이고 트럭 주인에게 돈을 받고 

꾸벅 인사를 하는 철민. 


* 해질 무렵, 한남대교를 달리기 시작하는 철민. 

네온이 켜지기 시작하는 강남역 뒷골목을 뛰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강남역 뒷골목의 한 빌딩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철민. 

주차 박스 앞에 멈춰 숨을 몰아쉬면. 교대 노인이 철민을 본다.


노인 또 뛰어왔어? 

철민 (헉헉대면)

노인 (밖에 보면) 비 오는데?

철민 네.

노인 (신문을 보며) '좋은 시간은 신께서도 질투한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철민 ...?

노인 (스포츠 신문을 펼치며) 오늘에 운세. 양띠라 그러지 않았어?

철민 이제 그만 두신다면서요? 

노인 (방귀를 뿌웅 크게 뀌며) 쉬엄쉬엄 해. 정산만 빵꾸 내지 말고. 

철민 (고개 숙여) 네. 들어가세요. 



2. 주차 박스 / 밤


철커덕. 주차박스 앞의 차단기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미 밤이다. 

좁은 주차 박스 안에서 철민은 작은 포터블 TV로 격투기 중계를 보고 있다. 

TV에 등장하는 최관장(53)이 링 코너에 앉은 태식(30)에게 무어라 

주문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최관장 티셔츠 등에 [화랑체육관] 적혀있다.

최관장의 모습에 상기된 표정이 되는 철민.  

이때, 주차박스의 문이 열리고 정화(28)가 불쑥 들어오며,


정화 (다급히) 생일 축하합니다..


철민, 갑자기 등장한 낯선 정화를 의아한 듯 바라보면

가방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꺼내 내려놓으며 재잘거리기 시작하는 정화. 


정화 (물건을 더듬거리며 확인하며) 이거는 양갱. 


멈칫하다가 엉겁결에 양갱을 받는 철민.


정화 생일 축하합니다. 이건 귤(내밀며)

(초코우유를 꺼내며) 사랑하는 영감님...  생일축합니다. 


철민이 서둘러 손을 내밀면,


정화 (자기 앞에 놓으며) 이건 내꺼!

(도시락을 꺼내 뚜껑을 열며) 요건, 제일 좋아하시는 못난이김밥!

(철민 쪽을 보며 속삭이듯) 반주하시라고 팩소주도 가지고 왔어요.


엉겁결에 김밥과 팩소주도 받아드는 철민. 잠시 후 정화가 시각 장애인임을 알아차린다. 


정화 시청료가 엄청 푸짐해서 감동 받으셨구나! 


정화 역시 철민의 침묵에 이상함을 느끼고 철민 쪽을 바라보면,


철민 (무뚝뚝하게) 누구세요? 

정화 엄마야! 누구세요!!! 할아버지는요?

철민 오늘 그만 두셨는데...

정화 네?! (할 말을 찾다가) 근데 귤은 왜 받으셨어요?

철민 (괜히 미안하다) 주니까..


빤히 철민을 보는 정화, 시각장애인임을 확인하는 듯 시선을 맞춰보는 철민. 


정화 제가 할아버지랑 드라마도 보고, 간식도 먹고 그랬거든요. 


정화, 어렵게 귤과 양갱 등을 가방에 도로 집어넣으며


정화 할아버지...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철민 (도시락을 집어주며) 갑자기 이사하시게 됐다고... 

정화 (민망해하며) 아 네.. 그랬구나... (아쉬운 표정이지만) 실례했습니다.

철민 (어중간한 목례) 아 예...


정화 가방을 맨 채 주차장 안에서 쏟아지는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그 모습을 주차박스에서 바라보던 철민, 정화에게 다가와


철민 저기요... 보고 싶은 거 보고 가요. 


가방에 넣었던 주전부리들이 다시 나와 있다.

철민이 채널을 돌리면. [달콤한 나의 도시] 드라마가 시작한다. 


정화 여기다! 


TV앞에 의자를 당겨 앉는 정화. 그 바람에 철민과 가까워졌다. 좁은 공간이 불편한 철민, 구석으로 밀려난다. 다리 둘 곳도 찾지 못하는 철민,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쓰며 정화를 바라보면, 정화의 얼굴은 완전 몰입모드로 포터블 TV를 향하고 있다. 


<시간경과>

지현우 : "누나! 우주의 나이가 몇살이게요? 140억살.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우린 동갑이나 마찬가지에요..." 


정화, 드라마 속 주인공의 상황에 따라 울상이 되었다, 웃음 지었다하는 정화. 

그런 천진난만한 정화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쳐다보는 철민. 

구르릉 멀리서 천둥이 치더니 빗방울이 후두둑 주차창 밖 거리로 떨어진다. 

정화가 천둥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철민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그녀의 시선에서 슬며시 비껴나며 정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철민. 

예쁘고 슬픈 표정의 여자다. 조금관심이 간다. 

드라마가 끝난다. 가방을 챙겨 일어서는 정화. 


정화 (일어서 나가며) 저... 감사합니다. 잘 봤어요.

철민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정화 (도시락을 내밀며 밝게) 못생겨도 맛은 좋은데. 드실래요?

(받아 가지 않자) 너무 못생겼죠? 

철민이 정화가 무안해 하자 엉겁결에 도시락을 받는다. 정화, 활짝 웃고 문을 나서다 


정화 아 맞다! 저 야래향... 이틀에 한번 씩 꼭 물 주세요! 죽이면 안 돼요!

 

보면, 책상 구석에 작은 야래향 화분이 있다. 탁.탁.탁 시각장애인 케인을 짚으며 

빌딩 주차장을 나와 노란 우비를 가방에서 꺼내어 입는 정화. 

비가 내리는 거리로 나서는 그녀. 손에 도시락을 든 채 정화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철민. 

강남역 뒷골목, 도시의 불빛 속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정화의 뒷모습이 아련한 빗속으로 보인다. 

그 풍경 위로 낭만적인 목소리의 여가수의 노래가 흐르면 불빛들에서 

점자모양으로 타이틀 보이다가 글씨로 변한다. 


   오직 그대만



3. 거리, 이른 새벽.


주차장을 닫고 기지개를 펴며 나오는 철민. 도시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한다. 

공중전화박스를 달려서 지나친 철민이 다시 공중전화 박스로 돌아와 헉헉대며 숨을 고른다.

비를 턴 후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는 철민.

 

상담원         네.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철민           네. 저기요. 화랑 체육관 좀 부탁합니다. 서울에 있는...

상담원         화랑 체육관 말씀이십니까? 서울 어느 지역인지 아십니까? 

철민           잘 모르겠는데요... 권투 도장인데... 



4. 철민의 집. 새벽, 동틀 무렵 


욕실에서 머리를 닦으며 나오는 철민. 창밖의 도시를 바라본다. 

정화가 준 못난이 김밥을 오물거리며 먹으며 어항 속 거북이 마징가에게 밥을 주는 철민. 생각보다 맛있다는 듯 김밥을 본다. 

동이 터오고 있는 시각, 간이침대에 누워 새우잠을 청하는 철민의 얼굴. 



5. 정화의 집. 아침


화장실에서 거품세수를 하고, 방에 쪼그리고 앉아 화장을 하는 정화. 출근준비다. 

화장대 앞에 놓인 정화와 정화 부모의 사진. 사진속의 정화가족은 환하게 웃고 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익숙해진 듯 손의 감각으로 옷의 앞뒤를 확인하고 옷을 입고 나서면 

부엌에서 누군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정리를 하고 있다. 

정화의 자원봉사자 아주머니다. 


자봉아줌마 냉장고에 장조림이랑 오징어무침 넣어 놨구 

식탁에 우편물이랑 공연 초대권 올려놨어. 센터에 공짜표 왔더라구.

대학생들이 자봉 해준데, 시간 내서 가봐~ 

정화 네... 감사합니다.

자봉아줌마 (보다가)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나 못 봐...  

정화 (놀라며) 결정 났어요?

자봉아줌마 응~ 애들 아빠, 춘천 발령 났어.

정화 (웃으며) 잘됐다~ 승진하신 거잖아요. 

자봉아줌마 (정화를 보다가) 정화씨. 너무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다음 봉사자 오면 팍팍 부려 먹어... 우리들도 그게 더 기쁘니까~

정화 (애써 웃으며) 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화가 손을 내밀면 손을 잡아주는 자봉아줌마


자봉아줌마 (진심을 담아) 건강해야해.

정화 아주머니두요. (명랑하게) 


정화 문이 닫히자 돌아서며 혼잣말로 부모님에게 말하듯 속삭인다. 


정화 (작게) 다녀오겠습니다... 



6. 텔레마케팅 사무실, 오후


부스별로 수 십 명의 텔레마케팅 여직원들이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텔레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 모습 속에서 정화의 얼굴이 보인다.


여자직원1  안녕하십니까? 해피콜 고객 센터입니다. 

여자직원2  에어콘 모델명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자직원3 고객님 지역이 어디십니까? 가까운 A/S 센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메모 가능하십니까? 


옆에 놓인 점자노트북을 손가락으로 빠르게 읽으며 말하는 정화 


정화 기사님 방문하시게 되면 기본료 만 오천 원과 점검내용에 따라

            부품비가 발생될 수 있습니다. 

목소리 (언성을 높이며) 아니. 기사 방문하기로 한지가 몇 신데 

자꾸 돈 얘기만 하는 거야~!

정화 고객님 불편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접수가 누락된 것 같습니다.

긴급배정 확인해드리겠습니다.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오늘 5시 방문 괜찮으시겠습니까? 

목소리      시간 안 지키기만 해봐 아주! 몇 번을 전화하게 만들구 말이야! 뚜우

정화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혹시 다른 도움드릴 내용은... 고객님?


조심스럽게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는 정화. 옆 좌석의 시각장애인 친구, 김가빈. 


  김가빈 (전화를 끊고) 왜 나한테 승질을 내구 그래? 내가 지 애야?


그런 김가빈의 책상을 톡톡 치는 손 마팀장(37).


마팀장 애사심을 좀 갖읍시다. 애사심! 그래서 언제 100 콜 채웁니까?


오렌지 바탕화면의 김가빈, 혼자 입을 삐죽거리면 

파란색 모니터의 옆 테이블의 정화 뒤에서 점자노트북으로 찾는 것을 유심히 보는 마팀장. 사탕을 하나 정화 테이블에 놓으며

  

마팀장 저녁조라 힘들죠? (정화의 어깨를 느끼하게 안마하며)

정화 (상체를 틀어 마팀장의 손길에서 벗어나며 애써 밝게)

늦잠 자서 오히려 좋죠... 뭐. 

마팀장 (어깨를 쓰다듬으며) 좀 더 분발해요. 지금 우수사원 후본 거 알죠?


멀어지는 마팀장. 불쾌하지만 참는 정화의 얼굴. 



7. 주차박스 안, 저녁


드라마 <달콤한 나의도시>에 푹 빠져 있는 정화. 

여전히 주인공들의 대사에 표정이 시시각각 변한다. 

옆에 앉은 철민, 정화와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보면 유리에 비친 정화의 얼굴을 보고 있다. 

갑자기 킁킁 무언가 냄새를 맡는 정화.  


정화 창문 좀 열면 안 될까요?

철민 ?

정화 ... 제 코가 남들보단 좀 예민해서요. 

철민 (흠칫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면)

정화 (농담으로) 근데... 오늘 운동하셨나 봐요? 

철민, 뭐라 대꾸 없이 조용히 킁킁 냄새를 맡는다. 

철민, 조심스럽게 주차박스의 작은 쪽 창을 연다. 

다시 드라마에 집중하던 정화가 자기 쪽 창문을 더듬어 연다. 

냄새가 계속 나는지 킁킁거리며 확인하는 정화. 

철민, 계속 냄새가 나나보다 싶어 냄새의 발원지를 찾다가 그제야 

신발을 벗고 있다는 걸 깨닫고 벗어 놓았던 신발을 몰래 신는데, 


정화 근데 지금 무슨 옷 입고 있어요? 

철민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자기 티셔츠 슥 보고) 그냥.. 면티..

(옷에서도 땀 냄새 나나 살짝 맡아보는데) 

정화 (웃으면서) 아저씨 말구요. 은수요. 여자주인공.  

  철민 (민망하다 모니터 슥 보고) 치마..

정화 신발은요?

철민 (발의자 뒤로 숨기며) 신었는데...

정화 (웃으며) 당연히 신발은 신지.. 치마에 무슨 신발 신었냐구요.

철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 

정화 (좀 시무룩해진다)

철민 (뭐라도 말을 하면) 그냥.. 여자들 신는 구두. 

정화 (말이나 되냐는 듯한) 에? 혹시 샌들이에요?


그러게 안 한다니까... 머쓱한 철민. 그러나 또 질문 들어온다.


정화 머리는요?

철민 (죽겠는 얼굴.. 그런데도 대답은 하고 앉았다) 짧은 파마머리..

정화 귀걸이 했어요?

철민 (귀찮다) 네. 근데 원래 이렇게 드라마 보면서 말이 많아요? 

정화 (기죽지 않으며 귀엽게) 안보이니까 그렇죠~ ! 어떤 귀걸이 했어요?

철민 (이제 웃음난다) 훗.. (비슷하진 않지만) 그쪽.. 한 거랑 비슷해요.

정화 (비슷하다는 말에 기분 좋다) 정말요? 


상상하듯 다시 드라마에 집중하는 정화. 그런 정화의 옆모습을 보고 있는 철민.

<시간경과>

발을 씻고 슬리퍼 차림으로 주차박스로 오는 철민, 드라마가 끝나고 정화가 일어서려는데, 


철민 이거. 도시락 통. 

정화 (웃으며) 맛은요?

철민 (무뚝뚝하게) 못생겨도 맛은 좋네요.

정화 (환하게 웃다가 도시락 통에 뭔가 든 소리가 나자) 어, 이건 뭐지?

철민 살구에요. 누가 살구를 주길래 그냥...

정화 (말 자르며 대뜸) 씻었어요?  

철민 (슬리퍼 차림의 자기 발을 내려다보며) 아.. 원래는 잘 씻어요.

정화 곱게 다뤘어요?

철민 네??? (자기 발 한 번 보고 정화 한 번 보고) 네...

정화 (살구를 입으로 가져가며) 살구랑 복숭아는 조심히 씻어서 바로 먹어야 해요. 연한 아이들이라 자꾸 건들면 상처가 나고 맛이 없어지거든요! 

철민 (이제야 알아듣고) 아! 아... 연한 애들.. 


살구를 한 입 베어 물던 정화의 입가에 살구 즙이 흐른다. 손으로 닦지만 엉망이 되자


철민 (티슈를 빼서 정화에게 건네며) 저기요. 휴지. 


정화,  허공에 손을 내밀면 손에 휴지를 쥐어주는 철민.


정화        (입가를 닦으며) 저는 저기요 아니고 정화에요. (손을 내밀며) 하정화. 


정화의 손을 보고 있는 철민. 정화, 손을 조금 더 밀어 내밀며


정화 우리랑 인사할 때는 손을 잡아주는 거예요.  

철민 (조심스레 손을 잡는다)

정화 와... 딱딱하다. 무슨 일 하면 손이 이렇게 돼요? 

철민 (대답이 없자) 

정화 드라마 잘 봤습니다. 


탁탁. 케인을 짚으며 주차장을 나와 거리로 나서는 정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철민의 얼굴. 



8. 화랑 체육관 . 주말 오후


링 위에서 연습을 하는 격투기 선수들이 보인다. 

링 밖에서 지켜보던 방코치(45)가 박카스를 든 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철민을 발견한다. 

옆에 서 있는  최 관장(50)에게 놀라 표정으로 


방코치 워메...~ 우리 눈앞에 누가 왔나 함 보세요...! 



9. 체육관 사무실, 오후


관장에게 큰절한 후 무릎을 꿇고 앉는 철민. 화가난 표정의 최관장, 철민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 

수다스러운 방 코치, 박카스를 따면서 분위기를 띄운다.

 

방코치 아~ 또 왜 그러세요... 좋으면서 괜히 또 그러신다. 

            이거 좀 드시고 얼굴 좀 펴세요... 


아무 반응 없자 방 코치는 민망한 듯 표정을 지으며 관장에게 내밀었던 박카스를 자신이 마신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철민. 침묵이 흐르다가


철민 죄송합니다. 관장님. 사죄드리러 왔습니다. 


철민 말에 대꾸도 않고 자장면만 먹는 최관장. 


방코치 그만 좀 하세요~ 소심하게 다 지난 옛날 얘기가지고 그러신다. 

  관장 (버럭 소리 지르며) 옛날 얘기?!! 어떤 빌어먹을 놈 챔피언 만들어보겠다고 쌀밥 쳐 먹일 때, 내 새끼들 라면만 먹였어! 나쁜 노무 새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나가버리는 관장.


<시간경과>

링에서 누군가를 두들겨 패듯 스파링을 하고 있는 문신 가득한 남자. 

민태식(30)의 등이 보인다. 방 코치에 이끌려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 철민.


방코치 야야! 여기 함 바바라. 다들 주목!


방 코치를 쳐다보는 선수들. 상대를 다운시킨 민태식 고개를 돌린다. 


방코치 얘가 누구냐!? 바로 장철민이다! 99년 전국체전, 웰터급 전 경기 1회 KO!

(철민 신이 나서 떠드는 방코치를 말리려 할 때)

소리 결승에서 허벌나게 깨진 게 나 민태식이고!  


민태식(30)이 링에서 막 운동을 끝낸 듯 헤드기어를 벗으며 철민에게 다가온다. 


태식 오랜만이다! 그 동안 어디 숨어있었냐?

방코치 아 맞다 그지! 근데, 철민아~ 옛날에 니 주먹 한 방에 떨어졌던 

그 민태식이 아니다~ (철민에게) 티비 봐서 알지? 태식이 격투기선수로 엄청 잘 나가... 쫌 만 있으면 UFC 간다! 

철민 (진심으로)  경기 봤다. 잘 하더라.

태식 (비아냥거리며) 잘하더라? (링에서 내려와 글러브를 철민에게 던지며)

어려운 행차 하셨는데, 몸 좀 풀고 가지? 간만에 딱 3라운드. 어때?


얼떨결에 글러브를 받아든 철민. 글러브가 낯선 듯 쳐다본다.


철민 (글러브 태식에게 내밀며) 다음에 또 들를게. (담담하게 진심으로)

방코치 UFC 갈 새끼가 왜 그래? 쪽팔리게. 얘 1라운드 뛰면 똥 싼다 똥 싸 ! 


태식, 돌아서는 철민의 뒤통수에 헤드기어를 던지면 퍽! 소리가 나며 맞는다. 

철민 돌아보면. 분위기 싸해진다. 


태식 (조소를 띄우며) 왜, 후달리냐? 응? 가볍게 한 판 뛰자니까?

철민 ... (태식의 시선을 피하며 방코치에게) 형 저 가볼게요. (가려는데)

  태식 (어린 복서들에게) 야! 니들 그거 아냐? 주먹은 타고 난다는 거? 

저런 놈한텐 아무리 개지랄을 떨어도 붙으면 바로 깨져. 왠 줄 알아? 종자가 달라서 그래요! 존나 깡다구가 좋거든.

(글러브를 툭 치며) 껴!! 한 번 보자. 지금도 그런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체육관 안. 


소리 붕대부터 감겨줘라!


문 앞에 서 있는 최 관장. 느릿한 걸음으로 철민에게 다가온다. 


관장 1라운드만 뛰어 봐.


다가오는 최 관장을 쳐다보는 철민 아무 말도 못하고 시선을 피한다. 


철민 죄송합니다. 


관장, 쩍! 소리가 나게 철민의 귓 방망이를 후려치고 철민을 노려보며 방코치에게


관장 뽁서도 아닌 새끼를 왜 들여놨어? 내 보내!


철민, 정중하게 최관장에게 인사하고 싸늘해진 분위기를 뒤로하고 체육관을 나간다.



10. 텔레마케팅 사무실 -> 복도 -> 엘리베이터 


정화의 시각장애인용 손목시계에서 알람이 울린다. 몇 명은 퇴근한 상황. 

정화가 전화 부스에서 일어나 케인을 편다. 사무실을 나서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앞으로 가는 정화. 그 모습을 마팀장이 지나가다 보고 따라 온다.


마팀장 퇴근하나 봐요?

정화 ...네.

마팀장 저녁 먹고 가요. 맛있는 거 사 줄게.

정화 아.. 저기.. 약속이 있어서요.

마팀장 (자기도 모르게 픽 웃는다) 약속? 뭐, 친구 만나요?

정화 (계속 이어가야 하는 거짓말) 네.

마팀장 나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어떻게들 만나나? 비슷한 사람들끼리.

아니.. 서로 안보이잖아요. 그럼 어떻게 알아보냐는 거지. 

왔냐고 소리 질러 볼 수도 없고.

정화 (모욕적이다... 그래도 웃고 참는다) 마팀장님도 필름 끊겨도 집은 

찾아 가시잖아요? 똑같죠 뭐. (귀엽게) 그냥... 느낌?

(띵! 엘리베이터 도착하면)

내일 뵙겠습니다!


정화 능숙하게 엘리베이터 오르며 마팀장 향해 억지로 웃고 있다.

마팀장, 괜한 오기가 생기는 얼굴. 



11. 정화의 집. 밤. 베란다. 밤


덜덜거리며 세탁기 앞에 멍하게 앉아 개구리 종이접기를 하며 동요를 보르는 정화. 


정화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며느리 다모여서...


이때, 쿨럭 소리가 나고 세탁기 호스에서 빠져나오는 물이 베란다에서 빠지질 않는다. 

손으로 더듬으며 배수구를 찾는다. 

어딘지 모르겠다. 미끌 하는 바람에 고인 물에 엉덩방아 찧는 정화. 

다시 일어나려다 말고 아예 쭈그리고 앉는다. 

정화 속상하고 답답하다. 



12. 주차박스, 저녁


철민, 시계를 본다. 드라마 할 시간이다. 창문을 열어 환기 시킨다. 

팔짱을 끼고 무뚝뚝하게 앉아있다. 땀 냄새를 확인하면 

어후~ 안되겠는지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후 옷을 벗어 문밖으로 탁탁 털고 

다시 후다닥 입는다. 다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철민. 

텔레비전을 켜고 다소곳이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소형 선풍기 까지. 

무뚝뚝하게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괜히 신경이 쓰인다. 

다소곳이 모은 철민의 두 다리 아래에 하얀 새 운동화. 나 지금 무슨 짓? 하며 

자신에게 헛웃음이 나온다. 팔짱을 끼고 철민 눈을 감는다.

정화의 스틱 소리 탁탁탁.. 경쾌하다. 점점 다가오는 스틱소리.

철민의 무뚝뚝한 얼굴. 문이 열리는 소리. 정화 들어서는 소리.


정화 (대번 한다는 소리가) 신발 샀죠!!

철민 (눈 번쩍 뜨고 놀랍다는) 네?

정화 (킁킁) 새 신발 냄새 나는데 뭐!!

철민 (자기 운동화 본다) 아. 이거 저 뭐냐.. 음... 사놓고 안신다가 신어서..

(민망하다) 드라마 나올 거예요. 화장실 좀...


서둘러 주차박스를 나서는 철민, 우당탕 발에 걸리고. 정화 풋 웃는다.


<시간경과>

철민과 정화가 좁은 주차 박스에서 드라마를 보는 모습이 보인다. 


정화 (혼잣말로) 가지마.... (드라마에 푹 빠졌다) 

철민 네? 

정화 태오가 간다잖아요. (눈물이 글썽하다)

철민 (뭐 이런 여자가 있나 싶은데도 귀엽다) 

정화 혹시 남자.. 울어요?

철민 (어떻게 알았지? 신기하다) 네.  

정화 아... 그렇게 맘 아프면 가지 말지... (신기해하는 철민이 보인다는 듯)

            우린 마음이 들려요. 안보이니까 더 잘 느낄 수 있거든요. 

(대뜸) 잘 생겼어요? 

철민 잘생겼으니까 배우 하겠죠...(초코 우유 한 모금)

정화 아니. 아저씨 말이에요. 

철민 (우유 마시다 스탑) ....

정화 (개구쟁이처럼) 안 보인다고 뻥치지 말고~

철민 (입 슥 닦고 자기 얼굴 한 번 훑고) 남들이...그냥... 뭐.. 

남자답게 생겼다고..

정화 꽃미남과는 아니구나?! 


철민, 뭐라 대답은 안하고 그냥 우유를 꿀꺽꿀꺽 다 마셔버린다. 빙그레 웃는 정화. 


<시간경과>


정화 잘 봤습니다. 담 주에 또 올게요...


철민, 인사를 받으면 주차 박스를 나서는 정화. 

비가 오기에 바닥이 미끄럽다. 차 한 대가 빠르게 정화를 스치며 밖으로 나간다. 

그 소리에 놀라며 미끄러지며 관리실 앞에 쌓아둔 맥주병 박스를 짚으며 쓰러진다. 

우당탕! 맥주병들이 깨지며 정화의 다리로 떨어진다. 


정화  악! 


이 소리에 주차 박스에서 나와 정화에게 뛰어나오는 철민.

동시에 주차장 입구의 관리실의 아저씨가 나온다. 


관리실남 괜찮은 겨? 에헤! 다 깨져 부렀네! (지팡이 보고) 아이고 참나! 

앞도 안 보이는 여자가 어딜 그렇게 싸돌아 댕겨! 


철민 정화에게 다가가면 깨진 유리병 파편이 사방에 널려 있다. 정화 일어나려 하면. 


철민 움직이지 마요!  다쳐요! 


철민, 정화를 번쩍 들어 올린다. 정화, 철민의 가슴에 안기며 자연스레 철민의 목에 팔을 두른다. 둘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유리가 없는 관리실 앞 빈 의자에 정화를 앉히는 철민.


철민 유리 파편이... 있어서... 어디 다쳤어요...?

정화 (삐끗한 발목 부위를 만지면)

철민 (발목을 누르며) 여기요? 

정화 아!!

관리실남 겹질렸나보네... 아이고 근디 술 아까워서 워쩨야쓰까...

주차장 바닥이 취해 불 것구마. 이거 내가 맡아두기로 한 건데...

정화 정말 죄송합니다... 아저씨... 제가 변상해 드릴게요.


정화 허공에 손을 내밀면 철민 손을 잡아주며 정화를 부축하고 일으키려하지만, 

정화 다리가 삐끗한 듯 신음과 함께 주저앉는다. 


철민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며) 

어르신. 저기...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관리실 남자, 공돈에 화색이 돈다. 


관리실 남 주차장은 내가 볼테니께 자네가 어여 좀 데려다 줘. 



13. 지하철, 밤


정화가 반 기브스를 한 채 의자에 앉아있고 나란히 앉은 철민. 

차창 밖으로 시내 불빛이 보이고 그들 앞으로 또각또각 힐을 신은 사람이 지나간다. 


정화 혹시... (진지하게 탐정처럼) 지금 우리 앞에 지나간 사람. 키 170에,

검은 색 투피스 정장입고... 단발머리에 날카롭게 생긴 여자 아니에요?


철민 건너편 그 사람을 보면 키높이 구두를 신은 땅딸한 50대의 대머리 아저씨다.

철민 참나, 어이없어서 웃고 만다.


철민 (뭐라 대답할까하다가) 네... 정확하네요. 어떻게 그걸 다 맞춰요?

정화 (뿌듯하다) 제가 요즘 사람을 분석하고 통찰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거든요...

철민 (어이가 없지만 귀엽다) 아...예...

정화  아저씨는 왜 말 안 해줘요? 이름.

철민 (주춤한다. 까칠하게) 이름 꼭 말해야 돼요?

정화 왜요? 이름이 좀 촌스럽구나? 

철민 (대답을 안 하자 )

정화 뭐에요...? 사람 무안하게? 이름도 안 가르쳐줘요?

철민 (말하기 싫다. 망설이다) 장... 장... 

정화 장.. 뭐요?

철민 장... 마르셀리노요..

정화 뭐요?! (어이없는 웃음) 아저씨 외국인이었어요!!!?

철민 (당황해서 주변을 본다 쪽팔린다) 아.. 아니요.. 

정화 .....? (이내 익살스런 표정이 되며) 아~ 그러니까 아저씨 이름이 

(발음을 굴리면서 큰 소리로) 좌앙~ 마르셀리노~!!? 하하하!!!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 풉! 웃음을 참으면


철민 (몹시 당황) 한국사람 맞아요 나.

정화 (아랑곳하지 않고 발음을 굴리면서 큰 소리로) 좌앙~마르셀리노~!큭큭큭

철민 (얼굴 불그레) 그냥 편한 데로 불러요.

정화 아저씨가 젤 편하다. 괜찮죠?

철민 .. 뭐.. (웃는다)



14. 거리, 밤


조용한 서울의 주택가. 철민의 팔을 잡은 채 절뚝거리며 걷는 정화. 

다리가 아픈지 걸음을 멈춘다. 


정화 (아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잠깐만요.

철민 (머뭇거리다가 정화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업힐래요?

정화 (머뭇거리다가) 후회 하실 텐데... 

철민 (정화 앞에 쭈그리고 앉아 등을 내밀며) 괜찮아요. 업혀요. 


정화, 가방에서 경보기를 꺼낸다.


정화 엄한 짓 하면 알죠?


정화 손을 뻗어, 처음에는 허공, 철민의 머리 그리고 등을 만져 업힌다.

철민, 정화를 업고 골목을 걷기 시작한다. 


<시간경과>

정화 철민의 어깨가 싫지만은 않다. 철민 슬슬 힘들다. 


철민 저기.. 삼거린데. 어느 쪽?

정화 아! 삼거리.. 미용실보이죠? 미용실 끼고 오른쪽으로 올라가요. 


쳐다보면 200개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 철민. 


정화 (귀엽게) 후회할 거라고 했죠?

땀을 뻘뻘 흘리며 엄청나게 많은 계단을 오르는 철민. 다리가 후들거린다.  

다시 들춰 업으려다 손바닥으로 정화를 못 받치고 손등으로 힘들게 정화를 업는 철민.


정화 (어깨를 치며) 쓰읍! 자꾸 손 내려가요...! 

아! 그리고! 조기 어디 꼬마 하나 있죠? (장난스럽게) 조심하세요.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 하나가 꼬치를 들고 오뎅을 빼 먹고 있다. 


철민 (꼬마 무시하고)헉.. 헉..  (놀라며) 악!


철민, 엉덩이와 다리를 꼬며 뒤를 돌아보면, 아이, 꼬챙이 들고 씨익 웃는다. 


아이 (계속 철민의 엉덩이를 찌르며) 이히~ 아저씨 똥집! 똥집! 

철민 씁읍! 어허! 야! 저리가! 너.. (엉덩이 피해가며) 이 녀석! 혼난다!! 

정화 (귀에 대고 속삭인다) 뛰는 게 나을 걸요.

힘들게 200개의 계단을 뛰기 시작하는 철민. 계속 따라오는 익살스런 표정의 아이.



15. 정화의 집 앞, 밤


헉헉! 숨을 몰아쉬는 철민. 다리 풀려 기절하기 일보직전이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정화 힘드시죠? ( 헉헉대는 철민에게 장난스럽게 놀리며)

그래도 그렇지 무슨 남자가 그렇게 허약해요~?!

철민 그게 아니라...원래 체력은 엄청 좋은데...

그 계단...엄청...후...헉...그쪽.. (무게가) 아후...!

정화 죄송한데요... 시간 괜찮으면... 부탁하나만 더 들어주실래요?

철민 (이번엔 또 뭐) ...아... 나 못해요.. 몰라.



16. 정화의 집, 밤


어두운 정화의 집, 정화는 어둠이 익숙한 듯, 외투를 벗어서 옷걸이에 건다.  


정화 (문득 생각난 듯) 소파 옆에 스탠드 전구 돌리면 불 켜질 거예요. 

철민 아...네...

정화 (미소 지으며) 전 잘 안 켜요~ 아껴야 잘살죠.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스탠드 전구를 돌리는 철민. 불이 켜진다. 

집안을 돌아보는 철민. 정돈이 잘 된 집안. 한편에 도예에 쓰는 도구 등이 놓여 있다. 


정화 저기 베란다 좀 봐주세요...


철민의 눈에 물이 찰랑하게 고인 베란다 보인다. 뭐지.. 가까이 가 본다. 

물이 꽉 찬 베란다. 철민, 양말을 벗고 베란다로 들어가 배수구 구멍을 찾는다. 

뭔가 끼었는지, 손으로 작은 뚜껑을 빼고 손을 집어넣는 철민. 

막힌 무언가를 빼내자 짜르르 ~ 소리를 내며 물이 빠지기 시작한다.


정화 (베란다 가까이 와 서서) 뭐가 막혀있었죠?

철민 저... (막힌 것을 펴보면 팬티다) 팬티... 인데...

정화 (얼굴 붉어지며) 혹시, 곰돌이 귀 달린 거예요?

철민 네...

정화 주세요 (철민 건네면 정화, 팬티를 확! 뺏으면 서로 무안하다)

거기 있었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맨날 찾았네... 

철민 (어정쩡하게 서 있으면)  

정화 배 안 고파요? 

철민 아뇨. 괜찮아요.

정화 난 김치말이 국수~ 정말 좋아하는데. 매콤하게 만든 거.

철민 ?


도마에 김치를 썰고 있는 철민. 정화는 식탁의자에 앉아 이것저것 시킨다.


철민 저기 설탕은...?

  정화 왼쪽에 빨간색 플라스틱 양념 통 세 개 있죠? 그중에 맨 왼쪽 거요. 

고추장은 냉장고, 참기름은 찬장 열면 있구요. 


정화의 지시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 .. 바쁘다 철민!

식탁에 놓인 김치말이 국수. 

정화 한 젓가락 먹는다. 철민 괜히 긴장하며 맛이 어떤지 궁금한 듯 보면


정화 (고개를 끄덕이다가 진심으로) 맛있어요.

(뭔가 생각하다가) 무슨 음악 좋아해요 아저씨는?

철민 ... 그냥... 뭐.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정화 (솔직한 대답에) 푸하하~. 

 

정화, 식탁 옆의 공연표 두 장을 철민 쪽으로 쑥 내밀며


정화 친구랑 같이 구경 가세요. 콘서트 표에요. 


철민. 공연 표를 집어서 본다. 


철민 (다시 정화 쪽으로 밀며) 다른 사람 줘요. 난 음악 같은 거 잘 몰라요...

같이 갈 사람도 없고...

정화 (귀엽게 혀를 차며) 그렇게 친구가 없냐? 같이 가 줄까요? 



17. 계단 + 정화의 집, 밤


/다리를 쿠션 위에 올린 채 소파에 누워있는 정화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자세히 보면 얼음주머니가 파란색 신발 끈으로 다리에 묶여 있다. 

/ 200 계단을 내려가는 철민의 운동화 끈이 없고 

무뚝뚝한 철민의 표정에 어느새 생기가 돈다. 



18. 주차박스. 밤.


주차 박스안의 철민, 어울리지 않는 노란색깔의 운동화 끈을 묶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면 최관장과 방코치, 철민의 주차 박스 앞에 서 있다. 

 

철민 (벌떡 일어서며) 관장님...!

최관장 (한심하다는 듯) 고작... 이 짓거리 할라고 권투 그만 둔거냐?



19. 포장마차. 늦은 밤.


맥주를 한잔 마시는 관장과 방코치. 말없는 침묵이 답답하다. 


방코치 (어색한 분위기 띠우며) 분위기 참 깝깝허네... 

철민아 관장님이 여기 까지 찾아오셨는데 웬만하면 체육관에 다시 나와 임마. 

우리. 다시 퐈이팅 해 보자.

철민 (무언가 말하려다) 관장님... 죄송합니다. 

최관장 (화내며) 대체 뭐가 그렇게 죄송한데? 

이거 하나만 묻자. 그동안 어디 있었냐?

철민 (철민, 말없이 고개를 떨구면) 

방코치 철민아.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니 주먹 하나는 안다. 

권투는 이제 한물갔어. 두 손으로 싸우는 건 안본다고... 

동양챔피언이 일 년에 삼백 버는 게 말이 되냐고! (관장 눈치 보며)

우리, 격투기 해 보자! 니 재능, 저 주차 박스에서 낭비하지마라. 


철민, 말없이 관장의 빈 잔에 술을 따른다. 쳐다보는 관장.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철민, 

관장, 철민이 머뭇거리고 있자 철민을 지긋이 보다가 


관장 (외투를 집어 들며) 알았다. 할 말 없으면 먼저 일어난다. 

철민 관장님...저...  감옥에 있었어요. 

관장,방코치 (갑작스런 철민의 말에 놀라며)

철민 사년 삼 개월 살았습니다. 


관장, 철민을 바라보다가 잔에 맥주를 따르면, 

맥주의 흰 거품 속으로 카메라 들어간다. 



20. 철민의 과거 (회상). 밤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맥주를 벌컥벌컥 비우는 5년 전의 철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눈빛이 형형한, 독이 오른 건달 모습의 철민. 

길 건너에서 부스스한 삶의 무게에 찌든 남자 박창수(50)가 

운동화를 꺾어 신고 고개를 숙인 채 모텔에서 나와 걷고 있다. 

<씨팔>하고 내뱉는 철민의 입모양. 길을 건너 박창수에게 옷깃을 세우고 다가간다. 

철민과 눈이 마주친 박창수 멈칫한 후 갑자기 도망친다. 

골목으로 도망치다 철민에게 잡히는 박창수. 

철민은 얼굴을 후려친다. 나뒹구는 박창수.



21. 박창수의 모텔 4층. 늦은 밤


철민 수건으로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숨을 몰아쉰다.  

얼굴이 만신창이가 돼 있는 박창수. 

벽에 기댄 채 조소를 띠우며 침을 뱉으면 피가 흥건히 배어나온다. 


박창수 (피식 웃으며) 지난달 보다 많이 약해 졌네? 응? 왜! 힘들어?

철민 (피식 웃으며) 숨이 라도 붙어있어야 돈을 구해 올 거 아니야

박창수 (개그프로 보듯이 웃으며) 큭큭큭...

아빠, 담 주에 올 때 거북이 사와야 돼... 큭큭큭. 

애새끼 둘, 이손으로 고아원 보내고 마누라는 도망치고...

난 더 맞아야 돼. 알어? 근데, 니 부모도 너 낳고 자장가 불러줬을 거야? 그치? 큭큭큭

거북이 한 마리(마징가)가 유리병에 담겨 박창수의 머리맡에 있다.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와 동전을 바닥에 던지는 박창수. 


박창수 내가 가진 전부다. 석유 한 통 사니까 그거 남더라.


기가 막힌 듯 피가 묻은 돈을 쳐다보는 철민. 여관방, 구석에 석유가 반 통 들어있다. 


박창수 근데 넌 왜 이렇게 날 두들겨 패냐? 내가 떼먹은 게 니 돈 아니잖아.

철민 나야 이게 일이죠. 씨발 돈 받고 하는 일. 그리고 나 부모 없어. 알어?

박창수 너나 나나 참 막장인생이다. 안 그래? 


쿵쿵! 누군가 모텔 문을 두드린다. 철민 문 앞으로 가면. 


목소리 어이! 문 좀 열어요!

철민 누구야?

목소리 경찰이에요. 아니 방에서 뭐하는 거예요!

사람 패는 소리 들린다고 신고 들어왔어요! 빨리 문 열어봐요!


철민, 상황이 꼬였다는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다가 방을 보고 놀라는 철민. 

박창수가 석유를 온몸에 뿌리고 있다.  


철민 뭐하는 거야! 아저씨! 


라이터를 든 채 창문에 걸터앉으며 창 밖 아래를 보는 박창수. 4층 높이다.


박창수 너 몇 살이라 그랬지?

철민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며 나지막하게) 그거 내려놔!

목소리 (쾅쾅쾅!) 빨리 문 열라니까! 야 열쇠 줘봐! 

박창수 그렇게 살지 마라. (진정한 진심) ..너. 나중에...후회한다...


박창수 라이터를 탁! 켜면 순간 온몸에 불이 붙으며 떨어진다. 

철민, 박창수을 향해 뛰어가 턱! 아슬아슬하게 박창수의 멱살을 붙잡은 철민. 

불길 속에서 똑바로 철민을 바라보는 박창수. 

철민 무섭고 간절한 박창수의 눈빛과 마주치다가 불길에 뜨거워 손을 놓친다. 

4층 아래로 떨어진 채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박창수의 모습. 

충격으로 얼굴이 굳어가는 철민의 표정 뒤로 경찰이 들이닥친다. 




22. 수도원 소속 병원. (5년 후 현재)


40대의 수녀가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한남자의 몸을 닦아 주고 있다. 

얼굴과 전신에 화상의 흔적이 있는 박창수의 몸이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는 철민, 멍하게 식물 같은 표정의 남자를 바라본다. 


수녀 (따뜻하게) 요즘은 어디서 일해?

철민 빌딩 주차장에서요. 생수도 배달하구요...

수녀 아니 젊은 사람이 정규직을 가져야지. 만날 그렇게 직장을 옮겨.

으이차! 뒤집으시고...다 됐다. 뭐해. 좀 거들지?

철민 (몸을 잡고 옷 갈아입히는 걸 도우면)

수녀 (넉살좋게 웃으며)마르셀리노 형제님?

철민 네?

수녀 내가 뭐라 그랬지? 웃어야 멋있어 보인다 그랬잖아.

철민 (억지로 밝게 웃어 보인다) 

수녀 그래 딱 좋네. 그 표정으로 좀 다녀!

철민 저... 근데... 수녀님, 세례명은 한 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나요?

수녀 무슨 소리야~ 영화배우 이름같자나~ (발음을 굴리며)장~ 마르셀~리~노!

내가 그 이름 짓고 얼마나 기뻤는데!


투명 비닐에 담겨있는 머리띠를 툭 건네는 수녀

수녀 우리 수도원에서 장애우들이 만든 거야. 선물할 여잔 있냐?

철민 ..... 

수녀 (방긋 웃어보이다가) 마르셀리노! 나랑 약속하나해. 

헌금 액수 좀 줄여. 너무 많아. 수도회에 마르셀리노가 매달 얼마씩 

내는지 내가 알아봤어. 젊은 사람이 돈을 모아야지. 

번 돈 그렇게 다 기부하면 뭐먹고 살아? 내말 흘려듣지 마.  

철민 네.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23. 미용실, 며칠이 지난 주말. 오후


햇살이 좋은 오후. 삭삭! 동네 미용실 의자에 앉은 정화의 머리에 물이 뿌려진다. 

특이하게 멋을 낸 원장이 들어서며


원장 어머... 언니... 머리 많이 자랐네~ 오늘 어떻게 할까? 

요즘 파리에서 유행하는 러블리 퍼엄(발음 굴려서)이나 

디지털 퍼엄 어때? 언니는 얼굴이 뿌띠하니까 고런 게 맞을 거 같애. 

정화 (웃으면서) 그래요? (좀 망설이다) 그럼 최강희 머리처럼 나올까요?

원장 (화를 내며)아니 왜 그런 품격 떨어지는 베이비펌을 자꾸 할려구 그래?

디지털시대에?

정화 (원장의 강한 반발에 뻘쭘하다) 그래요? 그럼...알아서... 

원장 (장애인인 걸 깜빡해서 미안하다) 어머. 근데, 자기가 그 드라마

스타일을 어떻게 알았어? 하하하! 

정화 (웃는다) 그냥... 느낌? 하하하...

원장 호호호! 느낌~? 수상한데...? (장난친다) 데이트 가는구나?

정화 (살짝 오버하며) 아니에요~!!!

원장 (눈웃음치며) 그럼... 디지털 퍼엄 시작한다~


정화는 원장에게 머리를 맡기고 설레는 표정으로 앉아있다. 



24. 정화의 집 , 오후


미장원에서 한 디지털 펌이 영 웃기다. 그러나 정화는 볼 수가 없다. 

화장품이 가득담긴 박스하나. 그 앞에 앉아서 거울 없이 화장을 하는 정화. 

박스 안에서 연분홍색과 붉은 색 립스틱을 고른다. 어떤 게 분홍색 이었더라? 

붉은 색 립스틱을 그렸다가 지워본다. 

옷장에는 가지런히 옷이 걸려있다. 손가락으로 왼쪽부터 순서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여섯 번째 옷에 손이 멈추는 정화. 초여름 짧은 원피스다. 

옷장에 달린 거울 앞에 서보는 정화. 향수를 뿌린다. 밝게 웃어 보이다가 이내 우울해진다.

정화의 시점으로 겨우 빛과 형체만 보이는 자신의 얼굴. 이때 초인종이 울린다. 



25. 정화의 집 앞, 오후. 

 

정화의 집 앞에 서 있는 철민. 정화가 문을 열고 나온다. 

정화는 조금 전 보았던 화사한 짧은 원피스를 입지 않고 

화장도 지운 채 평범한 긴 원피스에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부스스하게 선 이상한 머리에 약간 흠찟 놀라는 철민. 


정화 (미안하지만 머리 만지며) 오래 안 걸렸죠? 


부스스한 디지털 펌의 정화를 살피던 철민.


철민 저기... 다리 많이 아프면 다음에 갈까요? 

정화 (밝아지며 농담으로) 네에? 업어주는 거 아녔어요? (씨익 웃는다)



26. 공연장 안. 오후


객석에 나란히 앉아 있는 철민과 정화. 무대엔 크래지콰이의 공연 중이다. 

관객 모두 음악에 심취되어 바라본다. 호란과 알렉스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공연장을 휘감는다. 


정화 (속삭이듯) 무슨 색 기타 들었어요?

철민 (역시 속삭이듯) 검은 색.

정화 (눈웃음치며) 알렉스 목소리 너무 감미로워... 

(철민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여자 보컬 얼굴이 어때요?

철민 (정화의 귀 가까이 가려다 말고 그냥 속삭인다) 머리 짧고 눈이 커요.

여자에요. 

정화 (여자라는 말에) 풉...! 여자?


정화, 상상이 되는 듯 환하게 웃으며 보는 것처럼 연주를 듣는다. 

철민은 무대보다 자꾸 정화를 보게 된다. 낭만적인 목소리 호란의 따뜻한 노래가 흐른다. 



27. 공연장 밖, 밤


관객들과 섞여 나온 정화와 철민. 사람들한테 치일까봐 신경을 쓰며 가이드 하는 철민. 


정화 아~~ 가슴이 뻥 뚫린 거 같다! 나 공연본지 정말 오래됐어요. 

철민 (잘 알지 못하지만) 좋네요...

정화 (괜히 웃으며 철민 목소리 따라하며) 좋네요... 뭐가 좋은데요?

철민 그냥... 음악. (웃는다) 배 안 고파요?

정화 음... 계속 생각나던 음식이 있긴 한데.. 여기서 좀 가야하는데...

철민 ?

정화 옛날에 내가 사랑하는 남자랑 다니던 단골집이거든요. 아직 있을라나?



28. 꼼장어 집, 저녁


꼼장어가 숯불에 구워지고 있고, 정화, 종이접기를 하다가 잔에 시원한 소주를 코앞에 대더니 

캬아... 좋다! 라며 한 잔 쭉 들이킨다. 철민, 꼼장어를 접시에 담아 정화 앞에 놓아준다.

정화, 호호 거리며 잘 식혀 먹다가 양념을 흘린다. 그래도 맛있다는 표정. 


정화  (말캉한 미소) 생각하는 사람 알아요? 

철민 (뭐라는 거니) 예?

정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란 조각이요...발톱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요? 

철민 (뭔 말인가 한다)

정화 짧아요. 발톱을 짧게 자르고 있어요.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 다 기억하거든요? 그거 똑같이 만들어 봐서 

알아요. 나 학교에서 조각 공부했었거든요. 

철민 (묵묵히 듣고 있다) 

정화 근데요. 그런 건 기억이 안나요. 있잖아요. 맨 날 봤던 거.

    (종이접기 모양이 개구리가 되고)엄마 눈 밑에 점이 오른쪽이었는지 

왼쪽이었는지(말 뚝 멈추고 잠시 숨 고르며) 우리 아빠 엄지손가락은 

어떻게 생겼는지.. 옛날 그 남자, 우리 아빠에요. 아빠랑 여기 가끔 

왔었거든요.  (종이 개구리를 튕겨 철민에게 보내고)

후회돼요. 이럴 줄 알았으면 잘 봐둘걸. 

기억하는 게 많으면 지금도 볼 수 있거든요.


철민, 술 한 잔을 털어 넣고 정화를 바라본다. 매력적인 미소의 여자다. 

부스스한 머리를 만지는 정화를 씨익 웃으며 보다가 


철민 (미소 지으며) 근데 머리... 새로 한 거예요?

정화 (놀라며 걱정된다) 네?! 왜요? 이상해요?

철민 (풉 웃으며) 아뇨... 그냥... 좀... 특이해서... 

정화 (미치겠고 창피하다) 어쩐지... 휴...(머리 손으로 누르며 화제 돌린다) 

새벽까지 주차박스에서 일하는 건 알고... 나머지 시간에 뭐해요? 

철민 (잠시 생각하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생수 배달해요.

정화 그럼 옛날에는 뭐했는데요? 젊었을 때는? 

철민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된다 침묵이 흐르자)

정화 혹시 나쁜 짓 많이 하고... 막 살고 뭐 그랬어요?

철민 (차갑게) 근데 남 일에 원래 그렇게 관심이 많아요?

정화 (대답이 없네?) 나 오해 할지도 몰라요. 무시당한 거라고.

철민 (미안하다. 하지만 오히려 불끈 성격이 나온다) 나 그런 거 잘 몰라요. 

근데 그쪽이 매일 뭐먹었는지는 알겠네요... 


철민, 너무 심한 말을 했다. 정화 자신의 옷을 만져 본다. 

밝은 색 옷에 양념이 지저분하게 묻어있다. 너무 창피하다. 


정화 맞아요! 나는 매일 매일 뭐 먹었는지 사람들한테 다 광고하고 다녀요!

(욱하는 심정으로 벌떡 일어나며) 화장실 다녀올게요!


케인을 펴고 급하게 화장실 쪽으로 가다가 다른 손님의 테이블을 치는 정화. 

테이블이 넘어져 손님들이 쏟아지는 술과 안주 때문에 호들갑을 떤다. 

정화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걸어가지만 계속 다른 테이블에 부딪히고... 

손님들이 웅성거리고, 정화는 결국 방향을 잃고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일어서서 정화를 보고 있는 철민. 정화의 뒷모습에 미안하고 안쓰럽다. 



29. 정화 집 근처 , 계단


정화가 계단 난간을 잡고 절뚝거리며 걷는다. 화가 난 상태다. 철민 그 뒤를 따라 걷는다. 



30. 정화 집 앞, 계단 . 밤


정화가 열쇠로 문을 연다.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옆에 서 있는 철민에게 


정화 (차갑게) 저 때문에 고생 하셨습니다. 가세요... 

(들어가려다가) 그리고 오늘 그쪽, 너무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 

철민 (들어가려하자) 나는! 나는... 서른 살이고. 권투를 했었고. 그리고..

어렸을 때 나쁘게 살았어요. 아주 나빴어요... 

정화 (돌아 선다. 무슨 의도인지 몰라 갸우뚱 바라본다) 

철민 근데 지금은. 옛날처럼 안 살아요. 나.. 그런 놈입니다.

그쪽 .. 아니 정화씨 무시하는 거 아니고. 내가 후져서..

대답을 못했던 겁니다. 


정화, 뭐라 답해야 될지 모르겠다. 철민, 벌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다. 


정화 (알았다는 듯 고개 끄덕이다) 들어갈게요.


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정화 문에 기대어 가만히 서 있는다. 

자기 처지에 무슨 연애냐 라는 듯 자조 섞인 미소가 입가에 머물다 사라진다. 



31. 텔레마케팅사무실. 낮


노트북의 점자를 빠르게 읽으며 텔레마케팅을 하고 있는 정화. 피곤해 보인다. 


정화 기사님께서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전산지연으로 확인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메모 가능 하십니까? 지금 바로 담당부서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상담원 하정화였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피곤해 보이는 정화. 벨이 울리면 마팀장이다.


마팀장 미스하. 잠깐 내방으로 오세요. 

 



32. 마팀장 방, 낮


정화 긴장한 채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 그런 정화를 보고는 씩 웃는 마팀장. 

정화 바로 옆에 앉는다. 정화, 바싹 긴장하며 다리 위 두 손 주먹 꽉 쥔다. 마팀장, 테이블에 선물 포장 한 것을 놓는다.

 

마팀장 선물 하나 준비했어요. 

(정화 손 덥석 잡아 선물 놓아주며) 어울릴지 모르겠네, 풀어봐요.

정화 (손 내리고) 네? 무슨 선물.. 이요? 

마팀장 미안해서 그래요 저번일.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인데.

집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미스 하 기분 나빴을 거 같더라구요.

정말 미안해요. 그러니까 이거 받아요. 

정화 (거절도 못하고) 네... 감사합니다..

마팀장 감사하긴.. 우리 사이에 뭐... (은근슬쩍 어깨에 손을 올린다)  

다음 주엔 같이 저녁 먹어요... 


정화, 선물 들고 벌떡 일어난다. 그 바람에 마팀장 팔이 툭 떨어진다.


정화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마팀장 (아쉬움이 역력한) 그래요...


정화 공손하게 인사하고 나간다. 굳은 얼굴의 마팀장. 



33. 주차박스. 밤


드라마가 시작되지만 정화는 오지 않았다. 

주차 박스의 철민, 정화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인사를 하려고 어색하게 일어난다. 

어두운 표정으로 주차박스 앞을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지나치는 정화를 쳐다 보다 

엉거주춤 자리에 앉는 철민. 

주차장 앞에 시각장애인 전용 택시를 타는 정화. 



34. 철민의 집, 새벽


잠을 못 이루는 철민, 눈앞에 책상위에 수녀가 준 비닐포장이 된 머리띠가 보인다. 





35. 정화 집 앞, 밤


<다른 날> 

200계단을 올라가는 정화.

 

<또 다른 날> 

절뚝거리며 집 앞 계단을 올라간다. 복도를 올라와 문 앞에 선 채 열쇠를 돌리는 정화,

문을 여는 순간 


정화 악! (깜짝 놀라며) 누구세요!? 


이상한 듯 서서 문고리를 잡고 있는 정화. 한손에 와인병을 들고 있는 마팀장이다. 


마팀장 와.... 미스하 여기 사는구나!

정화 (어이가 없고 무섭다)마팀장님?!! 

마팀장 데이트 신청 매번 퇴짜 맞으니까.. 내 직감이 딱 맞네! 

왜 거짓말을 해요? 약속 없으면서... (집 문을 열며) 차나 한 잔 줘요. 


막무가내로 들어가는 마팀장. 정화 몸은 공포로 떨리기 시작한다.



36. 정화의 집 안. 밤


냉장고에서 병에 든 주스를 꺼내 식탁에 앉아있는 마팀장 앞에 주는 정화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재미있는지 히죽 웃는 마팀장 취기가 오른다. 


정화 제가.. 불을 사용하기 어려워서요. 따뜻한 차가 없어요.

마팀장 아!! 아 이런. 미안해요.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와인을 병 채 마시며) 

혼자 살기 무섭겠다. 정말 애인 없어요? 대학교 때 다쳤다 그랬나? 눈? 

너무 안쓰럽다... 옛날에 인기 많았을 텐데...

정화 (두렵지만 강한 척) 죄송한데, 그만 돌아가 주세요.

사모님도 이러고 다니시는 거 아세요?


마팀장, 요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피식 웃다가 

탁자 밑에 목걸이 선물이 포장 그대로 있는 걸 본다.  


마팀장 선물. 풀어보지도 않았네? 미스 하 모르나본데 나 얼마 전에 

이혼 당했는데... 마누라 패가지고...


두려움이 엄습하는 정화. 마팀장, 선물포장을 벅벅 찢으며 정화 곁으로 다가가며


마팀장 선물한 사람 성의가 있죠...? 나 진짜 정화씨 좋아하는데...


정화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소름이 끼치는 정화. 마팀장, 정화의 목 주변에 목걸이를 억지로 끼우며


마팀장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진짜 잘 어울린다! (정화 머리카락 슥 만지며)

지금 미스 하 얼마나 예쁜지 모르죠? 


마팀장, 정화의 목덜미에 키스하려하자 정화 손으로 마팀장을 확 밀친다. 

아! 손톱 때문에 얼굴에 상처가 난 마팀장. 


마팀장 악! 이런 씨...발! 


탁자위의 주스 잔을 벽에 던지는 마팀장. 와장창 깨지는 주스 잔. 

정화 가방에서 경보기를 꺼내 누른다. 삐뽀삐뽀! 소리가 울리자, 

퍽! 주먹으로 정화의 얼굴을 후려치는 마팀장.


마팀장 씨발!!!쫌! 


마팀장 경보기를 주워 해제시킨다. 입술이 터져 피가 나는 정화. 


- 200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철민, 손에 종이 쇼핑백이 들려있다. 


마팀장 (정화 어깨 다시 부여잡고) 내가 미스하 꼬셔서 잠이나 한 번 잘 생각으로

이러는 거 같아요!!? 돈 주면, 너 보다 훨씬 예쁘고 색한 애들 얼마든지 

많아요. 

정화 (울먹인다) 죄송해요...죄송해요.. 이제 그만 놔주세요..

마팀장 그러게 누가 잡아 쳐 먹냐고요 미스 하~!! 왜 날 나쁜 사람 만들고 

그래요? 정말 강간범 돼 볼까요? 그래? 원해!?

정화 (운다) 팀장님...


벌벌 떠는 정화. 마팀장 정화의 바지를 강제로 벗긴다. 

발버둥치지만 주먹으로 정화의 얼굴을 다시 치는 마팀장, 

정화 충격으로 바닥에 퍽 머리가 부딪힌다. 

이성을 잃은 마팀장 정화의 옷을 벗기며 달려드는데


철민 그만해!!!


놀라 돌아보는 마팀장. 

철민, 극도로 흥분하며 다가서자. 마팀장 바지를 추스르고 겁에 질려 와인병을 들며


마팀장 에이... 왜 그래? 그냥... 좋게 넘어갑시다. 우리. 싸우지 말고. 

철민 정화씨 괜찮아요!? 저에요. 철민이...

철민이 다가가자 와인병을 휘두르는 마팀장. 

날렵하게 피하며 빠박!! 마팀장의 배와 얼굴을 강타하는 철민. 

그 자리에 고꾸라지는 마팀장. 떨어져 구르는 와인병. 


정화 (싸움이 나는 쪽을 향해 ) 하지 마요!! 아저씨! 아저씨!!


나가떨어진 마팀장의 머리채를 잡고 이성을 잃은 채 마팀장의 안면을 후려친다. 

퍽!퍽! 얼굴이 돌아가며 금세 피 범벅이 되는 마팀장의 얼굴. 


정화 아저씨! (그만하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만해요!

마팀장 (비굴하게 울며 빈다) 자.. 잘못했어. 때리지 마...부탁이야. 살려줘...

뭔가.. 오해 하시는 거 같은데.. 전 미스하 직장 상삽니다.

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 붙잡아서...


갑자기 주먹을 쥔 손을 멈추는 철민, 이성을 되찾은 듯 마팀장의 멱살을 잡고 

질질 문 밖으로 끌어낸다. 벽에 세워 놓고 한손으로 목을 꽉 움켜쥔다. 

마팀장, 숨이 넘어가는 듯 흰자가 보이며 철민의 손을 풀려 버둥거린다. 

끝장내려다가 겨우 꾹꾹 감정을 눌러 참는 철민, 마팀장의 손가락 두 개를 움켜쥐며 

마팀장의 귓가에 얼굴을 대고 나지막이, 


철민 (손가락을 서서히 꺾으며) 저 여자 앞에 나타나면 내가 너 죽인다. 


손가락 두 개가 완전히 젖혀지며 우직! 부러뜨리는 마팀장의 손가락.


마팀장 아악! 


철민, 목을 놔 주며 지갑을 찾아 주민증을 빼내 손에 쥔다. 

철민, 지갑을 마팀장의 얼굴에 던지면, 꺾인 손가락을 부여잡고 허둥지둥 도망치는 마팀장.

도망치는 마팀장을 보다가 멍하게 허공을 보며 진정하는 철민, 집으로 들어오면, 

온 몸을 오들오들 떨며 눈물과 피가 범벅이 되어 있는 정화. 


정화 (원망 가득한) 왜 그랬어요?

철민 !!?

정화 (울먹인다) 나 해고 되면. 아저씨가 책임 질 거예요?!!

철민 (욱 한다) 그런 회사를 왜 더 나가려고 그래요!!

저런 놈! 드러운 꼴 당하면서 왜 참냐구요!

정화 살아야 하니까!!!

철민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 내가 책임질게요!!

정화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아저씨가 뭔데 날 책임져요? 

나 직장 새로 구해줄 거예요? 

아니면 이럴 때 마다 와서 사람 팰 거예요? 

철민 (답답하고 화가 난다) 내가 도와줄게...!

정화 지금 나 더 비참하게 만드는 거 알아요?!!! (울음이 터진다) 

나... 안 보인다구...! 동정하지 말라구요!!

철민 (안타깝고 미안하다) 미안해요... (미끄러지는 정화 어깨를 쥐려하자)

정화 (오히려 나지막하게) 손대지마요! (차갑다) 나가주세요...  

철민, 아무 것도 해 줄게 없다. 

주머니에서 조용하게 수녀가 준 투명비닐 포장이 된 머리띠를 올려놓고 나가는 철민, 

집 앞 계단에 쭈그려 앉는 철민, 착잡하다. 



37. 주차박스+정화의 집 몽타주


/ 퇴근하는 아가씨들 보는 철민. 신경 쓰인다. 텔레비전에는 드라마 [달콤한 나의도시]의 코믹한 장면이 묵음으로 나오지만 철민, 웃지 않는다. 

/ 정화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멍하게 앉아있다. 눈가와 입술에 멍이 들어있다. 

눈을 들어 전구를 보지만 빛만 보일 뿐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손에 랜턴을 들고 껐다 켰다를 반복하는 정화. 



38. 거리 . 아침


횡단보도에서 케인을 쥔 채 서 있는 정화. 

선글라스를 쓰고 있고 아직 얼굴에 멍이 남아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화를 보고 있던 철민, 신호를 기다리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애완견 센터다. 쇼 윈도우 너머로 철민을 바라보는 새끼 골든 리트리버. 철민, 한참을 본다.

신호가 바뀌면 정화 길을 건넌다. 



39. 병원. 안과. 아침


진찰 받는 정화의 동공이 커다랗게 보인다. 

진료실에서 나오는 정화.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틈에 앉아있는 철민의 앞을 정화가 지나간다. 


진료실 안

차트를 보고 있는 의사. 쭈뼛거리며 서있는 철민. 


의사 (진지한 표정으로) 앉으세요.



40. 정화 집. 낮 


세면대에 오랫동안 숨을 참으며 얼굴을 담그고 있는 정화. 눈을 뜨고 있다. 

의사의 목소리가 정화의 얼굴 위에 들린다. 


의사(V.O) 각막손상에 의한 퇴행이 다 진행된 상태인데...

이젠 미세하게나마 강한 빛의 자극도 분간이 안 될 겁니다.


정화가 세면대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전구를 본다. 


  의사(V.O) 빨리 이식 수술을 안 하게 되면, 

백내장이랑 녹내장이 함께 와서 완전히 암흑 속으로 들어갈 겁니다. 

철민 그럼... 이식 수술은 어떻게 하면 되죠?

의사 일단, 드물지만, 증여자가 있어야 하구요. 수술비가 필요하죠.


창밖을 향해있는 정화. 눈을 손으로 가리고 창밖을 보지만 밝기의 차이가 거의 없다. 



41. 주차박스, 저녁


정화에 대한 걱정으로 표정이 좋질 않다. 철민, 차를 대신 주차하고 주차박스로 다가온다.  

주차 박스 앞에 놀랍게도 정화가 철민을 기다리고 있다. 

야윈 정화의 얼굴이 보인다. 

철민, 뭉클하다. 정화 철민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서로 한참 바라보는 철민과 정화.


철민 (보고 싶었다) 저에요... 언제 왔어요?

정화 좀 전에... 사표 냈어요. 

철민 밥이라도 좀 잘 챙겨 먹지... (꾸지람하듯) 얼굴이...그게 뭐에요?

정화 나....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그런데... 다음주말에 시간 되면... 

가까운 시골 같은데 데리고 가 줄래요?


철민, 여윈 정화가 너무 안쓰럽고 찾아와줘서 고맙다. 그래서 대답을 못한다. 

물끄러미 정화를 보기만 한다. 


정화 뭐에요...! 대답이 없네? 언제는 책임지겠다더니... (귀엽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그죠?

철민 (코끝이 조금 시리고 감동을 받았다) 네. 그럴게요.  





42. 정화의 집 앞, 다른 날 아침. 


현관문이 열리면 목에 리본을 한 강아지를 들고 있는 철민. 

정화의 얼굴에 골든 리트리버 새끼 강아지를 가까이 댄다. 

흠칫 놀라다가 밝아지는 정화의 얼굴. 강아지가 정화의 얼굴을 혀로 핥는다. 


철민 맨날 혼자 있지 말고 얘라도 데리고 있어요...

정화 (감동받으며) 진짜 작다... 

철민 이게 크면 맹도견이 되는 건데요...

정화 아~. 골든 리트리버?

철민 네. 그거..  점은 없어요.

정화 (너무 좋아한다) 안녕...! 털 좀 봐... (좋다) 뭐라고 부를까요?

철민 음... 딩가?

정화 딩가?  

철민 딩가 딩가 잘 먹고 잘 살라고.

정화 그럼, (불어발음으로) 쟝~ 딩가? ^^

(환하게 웃으며) 안녕? 딩가야. 반가워...

정화소리 (너무나 신난 목소리) 와~~~!!!



43. 국도 . 아침.


국도를 달리고 있는 일톤 생수 트럭이 동강을 끼고 이어진 꽃이 만발한 국도를 달린다.

라디오의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하는 철민. 

정화는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좋아한다. 

딩가는 정화의 다리에 얌전히 앉아있다. 


정화 아저씨 근데 정말 어떻게 생겼어요? (궁금해 죽겠다) 

철민 네?

정화 누구 연예인이나 유명인 닮은 사람 있어요?

철민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정화 네, 너무 너무 궁금해서 잠이 안와요! ^^

철민 음...음... 있긴 있는데... 

정화 누군데요???

철민 왜 그... 천 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사람 기억나요?

정화 네에. 그런데요? 

철민 남들이 거기 그려진 이황이랑... 닮았다고... 눈썹하고 눈만... 

정화 뭐에요??? 완전 할아버지잖아!!!

철민 (그니까 말 안한다니까하며 미소 짓는다)



44. 강가, 오후


정화 철민의 팔을 잡고 강가를 걷는다.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린다. 

딩가는 강가를 뛰어다닌다. 햇살이 좋다. 

어느새 철민과 정화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강을 바라보고 큰 바위에 기대어 앉아있다. 

정화, 가만히 귀 기울이며 소리를 듣고 햇살을 느끼며 평안을 느낀다. 완벽한 시간이다. 

 

철민 (씩 웃다가) 여기. 우리 집이예요. 나 여기서 태어났어요. 

정화 (놀라며) 네? (손으로 더듬어 보려고 한다.) 

철민 지금, 정화씨 우리 집 안방에 들어와 있어요.

정화 (무슨 소린가해서 보면)

철민 지금 없어요. 집이. 홍수가 나서 집이 (씁쓸히 웃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돌멩이 집어 강으로 던지며) 할머니랑 여동생도...

정화 ! (갑자기 할 말을 잃으면) 

철민 나 운동한다고 서울로 가출해 있었거든요. 시신도 못 찾고...


정화, 철민을 바라본다, 정말 철민을 바라보는 것 같다.


정화 아저씨! 돌멩이 하나 찾아줘 봐요.

철민 돌멩이? 왜요?

정화 나처럼 예쁘고 작은 돌멩이 하나 골라봐요. 


철민은 영문을 모르고 돌멩이를 찾기 시작하고, 정화도 손으로 발밑을 더듬어 돌을 찾는다.

철민이 돌 하나를 찾아 정화의 손에 쥐어준다. 원형의 고운 돌멩이.

미소를 지으며 정화도 돌 하나를 건넨다. 울퉁불퉁한 돌멩이다. 정화, 돌을 꼭 쥐며,


정화 그 돌, 느낌이 꼭 로봇 주먹 같죠. 그죠?

철민 (돌을 만지작거리면서) 정말 그러네... 

정화 (철민이 고른돌을 다시 주며) 지금 아저씨 표정을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으니까... 이 돌멩이가 아저씨라고 생각할래요. 

아저씨도 그 돌멩이가 나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다녀요. 


철민, 엉뚱한 정화가 사랑스럽다. 

정화, 철민의 손을 쥔다. 철민 정화의 손을 쥐어 준다. 


정화 따뜻하다...


바람이 불고 정화와 철민 옆에 있던 큰 나무의 붉게 물든 잎사귀들이 흩어져 내려온다. 




45. 수도원 앞 정원, 낮


철민이 박창수의 휠체어를 밀고, 수녀는 살구를 먹으며 걷는다. 


수녀 (살구 먹으며) 아우, 시다! 시어.

            이 아저씨 요즘에 뭐라고 자꾸 중얼거려. 말 터질라 그러나~

            (잠시 철민 보다가) 헌금 액수 줄였더라?

철민 (살구 목에 걸린다) 컥.... 아 그게..

수녀 여자 생겼지? 누구야? 머리띠지?

철민 아.. 그게요.. 저..

수녀 마르셀레노가 나 만나고 나서 젤 잘한 짓인 거 알아?

그렇게 사는 게 사는 거야. 돈도 모으고, 가정도 꾸리고.

(농담하듯) 좋겠다 마르셀리노? 나도 시집이나 함 가 볼까나? 

철민 (놀라서) 네..에??

수녀 (쯧쯧 웃는다) 저래서 여자는 어찌 꼬셨누.


수녀, 철민을 놀리며 웃는다. 철민, 얼굴 빨게 진다.



46. 수도원 박창수 병실, 낮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는 박창수 옆에 앉아 살구를 깎아주고 있는 철민.   


철민 살구나 복숭아는 상처 나기 쉬우니까, 씻어서 바로 먹어야 된데요. 

(잠시침묵) 있잖아요. 아저씨... 나... 용서하지마세요. 

다신 사람 안 때리기로 한 약속 못 지킬 거 같아요.



47. 화랑체육관, 사무실, 오후


관장. 말없이 앞의 철민을 응시하고 있다. 철민 관장의 대답을 기다린다. 


관장 안하겠다는 놈이 지발로 찾아온 걸 보면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방코치 관장님도. 참네... 아, 일해서 돈 벌겠다잖아요~(기분이 좋다)

잘 생각했어! 암! 딱 삼년만 죽어라 뛰면, 

관장님이랑 나랑 책임지고 일본 보낸다! 

관장 (철민을 보다가 방코치에게) 밖에 동수 있나?

방코치 (사무실 밖을 보며) 예. 


체육관 한쪽에서 최홍만 같은 거구의 남자가 아주 느릿하게 샌드백을 툭! 툭 치고 있다. 


관장 (철민에게 ) 몸 상태 좀 보자.



48. 화랑 체육관 링 , 오후


거구의 근육덩어리 동수의 옷 여기 저기 광고용 스티커들을 붙이는 방코치의 손.

그 모습을 보던 철민, 웃옷을 벗어 개어 바닥에 놓고 손목과 목을 꺾으며 몸을 풀기 시작한다. 

최관장, 마지막 스티커를 동수 왼쪽 턱 부분에 붙이며, 


최관장 (철민을 향해) 기억나지?


둘의 대결이 시작되고, 동수의 주먹과 발을 피해내는 철민, 

번개 같은 잽이 동수 옷에 붙은 스티커 한 장을 떼어낸다. 

스티커를 구겨 바닥에 떨어뜨리는 철민, 

요것 봐라? 하는 표정의 동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살짝 가신다. 

철민이 동수의 주먹과 발을 피하며 위빙해 파고드는데, 

동수의 니킥이 철민의 얼굴을 향해 날아온다. 양팔 가드를 이용해 막는 철민, 

그 충격으로 뒤로 쭈욱 밀려난다.

가벼운 발놀림으로 동수 주위를 돌기 시작하는 철민, 긴장하는 방코치.

철민의 잽, 스트레이트, 훅 등의 손놀림이 번개 같이 스티커들을 떼어내기 시작한다.

철민의 주먹이 동수의 턱에 닿으려는 순간 눈을 질끈 감는 동수. 철민은 주먹을 거두며 동수 턱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살짝 떼어낸다. 고개를 끄덕이는 최관장, 옆에서 환호하며 박수치는 방코치와 시선을 교환한다. 철민은 서서 숨을 고른다.



49. 몽타주


/ 경쾌한 음악과 함께 골목을 달리는 철민의 모습이 보인다. 

200개의 계단을 달려 올라가다가 똥집 소년을 번쩍 들어올린다. 

행복한 표정으로 철민을 맞이하는 정화. 


/ 정화의 집을 바꾸는 철민. 

쇠창살로 굳게 닫힌, 스티로폼으로 막아둔 창문을 열자 빛이 들어온다. 

철민, 눈을 감고 현관을 들어서며 앞으로 걸어본다. 

의자에 정강이를 부딪치는 철민, 아파서 깡충깡충 뛴다. 망치로 방문턱을 없애는 철민. 


/ 집 앞 계단 / 계단에 앉아 점자책을 보는 정화 앞모습. 그 옆에 딩가 누워있다. 


/ 정화의 집/ 철민, 이번에는 눈을 안대로 가리고 방을 돌아다니다 꽈당! 

진열대에 사타구니를 부딪친다. 너무 아파하는 철민의 모습이 귀엽다. 


/ 벽에 손이 살포시 올라온다. 철민의 손에 인도 받은 정화의 손이다. 


철민 하나, 둘, 셋. 이제 오른 쪽으로.. 식탁.


정화 식탁 모서리를 손으로 더듬어 보면 식탁의 모서리가 톱으로 잘려 동그랗게 변해 있다.

탁자모서리들에 고무로 만든 아동용 보호대가 붙여져 있다. 


정화 모서리를 깎았어요?

철민 응. 식탁 위치랑 집 구조를 좀 바꿨어. 

정화 (웃는다) 

철민 그 다음에.. 여기 의자..

정화 (의자 만져보며) 의자 두 ..개.


기억하려 눈 이리저리 굴리는 정화. 철민, 정화를 안방으로 인도하며,  


철민 세 발자국 뒤에 침실. 괜찮아. 턱을 없앴어. 자, 두발 자국 걸어서 침대. 혹시 불편하면 말해. 옆에 노트북 있어. 


정화자신의 시각장애인용 노트북을 이리저리 만지다가 버튼을 누르면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정화 침대에 앉아보며 철민에게 옆에 앉으라는 시늉을 한다. 철민, 정화의 옆에 앉는다. 정화, 새로 튼 창가 쪽의 햇볕이 따뜻해 손을 그 빛에 대면 


철민 참, 창문을 새로 달았어. 햇볕이 잘 들어와서.... 

정화, 밝게 웃다가 손을 들어 철민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지기 시작한다. 

철민은 떨리는 듯,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고, 정화는 눈썹, 눈, 코, 입술을 만진다. 

정화. 양 손을 들어 철민의 머리에 댄다. 

정화, 철민의 손을 잡고 자신의 얼굴을 만지게 한다. 


정화 난 이게 보는 거예요. 

철민 정화처럼 자신의 양손을 정화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댄다. 

정적이 흐르고 얼굴이 가까워진 두 사람. 철민 긴장하며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다. 


정화 내 눈 보고 있어요? 

철민 ... 으...응


정화, 철민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다.  

정말 둘이서 마주보고 있는 것 같다. 정화 철민의 입술에 키스한다. 

철민, 긴장해서 어색하다. 정화도 능숙하진 않지만 철민을 리드하려고 애쓴다. 

정화 (놀리듯 하지만 조용히) 키스 처음 해봤어요? 

철민 (긴장되지만) 아니...

정화 이렇게 하면 아저씨가 보이는 것 같아요... 

거의 얼굴이 붙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정화의 시점으로 철민의 형태가 뿌옇게 보인다. 

어색한 긴장 속에서 천천히 키스하는 정화와 철민. 

서투르지만 간절히 서로를 원하는 두 사람. 거북이 마징가가 둘을 바라본다. 

쑥스러운지 고개를 쏘옥 집어넣는 거북이 마징가.  

딩가도 쪼로록 낮은 선반 앞으로 가 자리 잡고 앉는다. 



50. 체육관 / 빌딩 / 정화의 집 몽타주


/ 체육관 / 주먹을 불끈 쥐고 열심히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는 철민. 

방코치 철민의 미트를 받아주다가 손이 아프다. 옆의 젊은 코치에게 미트를 던지면, 

젊은 코치 남의철, 철민의 발차기를 지도해 준다. 로우킥, 하이킥. 그라운드 기술들을 배우는 몸이 잘 달련된 철민을 만족스러운 듯 보는 방코치와 사무실의 최관장. 


/ 생수 배달을 하는 철민. 생수통을 들고 계단을 뛰어 오른다. 얼굴은 희망에 차 있다. 


/거실에서 수제비를 먹으며 함께 드라마를 보는 철민, 

이젠 드라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정화 깔깔 대며 웃고, 정화 몰래 눈물을 참는 철민.


/밤, 정화의 집에서 나가는 철민. 아쉬운 듯 문 앞에 서 있는 정화. 

계단을 내려가다가 멈칫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문이 열리고 기다리고 있던 정화. 와락 철민에게 안겨 키스한다. 깊어지는 키스, 철민, 정화를 번쩍 안아들면 정화 양 발로 철민의 허리를 감싼다. 


/ 맨션의 옥상에서 철민의 팔짱을 끼고 나란히 앉아 해가 지는 반포대교를 바라보는 정화. 

행복을 느낀다. 



51. 집. 초여름 . 밤. 비.  


비가 내린다. 철민과 정화 나란히 누워 창밖을 본다. 철민의 팔을 베고 있는 정화.  


정화 (조용히 빗소리 듣다가) 장마가 시작되나 봐?

철민 응...

정화 옛날엔 빗소리 듣는 거 좋아했는데 이젠 비오면 싫어. 무섭고. 

철민 왜?

정화 그냥...(배시시 웃는다)  ..돌아 누워볼래요? 


철민의 등에 올라 탄 채 티셔츠를 벗기는 정화. 


철민 (돌아보며) 뭐하는 거야?

정화 (목을 만지다가) 가만히 있어 봐요... 

(점자책을 펴며) 양손의 엄지로 척추부근의 근육을 누른 후...


정화, 안마에 관한 책을 실습하고 있다. 정화의 양손 엄지가 철민의 뒷목을 누른다. 

철민, 베개 옆에 있는 점자 노트북에 붙은 점자스티커를 만져보다가 


철민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정화 (미소 짓다가)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대사에요. 

왜? 점자 한번 배워 보실라고?

철민 (씨익 웃으며) 그냥... 

정화 (안마하다가) "그녀의 눈은 말을 하고 있구나... 나는 답을 해야지.."

철민 (눈을 감고 그 점자를 손가락으로 읽어본다)근데 안마는 뭐하러 배워?

정화 그냥... 혹시.. (대답하려다가 만다) 

철민 ? 혹시 뭐? 

정화 그냥. 뭐라도 배우면 좋잖아요. 아저씨 피곤도 풀어주고...

(말 돌리며) 근데 권투하다가 다치면 알지? 요즘 얼굴도 부어서 오고...

철민 그냥 취미로 하는 거야.. 그리고 난 안 맞으니까 괜찮아. (웃으며)

정화 나 아저씨 운동하는 거 너무 보고 싶다.

철민 우리. 빨리 돈 모아서... 작은 공방 하나 차리자. 

그릇도 만들고 화병도 만들고... 배달은 내가 할게... 


정화 말이라도 감동이다. 안마하던 손이 멈추고 철민의 등위에 엎드려 눕는다. 

둘이 서로를 원한다. 철민, 뒤돌아 누우며 정화를 안으며 정화의 셔츠를 벗긴다. 

서로의 벗은 몸이 닿는다. 정화 철민의 품에 안겨 눈을 뜬 채 깊이 키스한다. 

정화의 얼굴이 철민에게 닿을 듯 떨어진 후 천천히 철민의 눈에 키스한다. 철민의 코에, 귀에 목에 키스한다. 정화는 철민을 볼 수 없기에 촉감으로 그를 본다. 


정화 불 꺼줘요

철민 ...왜?

정화 불공평해... 아저씨만 보잖아...눈 감던지요...


철민, 침대옆의 스탠드를 끄면 정화, 철민의 목과 가슴을 손으로 느끼며 천천히 애무한다. 

정화 철민의 딱딱한 손에 키스한다. 철민 그런 정화를 사랑한다. 

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다. 




52. 격투기 시합장 (예전 '김미파이브' 비슷한)


첫 시합이 열린다. 링에 오르는 철민. 

태권도복을 입은 남자가 철민을 노려보다가 물구나무도 서고 얍! 

기합을 넣으며 여러 가지 웃긴 자세를 해 보인다. 땡! 종이 울리고 이얍! 

기합소리와 함께 철민에게 달려드는 태권도. 발차기를 연달아 날린다. 

상대의 발차기를 한손으로 잡고 비호처럼 상대의 안면을 정확하게 가격하는 철민. 

풀썩 나무토막처럼 앞으로 고꾸라지는 태권도.


방코치 (주먹을 불끈 쥐며) 됐어! 


흐뭇한 미소로 씨익 웃는 최관장.



53. 몽따주/ 경기장 / 라커룸


경기장/ 경기를 하는 철민의 모습들. 발차기에 눈두덩이 쭉 찢어지는 철민. 겨우 승리한다. 술 취한 관객이 승리한 철민에게 다가와 바지춤에 만원 몇 장을 꽂아준다.

취객에게 인사를 하는 철민. 


라커룸/ 방코치 철민에게 오십만 원을 쥐어주면 고개 숙여 돈을 받는 철민. 

부어오른 철민의 눈두덩이, 방코치 철민 붕대를 풀어주고 있는데


소리 이야~ 개철민이 아직 안 죽었더라. 


보면 태식이 들어와 있다. 거울을 보며 눈을 마주치는 철민.


태식 변두리에서 쇼 같은 거 하지 말고 다음엔 나랑 한 번 붙자.

정식리그로 들어와서. (방코치에게) 형? 인사두 안 해?

방코치 형? (버럭) 우리 엄마가 같아? 내가 언제 부터 니 형이었냐?  

태식 참나. 형... 왜 그래? 그니까... 나 옮길 때 같이 갔으면 이런데 

안 있잖아? (나가며 철민에게) 조만간 링에서 보자!

방코치 의리 없는 새끼... 저거 완전히 사람 만들어 놨더니 돈 쳐 받고 기냥 

가드라...저 새끼 벤츠 타고 다니는 거 아냐? 

얼마 전까지 월세 꾸러 다니던 새끼가... 에이 썅노무 새끼.

철민 형, 여기 좀 만 더 찢어 줘. 

방코치 놔두면 가라앉을 텐데... 으이그. 

철민 (웃으며) 집에 이대로 들어가면 혼나거든...

방코치 (싱글벙글한 철민의 표정이 황당한 듯) 좋아 죽네. 아주 좋아죽어. 

좋아만 해라. 죽지는 말고.


방코치가 철민의 부어오른 눈두덩을 칼집내면 피가 나온다. 아픔을 참는 철민. 


방코치 아퍼? 그니까.. 애인 없는 홀애비 승질 돋구면 칼질에 감정 섞이기 

마련이다... 


/ 철민, 큰 통에 얼음을 붓고 얼굴을 머리까지 한참을 담그고 있다. 

거울에 비친 눈두덩이 부어오른 자기 모습을 보다가 성호를 긋고 기도문을 외운다.



54. 철민과 정화의 집. 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따고. 얼굴부위를 만지며 들어서던 철민, 표정을 밝게 확 바꾸며.


철민 나 왔어!

정화 (예쁘게 정장으로 차려 입고 방에서 나오며) 시합 잘 했어?

철민 응. 근데... 어디 가?

정화 검사 하자!


철민, 우물쭈물 얼굴을 가까이 댄다. 정화, 꼼꼼하게 철민의 얼굴 만져보며.


정화 많이 안 부었네? 내일 연휴잖아! 어린이 날!

아저씨랑 어디 좀 가려고 입어 봤어...



55. 시외버스 안, 오후.


창밖을 바라보는 정화. 나무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들이친다. 

정화를 바라보는 철민. 정화의 눈동자로 빛이 들어왔다 나왔다 한다. 

그는 정말로 정화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정화 손을 들어 철민의 손을 꼭 잡는다.



56. 납골당, 오후


정화와 부모님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납골 공간 안에 안치되어 있다. 

손으로 더듬더듬 납골함을 만져보는 정화. 노타이 양복을 입은 철민. 얼굴 상처가 보인다. 


정화 인사해요 아저씨. 우리 엄마. 아빠. 

철민 (자기도 모르게 꾸벅) 잘 부탁드립니다.

정화 아빠! 남자친구 생기면 꼭 데리고 오라고 했잖아. 

철민 (미소 짓고 있지만 눈물이 고인 정화를 본다)

정화 아빠...어때? 듬직하지? (웃으며) 뭐? 키는 확실히 큰데 얼굴은 

엄마 성에 안찬다고? 이 아저씨, 처음 만났을 때 목소리가 정말 

따뜻해서...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


철민, 민망해서 상처 난 얼굴만 쓸어내린다.



57. (정화의 회상) 도로 (5년 전 과거) / 새벽 네시 반


음악과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밝게 웃고 있는 정화의 얼굴과 

차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보인다. 

마티즈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는 정상의 눈을 가진 정화. 

차의 뒷자리에는 정화의 엄마, 아빠가 타고 있다. 


정화 분위기 있다! 그지? 엄마?

엄마 분위기 잊고 산지 오래다! 해돋이를 꼭 봐야겠니?

초보운전이 겁도 없이~ 

정화 가서 분위기 좀 내자~ 

호텔서 잠도 자고 횟집 예약도 끝냈거덩? 

엄마 졸업전시에서 꼴랑 얼마 벌었다고 그 돈을 다 쓰냐? 

아빠 기특하다 우리 딸.. 장학금 받아 학비 내고, 

전시회 해서 돈 벌어 우리 여행도 시켜주고.. (진지하다)

정화 에이... 아빠 왜 또 그래? 아빠 힘내! 

부도내고 나 몰라라 도망가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우리 아빠 그 빚 다 갚고. 회사 식구들 다 챙겨주고.. 

(룸 미러로 아빠 보며) 울 아빠 너무 멋있어. 최고!

엄마 멋있는 남자 다 얼어 죽었다니? 


툴툴거려도 기분 좋은 엄마. 가족들 모두 기분 좋다. 


정화 (웃으며 라디오의 음악 볼륨을 높이며) 요 분위기 고대로 살려볼까?


- 코너를 도는 견인차를 운전하는 젊은 남자, 안테나에서 사고소식을 듣고 속도를 높인다. 


- 정화, 라디오에서 시선을 들어 문득 창밖을 본다. 

차창으로 불에 붙은 무언가 막 떨어지는 모습이 느리게 보인다. 

순간 스치는 이미지로 4층의 창문에 박창수를 놓친 철민이 보인다. 

꽝! 박창수가 막 도로위로 떨어진다. 깜짝 놀라며 급커브를 트는 견인차 운전사. 

달려오던 견인차에 들이받히는 세단. 그 힘에 밀려 꽝!!!정화의 차량을 덮치는 세단.

그 충돌로 처참하게 뒤집어지는 마티즈. 끼익! 끼익! 꽝꽝! 삼중충돌 사고다. 

아빠와 엄마는 그대로 숨을 거두고 정화는 깨진 유리 조각 아래 기절해 있다. 

눈에 피범벅이 된 채 간헐적으로 숨을 내 뱉는 정화의 시점으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 


정화 (V.O) 어린이날이었어요... 오렌지색 가로등 불빛 있잖아요? 

비에 반사되면 예쁘잖아요...  그게 내가 본 마지막 그림이에요... 



58. 납골당, 낮


손발이 오들오들 다 떨리는 철민. 믿을 수 없다는 얼굴.


정화 아빠 엄만... 안 아팠을까요? 제발 그랬으면 정말 좋겠는데...


사진 속 정화 부모님을 보며 고개를 젓는 철민에 충격에 휩싸인다. 


정화 (이를 물고 참는) 근데. (웃으려 노력) 우리 엄마 아빠가 

나 지켜 주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아저씨처럼 좋은 사람도 보내주죠.


더 절망하며 눈을 꼭 감는 철민. 휘청한다.



59. 체육관, 밤. 


미친 듯이 샌드백을 치는 철민. 숨이 턱에 차 신음소리 같은 것이 나다가 소리를 지른다. 


박창수 모텔 방. 탁자 위 달력에 보이는 5월 5일. 

4층 모텔방의 철민의 시점. 

몸에 불이 붙은 박창수의 팔을 놓으면 박창수가 거리로 떨어진다. 

거리에서 견인차가 급속도로 코너를 돌다가 휘청하는 장면이 철민의 눈에 들어온다.

견인차와 세단의 연쇄 충돌에 이어 마티즈로 돌진해 쾅! 들이 받는 모습!


털석 주저앉는 철민. 이제야 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괴로워하며 울고 또 운다.

맨주먹엔 피가 고여 있다. 



60. 철민과 정화의 집, 저녁


철민의 시점, 부엌이 깨진 그릇들과 치우다 만 국수 가락들로 엉망이다. 정화를 찾는 철민.

정화 구석에 무릎을 쥐고 웅크리고 있다. 

철민, 불을 켜면, 한참을 운 것처럼 정화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하다.


정화 미안해요. 김치말이 국수 만들어줄라 그랬는데... 

  (눈물 닦으며 웃는다) 더 사고만 쳤죠?

철민 (자신에게 화가 난다) 위험한데. 다치면 어쩌려구 그래! 

정화 (끄덕인다) 엄마한테 요리 좀 잘 배워둘걸. 

따끈따끈한 거 만들어 먹이고 싶은데...

철민 (정화 의자에 앉히고) 아무 것도 하지 마! 요리 내가 해!

청소도 빨래도!  (눈 빨게 진다) 아무것도 하지 마!

내가.. 내가 다 할 거야...!

정화 (아이 달래듯)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따뜻하게 웃으며)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창밖에 가로등이 고장 났나봐... 지금 완전히 밤이죠?


밖은 아직 노을이 지고 있다. 이상한 듯 정화를 보면 정화의 시점. 

간헐적으로 커튼이 내려오듯이 점멸된다. 정화, 자꾸만 눈을 깜빡거린다. 


철민 왜 그래?

정화 모르겠어. 요즘 눈앞에... 커튼이 쳐지는 것처럼... 뭐가 낀 것 같아서... 

철민 !? 그걸 왜 지금 말해! 봐 봐. 


철민, 정화의 눈을 들여다보면 검은 동자에 흐릿한 백태가 낀 것이 보인다. 


정화 왜? 뭐가 이상해요?

철민 (놀랐지만 침착하게) 아냐. 아무것도.. 내일... 병원 가보자


정화의 흐릿해진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철민 가슴이 아프다. 

정화, 철민을 보며 웃는 표정위로 의사의 목소리 들린다. 



61. 체육관, 밤. 몽따주


샌드백을 치는 철민. 무언가에 열중해 있다. 그의 얼굴위로 의사의 목소리 들린다. 


의사 (V.O.) 잘 들으세요. 이제 백내장과 녹내장이 시작되면서 

신경이 같이 괴사하는 거예요. 빨리 이식하지 않으면 눈이 죽게 돼요.

철민 (V.O.) 눈이 죽는다는 게... ?


착잡한 얼굴로 생수트럭을 운전하는 철민.


의사 (V.O.) 나무가 말라죽는 거 알죠? 시신경도 똑같다고 보시면 되요.  

지금 이대로 두면 완전히 실명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안하면 빛도 구분 못합니다. 

정화,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 더듬거리며 건조대에 널고 있다.

정화 시점에서 보이는. 완전히 형체가 보이지 않는 빛이 더욱 흐리고 탁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암흑이 찾아온다.


철민 (V.O.) 기증자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나요?


 빨래를 집는 손... 떨린다. 겁먹은 정화 얼굴.


의사 (V.O) 있긴 있는데...



62. 화랑체육관, 밤


운동을 끝낸 듯 땀을 닦으며 물을 마시는 철민과 방코치. 


철민 형... 나 돈 좀 꿔줄 수 있어?

방코치 돈? 내가 지금 사채 돌려 막느라고 미쳐 돌아버리겠다. 왜 급해?

철민 아니에요. 


철민 관장을 보면 기침을 하며 전구를 갈아 끼우고 있는 관장의 등이 굽어 있다. 



63. 압구정 거리 . 밤


압구정 거리. 스포츠카가 멈춘다. 태식이 타고 있다. 


태식 뭐해? 타! 한 바퀴 돌자. 


철민 태식의 차에 탄다. 도시의 밤의 풍경으로 미니스커트의 늘씬한 여자들이 지나간다. 


태식 이야~ 저거 발육상태들 봐라. (네온들을 보며)

정선 촌 새끼가 강남 대로에서 (차를 두들기며) 이거타고 쫘악! 응?

크아! 야... 죽이지 않냐? 나는 서울이 좋다. 

씨발 인생 한방에 대박 낼 수 있잖아. (맥주 캔을 건네며) 한잔 할래? 

철민 (머뭇거리다가) 돈 좀 꿔줘라. 

태식 (의외라는 듯 쓰윽 철민의 표정을 훑어보다가) 얼마나?

철민 삼천만 원. 

태식 언제까지? 

철민 급하다.

태식 참나... 씨발. 거봐~ 인생 참 좆같애. 상황 역전 되는 거 순간이라니까. 

(독기를 품은 눈으로) 너한테 두들겨 맞은 날, 

내가 집에서 식칼 갈아가지고 니 집 앞에 갔었다. 

그땐 내가 니 꼬봉이었잖아?

(태식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고 이젠 넌 내 상대가 안 된다는 듯)

근데 니 할머니가 새벽에 나오시다가 날보고 그러시더라. 

추운데 새벽에 뭐하고 있냐고.. 들어가 아침 먹으라고..

(광기마저 도는 듯) 킥킥. 

철민 그 때 일들.. 미안하다. 내가 나빴어. 용서해라.

(진심으로 사과하고) 나 여기서 내릴게. 

태식 (차 세우면 철민 내리려할 때) 껀수가 하나 있긴 한데... 정말 급하냐?


철민, 강렬한 눈빛의 태식과 눈을 마주친다. 



64. 잔디 썰매장, 낮 


썰매에 앉아 정화를 꼬옥 끌어안는 철민. 


정화 잠깐!


정화 앞을 보던 방향에서 뒤로 돌아 앉는다. 철민, 정화를 안고 앉아 있는 형태가 된다. 


철민 안 무서워?


정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웃으면 코알라처럼 철민에게 안긴다. 


철민 꽉 잡아! 


썰매를 힘껏 미는 철민. '캬아악!!!!' 비명을 지르며 철민에게 안겨 썰매를 타는 정화. 

바람을 가르며 눈을 감았다가 눈을 뜬다.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흐른다. 

도착할 때 쯔음 몇 바퀴 구르는 철민과 정화. 

정화 일어나지 않자. 다가가면 엎드려 있는 정화가 얼굴을 돌린다. 


철민 괜찮아!?

정화 (화를 내며) 왜 그랬어!!! 

철민 ...?

정화 (갑자기 밝아지며) 이렇게 재미있는 델 왜 인제 델구 왔어?!!!

(웃으며) 최고! 최고! 뭐해요? 빨리 또 타야지! 

철민 우리 수술하자. 

정화 ... 무슨 수술?

철민 미국에서 각막을 사 올 수 있대. 사올 수 있는 방법이 있대.

알고 있었지? 왜 말 안했어..?

정화 (눈빛이 흔들린다) 우리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요!? 

철민 그건 걱정 마. 나 모아둔 돈 있어. 

정화 난 지금 이대로도 좋아요. 아저씨도 옆에 있고. 충분히 행복해.

철민 지금 안하면 신경이 죽어서 더 이상 기회가 없대!

정화 나 그날... 생각할 때마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사고 당하신거 

같아서..차라리 그때 엄마 아빠 따라가야 했는데... 너무 미안해서...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가 너무 아파서...

차라리 안 보이는 게 내 맘이 편해요.

철민 (모질게 말 해본다) 우리... 언젠가 아이도 낳을 거잖아.. 

아기 얼굴 안보고 싶어? 아이한테 앞 못 보는 엄마이고 싶어?


철민의 말에 흔들리는 정화.



65. 정화의 집


화장실에서 손전등으로 딸깍 딸깍 자신의 눈을 향해 빛을 비추어 보는 정화. 

베란다 끝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 철민의 모습.  



66. 병원 / 병실


정화, 암흑과 빛이 교차하는 흐릿해지는 형광등을 본다. 

정화 시린 눈을 깜빡이면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온다. 


정화 아저씨? 

의사 하정화씨... 

정화 죄송합니다. 전 그 사람인 줄 알고... 

의사 검사 결과 잘 나왔구요... 수술 하도록 하죠. 

간호사 (의사 나가고) 보호자는 어디 가셨어요?

정화 네... 금방 돌아온다고 했는데...

간호사 (난처한 표정) 네... 남편 분오시면 데스크로 들르라고 말 해주세요. 

정화 (씨익 웃으며) 네...

(간호사 나가면 기분이 묘하게 좋다) 남편...(웃는다)



67. 나이트클럽 (회상) 


영업 준비하는 나이트클럽 홀. 

철민과 태식, 조직의 중간 보스 40대 초반의 날카로운 인상의 최실장이 걸어가면 얘기한다.

뒤에는 양복쟁이 뚱뚱한 조직원들이 따른다.


최실장 (지극히 사무적이고 살벌하지만 조용한 목소리) 가족 있어요?

철민 없습니다. 

최실장 결혼은?

철민 아니요.

최실장 애인은?

철민 (망설인다) 있습니다. 

최실장 일이 혹시 잘못되면 위험 할 수 도 있는 일인데... 괜찮겠어요?

철민 (진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최실장 (테이블 앞에 멈춰 서서 아래위로 보다가 씩 웃으며) 앉으세요. 



68. 화랑 체육관, 밤.


라커룸에서 가방을 찾아 나오는 철민, 방코치 따라 나오는데 화가 나있다. 


방코치 미쳤어!! 너, 태식이랑 엮이지 마라.

(말이 안 통한다 ) 거기가 어딘 줄 알고 너 지금 가겠다는 거야?

철민 (안심시키듯 짐을 싸고 있으면) 딱 한 게임만 뛰면 되는데 뭐. 

방코치 (답답한 한숨) 너. 죽고 싶어? 그 새끼들이 어떤 놈들인 줄 알아?

그 여자 눈 고치자고 꼭 이렇게 까지 해야 돼? 

철민 (간절한 눈빛) 나 같은 놈이... 누구 옆에 있는 게 잘못 된 거야. 

내가 해야 돼. 형. 그게 맞는 거야.

방코치 (답답한) 여지껏 술 취한 놈들 앞에서 개고생하고 겨우 정식으로 리그 

들어가기 직전인데... 만약에 너 잘못되면 정말 어쩌려구 그래!

철민 만에 하나! 무슨 일 생기면 이 통장으로 잔금 들어오게 돼 있거든.

형이 꼭 전해 줘야 돼? (통장 건네며) 약속해 줘.

방코치 (미치겠다) 너 병신 되 봐야 정신 차릴래!!인생 여러 번인 줄 아니?

철민 형...(씨익 웃지만 슬프다) 나...후회 같은 거... 없어. 



69. 병원 / 병실 밤.


철민. 창밖을 보면 도시의 불빛이 창밖에 아른 거린다. 

철민이 이불을 조심스레 고쳐 덮어 주려는데 잠에서 깨는 정화.


철민 (차분히 미소 지으며) 깼어? 좀 더 자도 되는데.

정화 ... 아저씨 말이 맞아.

철민 뭔데?

정화 아저씨랑 집 앞에 해지는 것도 같이 보고, 딩가는 얼마나 이쁜지..

또... 우리 집 그릇들이 어떤 색깔인지 그리고 동강도 보고 싶고

철민 (따뜻하게 보며) 그리고.. 또?

  정화 음... 침대에 누워서 아저씨 얼굴만 계속 보고 있을 거야. 

한 스물세시간 정도? 내 얼굴은 딱 한 시간만 보고..

근데,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아저씨가 훨씬 못 생겼으면 어떡하지? 

  철민 (애써 밝은 목소리로) 나 못생겼으니까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거야... 못 알아볼지도 몰라.

정화 치! 그럴 일은 절대 없네요! (철민의 손을 꼭 쥐어보며 행복하게)

으아!!! 어떡해. 너무 떨려! 너무 기대된다. 



70. 정화의 집. 밤


철민. 빠르게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자신의 주민등록증과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들을 모두 찾아 비닐 봉투에 담는 철민. 

자신의 흔적들을 지우는 장면이 빠르게 보인다. 

짐을 챙겨 서둘러 나서는 철민에게 딩가가 쪼로록 온다. 딩가 머리를 쓰다듬는 철민.


철민 (간절한 각오) 딩가. 알지? 잘 지켜야 돼...!


철민, 마음 단단히 먹고 나선다. 닫힌 문을 바라보는 딩가. 무언가 아는지 낑낑댄다. 



71. 나이트클럽 +공사장 (회상)


똘마니가 백만 원 뭉치들을 꺼내어 철민 앞에 놓는다. 


최실장 일단 대전료 선불로 삼천. (핸드폰 돈뭉치 위에 놓으며) 이건 대포폰.

(담배물면 똘마니 붙여주고) 이 일이란 게 말이야... 

그냥 평소에는 격투기 시합이랑 똑같은데... 

만에 하나 태국 정부 애들 한 테 걸리면... 복잡해져서 말이야.

발각되면. 당신 혼자 한 일이어야 한다~ 이 말이거든. 알겠어요? 

철민 (고개를 끄덕이면)

최실장 (코웃음 치지만 살벌한 눈빛으로 왕 반지 만지며) 대답이 없네?  

철민 (눈 내리 깔고) 네. 알겠습니다. 


/공사장 안/ 드럼통에 불이 펴져있다. 자신의 사진과 관련서류, 

주민등록증 등을 모두 태우는 철민. 핸드폰을 불속에 던진다. 


최실장(V.O) 그리고 또 하나. 당신 가족이나 애인이 엮이면 다치게 될 수도 

                    있거든? 피해 안가도록 미리 손 써 둬야 될 거예요. 뭔 말인지 

                    알겠죠?



72. 수술실 복도, 아침


수술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이동 침대에 누워 긴장한 정화가 손을 허공에 뻗으면, 

가만히 잡아주는 철민의 손.


정화 손 말고 얼굴.

철민 (정화 손을 잡아 얼굴에 대면)

정화 곧... 만나자. 

철민 (미소 지으며 서글픈) 그래... 곧 만나자... 

정화 밖에 있을 거지? 어디 안가지?

철민 가긴 어딜 가? 갈 데도 없어...


수술실 문 열리고 정화, 안으로 들어가며, 

활짝 웃으며 철민이 아닌 다른곳을 향해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려 보이는데, 수술실 문이 닫힌다. 

닫힌 문 너머를 잠시 보는 멍한 표정의 철민. 



73. 수술실 / 인천 국제여객터미널


-수술실 안 . 아침

전신 마취에 빠지는 정화. 수술을 받고 있는 정화의 모습. 심장박동 그래프가 뛰고 있다.


-인천 국제여객터미널

무표정하게 있는 철민. 손에는 정화가 준 돌멩이가 쥐어져있다.  



74. 인천항 근처 주차장. 오후


누군가를 기다리는 철민. 대포폰이 울린다. 

핸드폰을 걸며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다가온다. 

남자, 철민을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봉투를 내민다. 

봉투 열어보면 여권과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가 들어있다. 

여권에 철민의 사진이 붙어있고 김학선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남자 이름 맘에 듭니까? 김학선. 인적사항은 외워두는 게 좋을 거요.

삼무 맞추느라 뽕 좀 빠졌소. (철민을 살피다가) 몰라요? 삼무?

무연고. 무수배. 무전과.(씨익) 돈이 안 아까울 겁니다...



75. 인천 국제 여객터미널 / 수술실 안. 오후


-수술실 안

수술실 전경. 수술 중인 정화.


-대합실

모자를 눌러쓰고 가방을 든 채 대합실에 앉아있는 철민. 긴장과 후회로 표정이 어둡다. 



76. 방콕공항 -> 시내, 오후


방콕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주소를 보여주는 철민. 

택시는 도시 외곽의 인적 드문 동네로 접어든다. 공장 같은 곳에 내려 벨을 누르는 철민. 거리엔 아무도 없다. 쪽문이 열리고 신원을 확인하는 태국 어깨들. 

철민 좁고 긴 계단으로 내려간다. 철민의 뒤에서 어깨들이 둘러 싼 채 좁은 복도를 걷는다. 


최실장 중국 조직이랑 태국 마피아애들이 좀 끼어 있는데... 

판돈이 한판에 수십억이 넘어서... 

보복하는데 인정 같은 거 없는 애들이라.. .

시작하기 전에 신분 노출 될 만한 게 있으면, 싹 다 치우고 가요.

혹시나 틀어지면. 골치 아픕니다.


/방콕/ 철민, 복도를 지나오자 라커룸이 있다. 

옷을 벗고 쉐도우 복싱으로 몸을 푸는 철민. 눈빛이 결연하다. 

검은색 격투기 팬츠로 갈아입는 철민. 어깨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손에 붕대를 감는 철민. 



77. 방콕, 지하 격투기장


철민, 긴장한 채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는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면 태식이다. 긴장한 철민을 바라보는 태식


태식 천하의 장철민이 긴장을 다 하냐. 링이랑 똑같애. 임마. 긴장 풀어...

(담배 물며) 이길 수 있냐?

철민 이긴다. 

태식 지면 어떡할래?

철민 무조건 이겨. 

태식 (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야. 지금 너랑 붙을 새끼... 

무에타이 세계 챔피언 출신이다. 삼분만 버텨도 씨발 대박 친 거야... 

이길 생각 말고 버틸 생각해라... (어깨 두르며) 나가자.


태식 철민의 어깨를 두른 채 복도를 걸으며 이야기 한다. 


태식 일단 룰은 한명이 기절할 때까지고 일정정도 반칙이 허용되니까... 

이빨 꽉 다물고. 병신되기 싫으면 정신 바짝 차려라. 

심판도 없지. 룰도 없지. 닭장 안에서 믿을 건 씨발 주먹밖에 없으니까.


철민, 태식 복도 끝에 다다르자 문이 열린다. 

떡 실신된 피투성이의 시체 같은 선수가 사람들에게 고기 덩이 끌듯이 나온다. 

주욱 늘어지는 핏자국. 긴장하는 철민. 비릿하게 웃는 태식, 씨익 웃으며 철민을 본다. 

문을 나서자 어두운 조명에 아무도 없는 지하 창고 안. 철조망의 링에 조명만이 켜 있다.

두렵다. 철민, 긴장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태식 (철민에게 멀어지며) 철민아. 내가 누구한테 걸었을 거 같냐? 

철민 (보면)

태식 (넌 죽었어 씨발놈아 하는 야비한 미소로) 뺑이 좀 쳐라... 개철민이... 

철민이 등장하자 창고의 사각 구석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카메라를 조정하는 남자들이 있다. 

철민. 옥타곤으로 들어선다. 철장 문이 열리며 무시무시한 남자가 들어온다. 

살기가 느껴진다. 창고의 구석계단으로 올라가는 태식. 

창고의 구석구석 아주 어두운 곳에 

몇몇 vip들이 시가를 물고 여자들을 끼고 앉아 있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기관총을 든 살벌한 몇몇의 떡대들도 보인다. 두려움으로 사방을 살피는 철민. 

땡! 공이 울린다. 철민 탐색을 하며 주먹을 날려보지만 팔이 길고 발차기가 단련된

무에타이 챔피언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 로우킥으로 연타를 당하는 철민. 

계속 품어 나오는 발차기. 퍽! 가드를 뚫고 날아온 발차기에 쭉! 이마가 찢어지며 쓰러지는 철민.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철민의 목을 뱀처럼 감는 무에타이의 팔. 숨이 막혀오는 철민.

 

/어느 밀실. 철민과 남자의 경기가 중계되고 있다. 


고요함 속에서 철민이 싸우는 창고와 대조적으로 밀실은 환호성이 가득하다. 

수천 달러뭉치들이 오가며 도박이 이루어지고 있는 아수라장의 밀실. 

태식은 경기장의 구석에서 중국 부호와 이야기를 나누며 흐뭇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보고 있다. 

태식은 철민이 질 것으로 알고 중국인에게 엄청난 돈을 걸게 했다. 

여자를 앉힌 뚱뚱한 중국인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눈동자가 뒤집힐 듯 고통스러운 철민. 

겨우 발을 감아 무에타이의 옆구리를 치고 빠져나오는 철민. 열광하는 관중들. 

비틀거리는 철민. 숨을 고른다. 

철민, 복싱의 자세보다는 싸움의 자세로 다가선다. 

그러나 실력이 무에타이보다 한 수 아래인 철민. 연타를 당하는 철민. 

퉁퉁 부어 여기 저기 찢어지기 시작하는 철민의 얼굴. 쉴새없이 날아오는 주먹과 발차기. 

눈뜨고 못볼 지경이다. 철민을 유린하던 무에타이가 마지막 주먹을 날릴 때 

비수처럼 피하며 무에타이의 복부를 가격하고 빠빡!!! 턱에 일격을 가하는 철민. 


/ 터질 듯한 함성으로 뒤덮이는 밀실의 관중들.

 

철민 쓰러진 무에타이의 몸 위에 올라서 미친 듯이 무에타이를 두들겨 팬다. 

넉 다운 된 무에타이. 철민은 자신의 광기에 놀라 주먹을 멈춘다. 

숨을 헐떡이는 철민의 얼굴은 피와 눈물이 가득하다. 

철민 링위로 벌렁 누으며 쏟아지는 빛을 본다. 

태식 옆의 중국인 화가 난 듯 벌 떡 일어서며 판돈 종이를 찢어버리고 태식에게 화를 낸다.

질 줄 알았던 철민이 이기자 망연자실한 태식 두려움이 엄습한다. 

 


78. 서울. 병원. 밤


회복실 침대에 창 쪽을 향해 걸터앉아 있는 정화, 안구보호대에 감고 있는 붕대를 풀어본다. 

오렌지 색 가로등 빛에 반사되는 물방울이 흐리게 맺혀있다. 

창가 쪽으로 손을 뻗어보는 정화. 공허한 표정이다. 



79. 방콕. 밤


라커룸. 지혈을 하고 달러 다발을 받는 철민. 누군가 들어와 상자를 꺼낸다. 

유리로 만들어진 스노우 볼 속 조각이 보인다. 10캐럿짜리 다이아몬드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스노우볼로 보인다. 확인 후 달러 뭉치와 교환하는 양복쟁이들. 


   최실장(V.O) 만약에 장철민씨가 이기면 그 판돈이, 한 몇 억 되는데

        달러뭉치로 가져올 수는 없으니까 물건으로 바꿔 줄 거예요.

        그게 좀 귀한 건데... 10캐럿짜리 다이아거든?

        운송까지 잘 좀 해 오면 배달비로 2천 더 얹어 줄게요. 



80. 인천 여객 터미널, 새벽


얼굴이 퉁퉁 부은 철민 긴장하며 여객 터미널의 출구로 걷고 있는데 면세 직원이 다가온다. 


보안직원 잠깐 만요!

철민 (멈칫한다)

보안직원 이게 뭐에요?

철민 (보면)

보안 직원 무슨 돌멩이를 가지고 다녀요?


철민, 보안 직원이 들고 있는 걸 보면 정화가 철민에게 준 돌멩이다. 


철민 그냥 부적 같은 겁니다. 



81. 인천항 근처 , 새벽


인적이 끊긴 새벽 거리. 철민은 긴장한 채 주변을 살피며 거리를 걷고 있다. 

인천항 뒤편의 하적장 근처에서 대포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는 철민.


철민 하정화씨... 수술 결과를 좀 알고 싶습니다. 

(잠시 기다리다가 너무 기쁜 미소가 감돌며) 네... 네...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굽신거리는 철민, 얼굴이 밝아진다. 

철민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건다. 


철민 잘 도착했습니다. 

최실장 (목소리) 물건은 잘 가지고 왔습니까?

철민 네. 

최실장 (목소리) 혹시 따라붙은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택시타고 인천역으로 가서 바로 전화 다시 줘요. 


철민이 항구 쪽으로 걷는다. 

순간, 철민 뒤에 있던 차가 굉음을 내며 철민을 향해 달려온다. 

공중에 솟구쳤다가 퍽! 땅에 곤두박질하는 철민. 

얼굴 한 쪽이 아스팔트에 갈린다. 철민은 일어나려고 버둥거리지만 쉽지 않다. 

누군가 차에서 후다닥 나온다. 남자둘이다. 


철민 (고통으로) 으...으! 다리가... 

태국남자 Sorry...(안심시키며) you OK?


남자, 철민의 입을 막고 칼로 등을 쑤신다. 


철민 아... 악!


철민의 눈이 커지며 고통으로 입이 벌어진다. 

다른 남자, 철민의 가방 밑을 열자 스노우 볼이 들어있다. 

태국남자의 손에든 칼이 푹! 다시 한 번 철민의 배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차 뒷좌석에는 죄책감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태식이 타고 있다. 

칼로 철민을 다시 찌르려 할 때 부근을 지나는 화물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코너를 돈다. 

태국남자, 떨어진 철민의 가방을 보더니 집어 채고 황급히 차에 탄다. 

순식간의 일이다. 차가운 바닥에 피가 흘러나온다. 꺼져가는 듯 떨리는 철민의 동공.  



82. 병원. 오후


어둠에서 미세한 빛이 조금씩 들어와서 어둠을 몰아내면, 

정화의 눈에 감겨있던 붕대가 서서히 풀리고 있다. 

정화의 동공에 빛을 쏘여 눈동자의 움직임을 좌우로 검사하는 의사. 

정화의 시점으로 보이는 흐릿한 사람들의 형체. 

 

의사 (손가락을 피며) 이거 몇 갠지 보이세요?  

정화 (고개를 끄덕이다 눈을 깜박이며) 세 개요... 

저...  아직 연락이 없나요?


안쓰럽게 정화를 바라보는 사람들. 

고개를 돌려 넋이 나간 듯 초점 없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정화. 무기력한 모습이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83. 몽타주


-경찰서/ 정화, 경찰에게 실종 신고서를 내민다. 귀찮은 듯 불친절하게 대응하는 담당경찰. 


경찰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부인이세요? 

정화 ...아니요. 

경찰 그럼 여동생? 

정화 ......( 막상 대답하려니 말문이 막힌다)

경찰 실종신고 접수는 해드리는데요. 주민번호도 모르고...

(혀를 차며)  법적 관계도 아니시고... 아니...왜 그. 

돈 떼먹고 발른 놈 찾는 사람이 하도 많아 가지구요. 

그냥 애인 관계면 집에서 좀 기다려 보세요. 


실종신고서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쓰고 석고상처럼 굳어버리는 정화. 


-동강. 오후

철민과 왔었던 그 동강하구. 

큰 나무 아래 서있는 정화. 맑고 깊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철민이 묘사했던 그대로 자갈이 펼쳐져 있고 거대한 나무가 있는 조용한 강가다. 


-주차박스. 낮 

철민과 TV를 보던 옛 주차박스 앞에 서있는 정화. 

사람이 자리를 비운 주차박스 안은 예전 그대로이다. 추억에 젓은 듯 둘러보는 정화.

화분에 있던 야래향이 시들어있다. 

야래향에 물을 주고 나오는 정화. 눈가에 눈물이 주룩 흘러내린다.



84. 정화의 집, 오후


마룻바닥에 철민이 입었던 트렁크와 <화랑 체육관>이라고 쓰여 있는 수건이 보인다. 



85. 화랑체육관. 밤.

  

정화, 방코치가 철민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 놓은 듯 충격으로 정적이 흐른다.


방코치 정화씨... 정말 미안해요. 진작 말해줬어야 했는데... 

정화 그 여권 브로커. 찾으면... 혹시...

최관장 (방코치에게 고함을 치며) 솔직하게 다 털어놓지 못해!!!

방코치 그 가짜 여권 만들어 준 놈도 중국으로 도망가서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 여권도 행불자 이름으로 만들어져서...누군지 알 길이 없구요...

태식이 그 새끼도 그 후에 종적을 감춰서 어디 있는 질 몰라요.

최관장 (한숨을 쉬다가 위로하며) 돌아올 놈이었으면 진작 왔을 거에요. 

아가씨도 너무 큰 기대는 말아요. 

정화 (할 말을 잃은 감성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니까... 지금. 그 사람이 나 눈 고쳐줄려고 시합하러 중국이나 어디 

외국 가서... 사고 났거나... (말을 잊지 못하고) 죽었을지 모르니까

나 혼자 알아서... 남은 인생 잘 살아보란 얘기 하시는... 거예요?

방코치 (너무 미안하다) 철민이 그놈...그냥... 떠날 놈처럼... 사라질 놈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정화 여기... (심장을 치며) 그 사람 느껴지는데... 뭘! 어떻게! 그만 둬요?!! 

그 사람 돌아와요. 분명히 돌아올 거예요! 



86. 정화의 집, 오후


부동산 남자와 집 주인인 사모님이 정화의 집 앞에 서 있다. 쾅쾅! 문을 두드리며


부동산 동원 부동산인데요... 문 좀 열어요! 안에 있는 거 다 알아요! 

정화 (문 앞에 서 있다)

부동산 참나... 이 아가씨 고집 무지하게 세네!

전세금 빼 준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러구 있으면 어떻게 해! 

아가씨 때문에 공사를 못하잖아! 

사모님 저기요. 이번 주 까지 짐 안 빼면 나도 어쩔 수 없어요!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정화. 



87. 정화의 집. 실내, 아침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있는 인부가 보인다. 정화, 철민과의 추억이 담긴 빈 방을 본다. 손에 거북이가 담긴 어항이 들려 있다. 슬픔이 배어온다. 우체부가 들어오며


우체부 이사 가시는 구나. 전달 못할 뻔 했네... 장철민씨 계시죠?


정화 보면, 우체부가 소포를 하나 준다. 

수도회에서 온 소포다. 

정화 상자를 열어보면 머리띠가 비닐 포장이 되어 있고 편지가 한 통 들어 있다. 



88. 수도원 사무실. 오후


정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문이 열리고 철민의 담당 수녀가 들어온다. 

정화, 일어서며 그녀를 본다. 수녀 정화를 물끄러미 보다가


수녀 제가 요안나 수녀입니다. 



89. 수도원 병실, 오후


정화를 이끌고 박창수의 병실로 들어서는 수녀. 

한참동안 철민의 이야기를 정화에게 들려준 후라, 정화의 심정은 먹먹하다. 

침대 한 쪽에 많이 회복된 모습의 박창수가 침대에 기댄 채 책을 보고 있다. 

박창수 옆의 늘 철민이 앉아 있던 의자에 정화가 앉는다. 


수녀 (박창수에게) 마르셀리노 애인 이래요...

그 자리에 앉아서 이 아저씨랑 이야기도 하고 안마도 해주고 그랬어. 

정화 (박창수에게) 처음 뵙겠습니다. 하정화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박창수, 고개를 정화와 눈빛을 마주치며 물끄러미 보다가 

옆의 살구를 하나 꺼내서 정화에게 내민다.  


박창수 다행이네요... 이제 잘 보여서... 

정화 (정화, 살구를 바라보다 쥔다) ?

박창수 철민이가...(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그 아이가 아가씨 얘기를 

많이 했어요...아주 예쁜 여자라고...

정화 ?

박창수 내가 사고가 나서 이렇게 된 날... 5월 5일...그날이

아가씨가 사고가 난 날과 같아요.... 비가 많이 왔었죠...?

정화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는 표정이다)

박창수 철민이가 떠나기 전에 날 찾아왔어요. 자기 때문이라고... 

자기 때문에 정화씨 눈이 멀고 정화씨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소름이 끼치는 정화. 

사고 당시 불에 탄 사람이 박창수라는 것과 4층의 남자가 철민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은 정화. 

카메라 빠지면 박창수 앞, 

정화가 앉은 자리에 철민이 앉아 참회하듯 눈물이 글썽한 채 말하고 있다. 

 

철민 아저씨... 그 날 만약에 내가... 병신같이... 아저씨 찾아가지 않았다면 

모든 게 잘 됐을까요? 정말 정화가... 안 다쳤을까요? 

정말 잘 모르겠어요. 아직 나한테 기회라는 게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다시 엉켜버렸네요... 

너무... 불쌍해요. 아저씨도. 정화도 그리고 나도...

카메라 다시 빠지면 정화, 충격과 말할 수 없는 슬픔 속에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할 말을 잃은 채 입술에서는 탄식과 신음소리만이 흘러나오고 

박창수와 수녀는 안타깝게 정화를 바라본다. 





90. 정화의 새 집. 밤


무언가 나쁜 꿈에서 깬 듯 정화가 주위를 둘러보면 스탠드만이 켜져 있고 

주위엔 아무도 없다. 깨 보면 아주 작은 원룸이다. 

켜진 TV에서는 철민과 보던 <달콤한 나의도시> 재방송이 나오고 있다. 

멍하게 티비를 보는 정화. 공허하다. 손을 펴면 돌멩이가 쥐어져 있다. 

갑자기 그리움과 외로움이 엄습한다. 정화의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눈물을 훔친다. 


- 2년후-


91. 토야 공예 안, 낮


2년 후, 정화 앞에 착하게 잘 생긴 남자가 앉아있다. 

테이블에 정화가 만든 도예그릇들이 놓여있다. 주인남자와 면접을 보는 정화. 


남자 디자인이 뭐랄까.. 따뜻하다 그래야 할까요? 색감도 고급스럽구요.

정화 (웃는다) 고맙습니다.

남자 (브로슈어 건네며) 이 작품이 52피스짜리에요. 안에 보면 크기 개수,

용도 다 나와 있어요. 같은 피스로 디자인 되겠어요?

정화 (환하게 웃으며) 그럼요! 감사합니다. 예쁘게 만들게요.

남자 (웃는다) 참, 미혼이시죠?

정화 네? 아.. (다부진 미소) 저 결혼했어요.

남자 (살짝 당황) 아... 어려 보이셔서. 

근데 혼자서 기한 내에 끝낼 수 있겠어요?

정화 아니요. 저 체력 좋아요. 

신랑이 운동을 해서 옆에서 같이 하고 그랬거든요.

주인남자 아.. 운동하세요? 남편분이?

정화 (거침없다) 네.

주인남자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들은 왜 다 임자가 있을까요? 하하하!!! 


절대 불쾌하지 않은 대화다. 정화도 모처럼 환하게 웃는다.



92. 정화의 새 집, 밤


집에서 흙으로 그릇들을 만드는 정화. 손과 옷에 작업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릇에 채색을 한다. 옆에 보면 완성되어 칠을 말리고 있는 그릇들이 가득하다. 

핸드폰을 받으면


정화 작은 거 스무 개 큰 거 열 개요?. 네모난 모양이요? 

네. 저기 죄송한데요, 이번 주까지 접시는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요. 아뇨, 사장님. 제가 감사하죠! 


통화중 대기로 신호가 오면 전화를 받는 정화. 


정화 원장님! 안녕하셨어요? 그럼요~ 당연히 가죠. 네...주말에 뵐게요!   



93. 국도, 오후


정화의 차가 국도를 달리고 있다. 

운전을 하는 정화 옆에 조수석에 얌전히 앉아 정화를 바라보는 딩가.

 


94. 도립 재활원 병실, 오후


도립 재활원에서 뇌성마비 아이의 안마를 해 주고 있는 정화. 60대의 원장이 다가온다. 


정화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원장님.  

원장 이야... 젊은 사람이 이렇게 꾸준히 봉사 다니기 쉽지 않은데... 대단해? 

다들 정화씨 안마 받을 라고 난리다 난리. 

정화 (배시시 웃으며 열심히 아이를 안마한다)

원장 (따뜻하게 )오늘 봉사 다 끝났으면 여기 식구들 하고 저녁 먹구 가요~ 

정화 아뇨. 먼저 드세요. 아직 방 하나 남아서요...



95. 도립 재활 보호소, 오후


조금 전에 다른 방에서 안마하던 정화가 문을 열고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정화가 철민의 옆에 있는 노인에게 다가온다.  


정화 할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노인 으응~ 못 지냈어! 여기도 쑤시고 요기도 쑤시고! 

정화 화분 여기 놓아 드릴게요. 이거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정화 웃으며 노인에게 안마를 해주기 시작한다. 

노인 엎드린 채 작은 화분을 살펴보다가 그릇 밑에 주소와 연락처가 적힌 

오렌지 색 스티커 <토야 공예>를 본다


노인 안마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참. 재주도 좋네... 좋아. 

정화 별일 없으셨죠? 자주 와야 하는데..

노인 아이고 시원하다~ 근디 참말로. 매 주 좀 오면 어째 안 돼까?

정화 저도 그러구 싶은데요. 제가 인기가 좀 많아서요...  


창가 끝에 누워있는 한 남자. 철민이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야윈 얼굴의 철민. 눈에 생기가 없다. 

이마부터 얼굴까지 차에 부딪히며 아스팔트에 갈린 흉터 자국. 

허리 아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철민은 멍하니 흰 천장을 보고 누워있다. 

철민, 정화의 꿈인지 생시인지 정화의 목소리가 들리자 설마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침대 건너에 정말 정화의 뒷모습이 보인다. 심장이 멎는 듯하다. 

시간이 멈춘 듯 굳은 표정으로 정화를 바라보고 있는 철민. 

노인을 안마해주고 있는 정화의 얼굴이 자세히 보인다.


정화 (철민을 향해 웃으며) 안녕하세요. 새로 오신 분이네요. 


정화의 눈을 피하는 철민. 눈빛이 흔들린다.


노인 으응~ 두 달 전에 부산 쪽 병원서 옮겨 왔는데 

허리 아래로 완전 못 쓴 다드만. 젊은 사람이 참으로 짠혀. 

정화 (철민에게) 말씀 못하세요?

철민 .......

노인 아마 그럴 거여. 여기 와서 한마디도 안 허드만. 

정화 반갑습니다.  제가 안마 해드릴게요. 


천천히 철민의 팔을 안마하기 시작하는 정화.

긴장하는 철민의 눈동자가 흔들리지만 표정은 미동도 없다.  


정화 (안쓰럽게) 어떡해요... 근육이 많이 빠졌네요.


정성스럽게 안마하는 정화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철민. 

정화, 철민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철민, 잠시 정화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고 수초. 철민을 잠시 보다가 방긋 웃어 보이는 정화. 

철민을 못 알아본 것 같다. 

정화 (철민을 주무르며) 시원하세요? 자... 몸 돌려 드릴게요.


정화가 철민을 힘겹게 돌려 눕혀 예전, 그들이 사랑했을 때 처럼 등을 안마 해준다.

정화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 철민의 등 촉감을 느끼는 듯이 잠시 손가락이 멈춘다. 

정화 눈을 뜨고 침대 앞에 써진 이름을 본다. <김학선>이라고 써있다. 

그리고 철민의 뒷모습을 본다. 철민 등에 크게 난 수술자국. 철민의 옆얼굴의 긴 흉터. 

정화. 그렇지.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다시 안마를 한다. 

당장이라도 곧 눈물이 흐를 것 같지만 이를 악물고 참는 철민. 

정화는 철민을 만지면서도 그가 철민인지 모른다.

정화의 손길이 철민의 팔과 다리의 근육을 풀어주고 있다. 

짧게 자른 머리이지만 철민은 그녀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정화 자... 다 끝났습니다. (병실을 나서며 친절하게) 꼭 회복되실 거예요. 

또 올게요. 힘내세요.

  

닫히는 문 사이로 보이던 정화가 보이질 않는다.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피면 손바닥 속의 작은 돌멩이가 침대위에 툭 떨어진다. 

눈 위로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는 철민.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그리움으로 울음을 참는 철민. 

참으려고 하지만 입사이로 울음소리가 새어나온다. 

노인이 그런 철민을 이상한 듯 바라본다. 

그 울음은... 기쁨과 후회와 그리움으로 충만한 눈물이다. 



96. 정화의 새 집. 밤. 겨울.


정화는 눈을 감은 채 손가락을 허공에 젓다가 흙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를 시작한다.

다시 손의 기억을 떠올리며 흙으로 만들어지는 두상. 부시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는 정화.

정화는 간절히 원한다. 철민의 얼굴을 기억하는 손이 그를 눈앞에 만들어 보이기를..



97. <토야 공예> 도자기 가게 앞. 겨울.


<토야 공예>의 간판이 보이고, 

길 건너 골목에서 철민이 휠체어에 앉아 예전 정화가 화분 바닥에 붙여놓은 오렌지색 스티커

<토야 공예>이 붙은 종이를 본다. 정화가 공방 안에서 손님과 이야기하고 있다. 

철민 멀리서 표정 없이 그 모습을 본다. 

철민 정화가 나오자 자신의 모습을 골목 안으로 감춘다. 

정화가 철민 쪽을 못보고 밝은 표정으로 멀어진다. 



98. 도립 병원, 겨울


철민이 휠체어에 앉아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다. 

까칠한 수염과 다시 자란 머리카락의 철민, 창에 흔들리는 나무를 본다. 

손으로 무언가 만들고 있다. 보면 종이로 접은 개구리다. 

 




99. <토야 공예> 도자기 가게 앞. 여름


정화가 운전하는 코란도가 공방 앞에 멈추자 인상이 좋은 한 남자가 가게에서 나와

도자기들을 날라주고 딩가는 꼬리를 흔들며 남자를 따라 다닌다. 

철민, 공방의 길 건너에 서 있다. 이젠 한 손에 목발을 짚고 서 있다. 

한 쪽 다리를 절뚝이는 철민. 예전 보다 많이 회복이 된 듯하다. 

정화, 차에서 거북이 마징가가 담긴 작은 유리병을 들고 내린다. 


정화 담 주 까지 스무 개 보내면 되는 거죠?

남자 아뇨! 오십 개...

정화 후... 그렇게 못 맞출 거 같은데... 

남자 정화씨 그릇 예쁘다고 난리네요. 참, 걔는 어디가 아프데요?

정화 (거북이를 보며) 아픈 게 아니라 나이가 많으시데요... 

저 밖엔 나온 김에 물감 좀 사올게요. 


가게 진열장 밖에서 가게 주인과 정화, 둘의 모습은 행복한 부부처럼 보인다. 


 

100. 정화의 가게 안, 오후


철민이 가게로 들어가면, 가게 한쪽에 자신의 거북이 마징가가 보인다. 


남자 어서 오세요. 

야래향이 담긴 화분을 바라보는 철민. 


남자 (그 모습을 보다가) 달맞이꽃 입니다. 야래향이라고도 하구요. 

밤에만 꽃이 피는데, 아주 예쁘죠.

철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 이걸로 드릴까요? (화분을 포장하면)

철민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자)

남자 (밝게 웃으며) 그냥 가져가세요. 선물이에요. 


고개를 저으며 한손으로 지갑을 열어. 돈을 쥐어 주려는 철민. 

어쩔 수 없이 돈을 받는 남자. 다른 손님이 오자 밖으로 나간다. 

그 사이, 거북이가 든 작은 유리병을 꺼내어 가방에 넣는 철민. 위태위태하다. 





101. 정화의 가게 밖 거리. 


정화의 가게를 나오는 철민. 

가게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한 쪽 목발에 의지하며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가게의 코너를 돌자. 순간,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는 철민. 

커다란 개 딩가가 철민에게 달려든다. 목발의 철민이 휘청거리며 넘어진다.  

딩가를 쫓아온 정화가 놀란다.


정화  괜찮으세요!!? 어.. 어떡해!


정화의 모습에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철민. 

정화가 철민을 일으키며 목발을 집어 준다.


정화 정말 죄송해요. 얘가 순해서 사람한테 안 달려드는데... 죄송합니다....

다치신 덴 없으세요? (철민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저 혹시... 


철민의 가슴이 방망이질 하듯 요동친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돌리는 철민. 


정화 전에 뵌 적 있죠?


안도의 마음과 불안이 교차하는 철민. 


정화 저기... 혹시요, 제가 안마해 드렸던 분 아니세요? 

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원봉사를 해서요...


긴장감으로 정화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는 철민. 고개를 가로저으면, 


정화 아... 죄송합니다. 근데, 어디까지가세요? 

제가 차 타는데 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하는데 괜찮다는 듯 꾸벅 인사를 하곤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철민. 

자꾸 철민에게로 바동바동 가려는 딩가. 컹컹 짖는다. 


정화 (정말 화를 내며) 딩가!!! 너 왜 이래!! (딩가의 목을 꽉 안고)


이제 돌아서 목발을 짚으며 멀어지는 철민. 정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화소리 미쳤어 딩가 너! 아무나 보고 그러면 어떡해~!! 혼나 딩가!

너 요즘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철민, 뒤 돌아보고 싶다. 그런데 꾹 참는다. 뒤 돌아서 정화를 한 번만 더 보고 싶다.

마구 흐르는 눈물. 팔뚝으로 거칠게 훔치고 미친 듯이 앞만 보며 목발을 집고 절뚝이며 걷는 철민. 

가장 슬픈 눈으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는 철민. 



102. 도예그릇 가게, 오후


딩가를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정화. 거북이 마징가가 든 유리병이 없어졌다. 


정화 지갑을 놓고 가서... 어? 여깄던 거북이... 어디 두셨어요?


가게 안의 남자, 딩가를 쓰다듬고 있다. 


남자 네? 왜요? 없어졌어요?


딩가가 너무나 불안해하며 가게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자꾸 문밖으로 나가려고 유리문을 긁어대며 짖기 시작한다. 

정화, 뭔가 이상하다. 정화의 표정을 보고는 이상하다는 듯 갸웃하는 남자. 


남자 왜 그래요 정화씨?

정화 사장님... 조금 전에 혹시... 혹시 목발 짚은 남자 왔었어요?

남자 네. 저기 저 화분 사갔어요. 안쓰러워서 돈 안 받겠다는 데 한사코...


갑자기 소름끼치게 놀라는 정화. 코끝이 벌개 지며 눈물이 고이고 온몸이 떨린다.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뛰어나가 보지만 거리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신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입속에서 흘러나오고 미친 사람처럼 달려 나가는 정화. 


- 지하철에 타는 철민. 정화를 만난 감정의 여진이 남아있다.  


딩가가 거리를 향해 짖고 있다. 정화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린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흐느끼며 철민을 마주쳤던 코너로 뛰어간다.

어디에도 철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탄식이 세어 나온다.  


정화 아저씨... 어떡해.... 어떡해....아악!!!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 털썩 주저앉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정화.

심장이 찢어질듯이 옷을 쥐어 뜯어내며 통곡한다. 

지나는 사람들이 쳐다보지만 정화의 눈물은 그치지 않는다. 





103. 버스 안, 오후


창가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병에 든 거북이 마징가를 손에 들고 앉아 있는 철민.

버스가 터널 안으로 접어든다. 



104. 화랑체육관, 오후


썰렁한 체육관, 방코치와 관장이 고개를 돌리면 뛰어 들어오는 정화. 

누군가를 찾듯 두리번거리며 퉁퉁 부은 눈으로 울부짖는 정화. 


방코치 정화씨. 무슨 일이에요 ?

정화 그 사람 왔었죠?!

관장 (속상하다) 이제 그만해! 그만할 때도 됐잖아! 

정화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애처롭게) 그 사람... 왔었어요...!

관장 ?

정화 그 사람... 왔었다구요...! 만신창이가 돼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만신창이가 돼서... 왔는데!!

(자신의 가슴을 쾅쾅치며) 내가! 내가 몰라봤어요...

관장 !!?

정화 그렇게 돌려달라고 기도했으면서... 못 알아 봤다구요.

어떡해요....이제 어떡 하냐구요...

(자기 가슴을 손으로 치며) 내가 너무... 미워요!

도와...주세요.... 제발... 어디에 있는지... 대답 좀 해주세요!


안타깝게 오열하는 정화를 바라보는 최관장과 방코치



105. 차안, 서울 외곽.


차를 운전하는 정화.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로 얼룩져 있다. 


정화 지금 가고 있어요. 네 원장님! 맞아요! 

2층 복도 끝 방에 있던 키 큰 남자요! (기억을 떠올리듯) 

허리에 큰 수술자국 있던...남자에요!!

원장(V.O) 이름이 다르긴 한데... 그분은 회복이 돼서 

몇 주 전에 퇴원조치 했어요...


전화를 끊는 정화. 갑자기 끼익! 달리던 차를 급정거 한다. 

도시 한 복판에서 운전대에 고개를 파묻는 정화... 수초간의 정적. 

고개를 숙인채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는 정화. 간절하다. 


정화 제발... 하나님... ( 간절함으로) 제발... 도와주세요... 


고개를 드는 정화. 눈물이 가득하지만 무언가 생각난 듯. 수초간의 정적이 흐른다. 

덜컥 기어를 넣고 엑셀을 밟는다. 위험하게 급출발 하는 정화의 차. 



106. 동강, 오후


멍하니 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철민. 햇살이 보석처럼 빛난다. 

예전에 정화를 데리고 왔던 큰 버드나무가 있는 곳이다. 

자갈 때문에 목발을 짚으며 걷기가 쉽지 않다. 

물가에 도착한 철민은 앉으며 소중하게 들고 온 마징가를 놓아준다. 마징가가가 헤엄치며 멀어진다. 

아주 처연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철민의 눈앞에 

저 멀리 노인과 소년이 탄 배가 강위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노인과 소년은 배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배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멀리 예전에 없던 어떤 형체가 보인다. 

이상한 기시감으로 절뚝거리며 다가가는 철민. 

근처에 이르자 그 장소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된다. 

홍수와 함께 쓸려간 할머니와 여동생과 살던 그가 태어난 곳이다. 

그 위에 쇠로 만든 책상 하나와 두 개의 의자가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책상과 의자는 주차박스에 있던 것과 같다. 책상위에 점자가 새겨져 있다. 

그 점자를 손으로 만지는 철민. 그것은 정화가 앞에서 가르쳐준 것이다. 

"그녀의 눈은 말을 하고 있구나. 나는 답을 해야지..." 

철민, 시간이 정지 된 듯 멈춰있다. 이때 철민의 뒤에서 들리는 정화의 목소리


정화 그녀의 눈은 말을 하고 있구나! 나는 대답을 해야지!!


철민. 놀라움에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 


정화 왜... 이제 와요!!


떨리는 철민의 눈동자. 


정화 나 보고... 나 바라 보고 대답해요! 

철민이 고개를 힘겹게 돌리자 그의 얼굴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정화. 


정화 집에 있는 그릇색깔도 봤고! 조약돌 색깔도! 딩가도 모두 다 봤는데! 

왜 아저씨만 못 보게 만들어!!!


눈에 눈물이 고인 철민, 정화를 바라보지 못하고 주룩주룩 눈물만 흐른다. 

정화 한 걸음씩 천천히 철민에게 걸어오며 두 주먹을 꼭 쥐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이처럼 소리친다.


정화 내가 그랬지! 눈 뜨면 아저씨 얼굴만 보겠다고! 

이제 아저씨 얼굴 볼 수 있게 됐는데...

근데 왜 하루 종일 내 얼굴만 보게 만들었어요!! 


정화, 바위에 기대어 앉은 철민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는다.

둘의 거리는 이제 가깝다. 철민의 벌게진 두 눈,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입술. 

뭐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 철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힘들게 내뱉는다. 정확히 발음이 안 된다. 


철민 미안해.... 정화야... 내가 미안해. 


정화 아이를 다루듯 철민의 양손을 쥐고 들어 올려 자신의 머리에 올려놓는다. 

정화 자신의 양손을 들어 철민의 머리에 정성스럽게 쓰다듬듯 얹는다. 


정화 나 봐요... 내 눈 바라봐요...

 

철민, 떨구던 눈동자를 들어 정화를 바라본다. 

정화 아주 깊고 고요하게 철민의 눈동자를 응시한다. 

영원처럼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정화와 철민. 

눈물이 멈추지 않는 철민의 눈물을 아이 다루듯 닦아주는 정화. 

정화 잠시 눈을 감은 채 철민을 기억하듯 철민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정화 눈을 뜨며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때처럼, 가장 사랑했던 둘만이 아는 방식으로 철민과 정화는 서로의 얼굴을 본다. 

동강은 말없이 흐르고 거북이는 힘겹게 강을 헤엄치고 있으며 

꼭 끌어안은 연인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107. 에필로그/ 주차장


철민이가 주차장의 화장실에서 살구를 씻고 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철민. 

멀리 비가 내리는 풍경을 뒤로 주차박스에서 정화가 드라마에 몰입해 있다가 환하게 웃는다. 

무표정하던 철민,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웃는다. 

손에 쥔 살구가 담긴 플라스틱 반투명 도시락 통. 

정화 문득 철민을 기다리듯이 철민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철민 설마 자신을 볼까 하는 얼굴로 정화를 바라본다. 

정화, 그 시선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정화가 다시 고개를 돌린다. 

철민 아마도. 설레임을 느낀다. 

철민, 정화가 앉아있는 주차박스로 들어간다. 주차박스에 앉아 드라마를 보는 둘의 뒷모습.

비가 아주 곱게 네온이 있는 풍경으로 내린다.

 


그녀가 눈으로 말을 하고 있구나. 나는 대답을 해야지.



오직 그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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